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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복지정책의 정치적 프레임 (김재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06
조회
346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누리과정 예산편성 문제로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영유아의 보육과 교육에 대해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이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를 했다. 과감한 복지정책 공약으로 정권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이후 무상보육과 교육정책인 누리과정의 대상은 만5세에서 만3세~5세로 확대되었다. 외견상으로 보자면, 공약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 정책을 뒷받침하고 적극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재정의 문제는 도외시되었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 교육청 예산으로 누리과정을 충분히 실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지방교육교부금은 지난해 보다 1조 8천억 원을,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전입금은 1조 원 이상 증액할 예정이며, 또한 정부가 누리과정용으로 예비비를 3000억 원 지출할 것이므로 약 3조 원의 세입이 증대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시도교육청은 정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2015년에는 2014년보다 교부금이 오히려 줄었기 때문에 2014년보다 늘어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2013년 수준이 되는 것이고, 인건비 상승액 1조 2천억 원과 지방채 상환액 4천억 원 등을 감안하면 세입이 증대되는 효과는 없는 것이 된다고 한다. 특히 2013년의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청이 30%를, 지자체가 70%로 각각 나누어서 부담했었다. 또한 지자체의 전입금은 순차적으로 2017년까지 들어오는데, 이를 미리 당겨서 사용하게 되면 2017년에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는 실질적 보장도 없으므로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라고 한다.


치명적으로 정부는 지방교육교부금의 증가추이를 잘못 예측한 과오를 저질렀다. 정부는 지방교육교부금이 2013년 42조 1천억 원, 2014년 45조 6천억 원, 2015년 49조 4천억 원으로 해마다 증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부자감세정책과 내수 부진 등 경제 상황의 악화로 증세가 그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제 교부금은 2013년 40조 8천억 원, 2014년 40조 9천억 원, 2015년 39조 4천억 원에 머물러야 했다. 지방교육교부금은 오히려 감소하는데 누리과정 등 보육과 교육복지에 소요되어야 할 예산은 증대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한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공언했던 대선 당시의 공약은 허구였던 셈이다.


127787_163235_0116.jpg사진 출처 - 미디어오늘


그런데도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4.13총선을 겨냥하여 “교육감님! 정부에서 보내준 교육예산 41조 누리과정에 왜 안쓰시나요?”'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시민들로 하여금 마치 교육감들이 예산을 받고서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악의적인 프로파간다를 행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검찰에 교육감들의 직무유기 수사를 지시하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에 대해서만 목적예비비 3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유아보육법 제34조 제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 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제23조는 영유아 무상보육 실시에 드는 비용은 예산의 범위에서 부담하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정부는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은 법령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는 교부금의 무상보육 사용 항목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모순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부가 2012년에 누리과정을 교부금으로 충당하기로 결정하면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은 급히 개정하였지만, 당시 시도교육청 교육감들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는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야기된 것이다. 더욱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시도교육비 특별회계 예산으로 편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심의와 집행 권한은 시도교육청과 시도의회에 있는 것이다. 또한 교육기본법,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유아교육법 등을 보더라도 교육감은 유치원을 포함한 학교에 대한 예산 집행 의무를 부담하며,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즉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것은 법령 위반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누리과정의 무상보육․교육정책은 정부의 정책이며, 국가의 정책인 이상 국가가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대척점에 서있는 교육감들의 책임으로 돌리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또한 이를 4.13총선에서 야당과 진보진영을 겨냥한 악의적인 정치적 프레임으로 작동케 하도록 하는 수단들을 강화하고 있다. 복지정책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표를 구하는 당시에만 시민들에게 던져지는 미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저성장과 가계부채의 급증, 노동시장의 극대화된 유연화로 인해 대다수 시민들의 생존 보장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겠다는 것이라면, 그에 충분한 안정된 보육과 교육, 기본소득 등 복지가 우선 되어야만 한다. 복지정책은 정치적 프레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을 목적으로 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이에 어떠한 정치적 술수가 동원되어서도 안 되며, 시민들에게 정직하고 올바른 정책 내용들을 제공해야 하고, 수단들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사정변경 등의 이유를 설명하는 등 정직하게 대응하고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모든 정책의 최소한의 정당성은 그러한 것에 있다.


이 글은 2016년 2월 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