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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첫 외박 (정보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4:40
조회
323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음... 들살이 가기 전에 시우에 대해 부모님과 얘기를 먼저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반기 부모 면담을 해야 하니 조금 당겨서 하는 것이 어떨까요?”


터전살이를 끝내고 며칠 뒤, 시우의 담임은 내게 부모 면담을 요청했다. 시우는 올 3월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올해 다섯 살이다. 시우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매해 가을 5세부터 7세까지 1박2일로 들살이를 다녀오는 교육을 하고 있다. 민속마을에서 자연을 체험하고 하룻밤을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지내고 오는 일정이다. 5세 아이들은 부모 없이 집이 아닌 장소에서 잠을 잔 경험이 대체로 없기 때문에, 들살이의 전초전으로 터전(어린이집)에서 먼저 하룻밤을 부모와 떨어져 자는 연습을 한다. 그걸 터전살이라고 부른다.


나는 시우의 터전살이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시우는 큰고모댁에서 이미 이틀이나 부모 없이 자고 온 적이 있었고 평소 분리불안이 큰 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터전살이를 한 다음날 아침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나는 뜻밖의 결과에 무척 놀랐다. 밤새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운 아이가 시우였다는 것이다. 담임은 그날 밤의 경험과 그 즈음 시우의 행동들에 대해 부모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예정보다 부모 면담을 앞당겨서 할 만큼 시우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담임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에 나는 어떤 반응을 어디까지 보여야 하는 것일까? 취업 인터뷰도 이렇게나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게 두 가지 숙제가 던져졌다. 하나는, 어째서 시우는 나의 예상과 달리 많이 울었던 걸까? 그 이유를 알아내고 어떻게 들살이를 보낼 수 있을지 판단을 하는 것. 두 번째는 시우의 즉각적이고 히스테릭한 감정 표현, 소리를 갑자기 지른다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울기부터 하는 행동이 왜 부쩍 심해진 것일까?


시우는 올해 두 번의 집 이사를 경험했다. 3월에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고. 6월초와 8월말에는 집을 이사했다. 터전에서의 생활은 6개월을 넘어서면서 많이 익숙해졌지만, 새 집으로 이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험하게 된 터전살이는 ‘무서웠’던 것 같다. 아직 새 집에서 1층이든 2층이든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하는 정도니까,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상태에서 안정감을 주는 엄마가 옆에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닐까. 큰 소리로 운 것이 아니라 훌쩍훌쩍 계속 울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시우가 안쓰러웠다. 밤에 아이들이 번갈아 울고 몇몇 아이들은 오줌으로 이불을 다 적시는 통에 한잠도 못 잔 담임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


두 번째 고민은 들살이 준비와는 무관하지만 실상 더 골머리를 앓고 있던 내용이었다. 결국 부모 면담에서 솔직하게 나의 ‘준비된’ 답은, 시우에게 나는 너무 엄격한 엄마라는 것. 사실이다. 나는 시우에게 많은 시시한 것들을 ‘엄격’하게 또한 엄하게 못하게 하고, 나쁜 감정 표현을 억눌렀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안 되면 기분이 나쁘고 그 나쁜 기분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것인데, 아이라고 다를 리 없을 텐데. 아이가 그림 그리다 마음대로 안 그려졌다고 종이를 마구 구기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이라고 나는 종이 구긴다고 아이를 타박한 것일까. 종이는 찢어지고 구겨지라고 있는 것인데. 아이가 조금이라도 반듯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표현을 행동으로 하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오히려 내 쪽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직장인으로 절제된 감정표현에 익숙하다 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도 감정 표현이 밋밋하게 나온다. 직장생활로 돌아가기 전 아이와 온종일 집에서 지낼 때는 분명 이렇지 않았다. 기쁜 감정은 더 기쁘게, 아이가 즐거워하면 같이 온전히 즐거워할 수 있었는데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간 지 3년쯤 되니 무색무취한 감정 표현의 인간이 돼버린 것 같다. 감정에 충실하라, 직장인 콘셉트에서 엄마로의 빠른 전환이 짧디 짧은 저녁 시간에 얼마나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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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맘앤앙팡


부모 면담을 끝낸 후 들살이까지 일주일의 시간 동안, 우리 부부는 열심히 시우와 들살이를 준비했다. 시우는 여전히 자신은 들살이를 가면 분명 울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걱정이었다. 자신이 울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울어도 괜찮아, 금방 자고 나면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울고, 응?” “시우야, 이 조그만 코끼리 인형이 너를 지켜줄 거야, 엄마가 가방에 달아줄게. 무서우면 코끼리 인형을 안고 자.”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자면 괜찮을 거야, 혹시 그래도 무서우면 태연아, 나 무서우니까 손 좀 잡고 자도 돼? 하고 물어봐.” 등등. 시우는 매번 알았다고 내 말을 따라 연습도 해보고 확인도 여러 번 했다.


들살이를 떠나는 아침, 다행히 시우의 컨디션은 좋았고, 지금껏 마음을 다져온 덕분인지 자신감도 있어 보였다.


들살이에서 돌아온 시우. “안 울었어. 토끼불이 있어서 안 무서웠어.” 누군가 들려 보낸 작은 토끼 수면등이 큰 역할을 했구나. 그러니까 무엇보다 깜깜한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잠도 같은 반 여자아이도 담임도 아닌, 6세 남자아이와 원장님 사이에서 누워 잤다고 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인 듯 무심하게 얘기하는 시우. 몇 주간 가슴 졸이며 걱정했던 아이의 첫 외박이 무사히 끝이 나서 정말 다행이긴 한데, 아이보다 더 불안해하며 혼자 앞서 소란 피운 것 같아 겸연쩍기도 하다.


“교육이란 부모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세계에서 갈고닦으며 쟁취해가는 것이 아닐까.”(시모주 아키코, 『가족이라는 병』 중에서)


이 글은 2015년 10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