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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존재 자체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도전의 한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정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02
조회
245

정지영/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사무국장


다사다난했던 2015년 을미년을 보내고 2016년 병신년(丙申年)을 앞두고 사전적 의미로 ‘병신(病身)’인 당사자들은 언어적 유희를 가장한 대화와 문장을 얼마나 많이 접하게 될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16년 병신년에는 장애인의 권리가 더욱 신장되길 바랍니다. 내년은 1년 365일이 장애인의 해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자리한 사람들의 큰 박수와 웃음이 터집니다. 같이 웃어야할지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를 해야 할지 망설이다 어색한 웃음과 치다 만 박수에 혼자만 머쓱해 집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병신이란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기형이거나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 몸을 살펴보니 두 다리가 걷는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라 사전적으로 병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병신이라는 말에는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함께 있어 주로 남을 욕할 때,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자책할 때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의 수정은 언어로써도 존중받지 못하는 집단, 지칭하는 용어에 비하와 무시의 감정이 실려 태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병신이라는 용어는 차별적 언어로써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퇴출되었던 것이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우려하는 부분은 문장의 맥락에서 병신년(丙申年)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놀리거나 무시하기 위하여 병신년(丙申年)을 섞어 쓰지만 충분히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표현들이 많아질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불구자에서 장애인까지 오게 된 큰 이유는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결함이나, 부족함, 그로 인한 자격의 박탈이 당연시되는 것을 막고 개인이 가진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포용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사회활동의 어려움을 가져오는 문제, 즉 진짜 장애를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외국의 장애인권운동가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people with disability)이라는 객관적인 표현보다 불가능하게 된 사람이라는 뜻의 disabled peoples를 더 선호합니다.


장애를 가리키는 말은 으레 상대를 낮추거나 비하하는 의도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곰곰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장애는 불편합니다. 누구도 희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실존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회피할 문제도 아니며 사람이 살다가 한 번 이상은 감기 같은 질병에 걸리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것이라면 장애 또한 살다보면 혹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장애인 인권운동의 선각자이셨던 故이익섭 회장님의 강연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여성, 차별금지, 아동, 인종차별, 이주노동자에 대한 각종 다양한 기본권리를 해놓고서는 이제 좀 인간다워졌다고 인류가 폼을 잡으려하는데, 장애인 문제가 자꾸 괴롭힌다. 역사적인 의미에서 왜 맨 나중에 왔을까, 우리가 장애를 희망하지도 않고 장애인 단체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큰 시련이고 우리에게 큰 도전을 요구하는지 인류가 자성하지 못하면, 절대 인권이라고 하는 것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짐승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고 이런 존재를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도전이다. 짐승은 할 수 없고 어린이도 할 수 없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더더구나 할 수 없는 굉장한 도전이다. 그렇게 장애인 문제는 1/10이면서 누군가가 해주어야할 과제가 아니고 정말 진정으로 도전받아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21세기가 아니면 도전할 수 없었던 과제이다(2005년 제5기 장애인청년학교 강연 중).”

한 사람을 존중하고 그의 인권을 보장해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든 존중함으로써 인권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인권의 시작,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것이 아닌 존재자체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도전의 한 해가 되길 희망하며, 2016년, 대한민국 국민 모두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은 2015년 12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