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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이후를 고민하자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6
조회
334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음에도 청문회에 개입을 하는 등 조금씩 박근혜 일파의 반격도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은 일단 헌재와 특검으로 넘어가 있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시위에 대한 환호와 격찬을 넘어 박근혜 이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구체적인 논의와 행동을 주도해야 함에도 아직 본격화되고 있지 못 한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퇴행이 확연히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의 군사독재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최소주의적 민주주의마저 붕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특히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세력들,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계파의 분열을 초래할 정도로 정권과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현 정국을 좌지우지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탄핵까지 이끌고 온 동력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제약 요인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설사 지금보다 더욱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도, 그리고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도 기득권 지배집단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만일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더라도 저들은 곧바로 경찰로 하여금 폭력적 진압을 명령했을 것이다. 시민들의 대규모 집회 참가와 다양한 행사가 가능한 이유가 이러한 지배 집단에 대한 극도로 낮은 지지율로 인해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진압을 하지 못 하는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광장에서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리는 차분히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규모 시위대가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고 서울시 중심가를 점령하고 행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식을 뛰어 넘는 국정농단과 그를 방조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분노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 국민적 분노를 야기한 충격적인 비밀들은 검찰의 수사나 야당과 시민사회의 압박에 의해 폭로된 것이 아님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즉 정권 재창출에 대한 불안감이 극대화되면서 조선일보 등 기득권세력 중 일부가 반발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청와대와의 힘겨루기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비박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 일부와 이들과 결합하려는 일부 야당 내 특정 세력과 명망가들에 의한 기득권 세력 재편 전략은 곧 본 궤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특히 저들은 심지어 정권이 재창출되지 않을 경우까지 대비해서 개헌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갈 가능성도 있다.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야당이나 시민사회에서도 엇갈리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 어떤 긍정적 측면이 존재하더라도 이렇게 현 국면의 상당 부분들이 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여전히 저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 속에서 상황적 맥락에 대한 파악 없이 그 자체의 긍정성만으로 동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현 국면이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착각되기 쉽지만 정세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art_1482194023.jpg사진 출처 - 프레시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대선에서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느냐의 문제로 협소화시켜 격렬한 논쟁이 대두될 것이 자명하다. 또한 소위 촛불 시민의 저항의 성과를 보수야당의 집권으로 헌납해 버려서는 안 된다며 격렬한 상호비방도 난무할 것이다. 진보정당이 대안이 되지 못 하는 현재 어떻게 보면 이러한 혼란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이제 이러한 정치 정당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급격하게 정치화되고 있는 시민들의 다양한 직접적인 권력 감시와 견제, 나아가 통제 수단이 마련될 수 있도록 담론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방조자들 뿐 아니라, 검찰 등 관료 조직들, 새누리당, 재벌들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거나 처벌을 피하고 있는 집단들에 대한 재산몰수를 포함한 엄정한 법 집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다양한 기득권집단들이 이들을 앞세워 이익을 관철시킨 결과물들, 즉 노동개악, 국정교과서, 위안부합의, 한일군사협정, 사드배치 등등 반민주적이고 반평등적이며 반평화적 정책들을 모조리 무효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단순히 박근혜 일당과 그 부역자 집단을 넘어 차후 그 어떤 세력들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지 못 하도록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지도록 강제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검찰 등 사정기관에 대한 시민적 통제 장치 마련은 가장 시급하다. 현재 돌연 엄정한 수사를 하다가 청와대와 충돌하고 있는 것처럼 또 다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검찰은 가장 시급한 개혁의 대상이다. 이 순간까지도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해서는 구속은커녕 증거인멸을 방조해 오고 있다. 현재 지방검사장들을 주민선거로 선출하도록 하고 선출된 검사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찰청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데, 이를 넘어 검찰의 수사권독점을 분산시키는 등 한층 더 강화된 검찰에 대한 시민 통제권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검찰 외에도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불법적인 방식까지 동원해 이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실패로 돌아갔지만 간첩단 조작 등을 통해 야권 인사들을 엮으려 하는 등 공작 정치를 주도해 온 국정원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수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국가권력 기관들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독립성과 삼권분립의 원칙 침해 등에 대해 반드시 밝혀내야 하며,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 기구들의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이 바로 언론이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집요하게 진행되어 온 언론 독립성 파괴 공작과 종편 지원 등으로 인해 불과 얼마 전까지 언론은 철저하게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언론들은 심지어 시위 진행 지도를 보여주며 시위 진행 상황을 안내하거나 앞 다투어 현 정권의 온갖 비리와 국정농단, 심지어 수십 년 전의 박근혜와 최태민 간의 관계까지도 보도 경쟁을 하고 있다. 이는 결단코 청와대의 통제력이 약화되어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자세를 되찾아서도 아니다. 따라서 언론에 대해서도 매우 단호한 단죄와 더불어 권력의 언론 장악 장치들을 파괴할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하고 마찬가지로 시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벌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근혜 게이트에서 저들이 소극적 참가자거나 피해자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박근혜와 재벌 총수들이 직접 만나 돈을 낸 대가로 실제로 이들의 민원을 들어주었는지 아닌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쇼를 하면서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언제든지 정권은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과 기득권세력의 이익에 복무하고 노동자, 서민들을 억압해 온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현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영복 엘시티 특혜분양에서 보듯이, 감시권 바깥에서 국가를 좀먹고 있는 재벌 외 자본가들과 부유층에 대한 사회적 통제수단,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권력과 자본의 영합을 제어할 수 있는 시민이 주도하는 논의들이 활발해져야 한다. 진보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정치사회에서의 문제만으로 스스로 사안을 좁혀 어느 집단에 줄을 서거나 지지를 보내는 일에 과도하게 몰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정치적 사안들이 불거지기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한국사회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주자와 소수자는 물론 여성 일반, 심지어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조차 혐오와 배제의 정서가 우리 사회를 뒤덮어 왔다. 박근혜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것이 문제’라든가 최순실 모녀까지 포함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등 이미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국민 내에서조차 심각한 여성혐오에 근거한 비판을 해 온 이들이 많다. ‘병신년에 병신년이 병신 짓 한다’는 등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심지어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시위대 안에도 넘친다.


따라서 이제 저항이라는 공통점 외에 다른 부분들, 특히 그것이 인권과 (성)평등, 실질적 민주주의 등을 저해하는 것일 경우 과감하게 드러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해서 반동적이고 퇴행적인 요소까지 다 용인하고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시민 대부분은 설사 정권이 바뀌더라도 큰 변화 없이 현재의 헬조선을 살아갈 것이다. 결국 커다란 사회경제적 변화가 없으면, 더욱 무서운 기득권세력의 반격이 있을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이제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저항이나 탄핵 그 자체에만 착목할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100 년도 더 넘은 과거에 썼던 용어와 개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현실 속에서 가능한 것부터 조금씩, 그러나 아주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렵게 열린 시민들의 고양된 정치의식을 정치사회만으로 좁혀서 집중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이 이렇게 끔찍한 사회를 방치한 결과가 정치를 퇴행하게 만든 것이기도 하다.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정치세력들에게 향해야 하는 요구와 불만을 옆과 아래에 있는 약자들과 소수자들에게 향하게 만든 것이다. 100년 전과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는 안 되지만, 누가 대선후보가 될 것이고, 어떤 당이 지지율이 높은지가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와 경제를, 관료와 재벌을 조금 더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21세기적 시민혁명이 필요하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