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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대국의 자연환경 및 생활터전 파괴를 통한 국익추구는 중단하자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6:07
조회
36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정권 교체 이후 실로 많은 것이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외교 분야의 경우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러시아 외교 정책의 변화이다. 물론 그 동안 그 어떤 정권 하에서도 주변 특정 강대국들에 대해 특별히 소홀하거나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를 맺어 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사적으로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임을 과시하였고, 실제로 다양한 교류가 증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초기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내세우며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로 미국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중국 견제를 위한 한일 화해 압박 등으로 인해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도 관계가 소원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비롯한 대러시아 관계 개선을 공언했고, 러시아로 특사를 보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일각에서 소위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사업임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즉, 이미 극동 및 시베리아 가스는 중국 등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 여분이 없는 상태이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이미 셰일가스 등을 수입하기로 한 상태라 더 이상 수입할 이유가 없으며, 특히 러시아로부터 오는 가스관에 의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으며, 무엇보다 북한이라는 변수와 이를 근거로 제기될 미국의 간섭 등으로 인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EP20170215041001034_P2.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따라서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폐기해야 하며, 그 대신 전기 수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부족한 전기를 한국에서 생산하려 하지 말고 발전자원이 풍부해 전기 값이 싼 러시아에서 사와서 쓰면 경제적, 환경적, 외교안보적, 정치적, 미래적으로 모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직류와 교류 전환 문제나 육로 송전탑 외 다양한 대안들이 있다며, 기술적인 어려움 역시 타국의 많은 예를 들며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가스를 수입해 우리나라의 환경을 파괴하지 말고 깨끗하게 전기를 수입하자는 게 핵심 포인트 중 하나이다.


특히 이러한 구상을 가능케 했던 계기 중 하나가 일본의 손정의 소프트 뱅크 회장이 추진하는 소위 ‘동북아 수퍼 그리드 사업’이다. 즉 몽골의 풍부한 풍력과 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기를 일본으로 수입해 쓰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프로젝트에 현재 중국과 러시아, 한국 등도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러시아에서도 전기를 생산해서 그것을 들여오자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인 것이다.


그러나 몽골의 경우와는 달리, 러시아의 경우에는 현재 풍력이나 태양열이 약해 수력 등 다른 에너지로 얻는 전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러시아 전체적으로 여전히 화력발전소 비중이 68%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원전과 수력은 각각 20%도 안 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동의 경우 전체 수력발전소의 6% 정도만 위치해 있다. 물론 극동 자체의 인구가 적고 따라서 수요가 낮기 때문에 수력에 의한 전기가 풍부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화력의 비중이 상당히 크다. 게다가 현재 수력은 풍부하지만 현지 수요가 낮아 가동률이 매우 낮은 상태이다. 화력발전소 역시 70% 가까이가 시설이 노후화되어 개보수 등이 시급하다.


따라서 향후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북한, 일본까지 러시아의 전기를 수입하게 되면, 자국 지역 발전보다는 해외 수요를 맞추기 위해 가스나 석탄 등 화력발전소도 더 많이 짓거나 무리해서 가동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력 발전소도 더 지어야 할 수도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 과거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공해 없는 대안 발전으로 각광받았던 수력 발전 댐들의 건설로 인해 환경과 주민생활터전 등이 대거 파괴되거나 하류 지방의 수질 오염 등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 바 있었다. 유사한 일들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결국 물이 풍부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님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해외 수요가 확대될 경우 원전 건설을 주저하지 않는 러시아 정부에 의해 아직 극동 지역에는 주력이 아닌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결국 지역 발전이나 주민 복리를 위하기보다 환경이 파괴되더라도 해외에 팔기 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전형적인 에너지 수출을 위한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우 새로운 수력발전소 건설이나 화력,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까지 짓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되면, 우리나라는 깨끗한 전기를 수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 극동 지방에서는 끔직한 환경적 재앙을 낳을 수 있다. 문제가 이러한데도 놀랍게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 국익을 중심으로 하는 논의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며 정부 단위에서의 논의 속에 중요한 문제들이 은폐되곤 한다. 풍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몽골 전력 수입 프로젝트는 명백히 탈원전, 탈화력을 내세우는 매우 진보적이고 친환경적인 사업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러시아로부터의 전력 수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또한 대규모 전력망이 국경을 넘어가려면 고도의 정치적 협력관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동시에 수십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는 사업인 만큼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정치적 안정이 보장된다는 신뢰가 먼저 형성되어야만 한다. 투자시설에 대한 소유권, 권리, 의무 등이 뚜렷해야 함은 물론이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누가 전력을 사용하는지 매출이 어디에서 발생해 어디로 가며 어떻게 배분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기 적인 문제뿐 아니라 재정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위험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반드시 필요하다.


전력 수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을 포괄하는 수퍼 그리드 사업이 최근 들어서 지지부진해진 상황과 원인에 대해 무지하다. 왜냐하면 이제 에너지는 분권화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져가기 때문이다. 즉, 대규모 전력 연결망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제 신재생 에너지를 포함하여 전력 계통이 전통적인 중앙 집중방식에서 지역발전설비가 지역전력수요를 공급해 주는 지역 분산형 마이크로 그리드 형태로 진화해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별 마이크로 그리드가 구축되면 전력생산이 과도해 지는 일이 없어지고 전력수요에 맞춰 신속하게 전력 생산량을 보강하는 정책 추진도 쉽다. 수요관리형 지역 분산형 전력 공급망은 이미 독일과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 추구하는 방식으로 산업단지별로, 아파트 단지별로 또는 도시 별로 지역 특성에 맞는 전력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는 태양열이나 지열 혹은 폐기물 에너지 등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방분권,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다른 차원에서도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상대국의 정부가 자국의 에너지 마피아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신재생 에너지 등과 같은 대안을 발전시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 상대국의 진보적 에너지 정책까지 고려해서 협상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만 이익이 되고 상대국에게는 피해를 주는 것을 서슴지 않는 대외 정책 제안은 지양해야 한다. 가스수입이든 전력수입이든 미국과 북한과 같은 국제정치적 문제와 국내 에너지 마피아 등과 같은 국내 기득권 세력의 문제가 현실화에 있어서 더 큰 장애물일 수 있다. 반대로 러시아로의 에너지 의존성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 국민의 생활터전과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임을 이젠 명심해야 한다.


이 글은 2017년 6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