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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사태와 대학주체의 교육인권, 그리고 고등교육의 공공성 (김재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37
조회
404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은 약 87%에 이르는 사립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국가의 고등교육정책이 공적부담을 통한 공교육 중심보다는, 민간재원에 바탕을 둔 사학중심으로 행해진 것에 따른 결과이다. 사학의 양적 팽창과 사학의 높은 의존도는 국가로 하여금 학교법인의 관리·감독을 무디게 만드는 결과를 빚어냈다. 이러한 방임적 사학중심의 교육정책은 사립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으로 하여금 사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고, 운영자는 학교를 공교육의 현장이 아닌 자신의 전유물이자 왕국으로 여김으로써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그 중심에 상지대가 있고, 상지대 사태는 국가의 그릇된 고등교육정책과 그 운영이 공교육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적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3년 당시 이사장인 김문기는 공금 횡령과 부정입학 관련 금품수수 등의 비리로 구속되어 상지대에서 물러났고, 상지대는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새로이 정식이사가 선출되면서 비리재단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그러나 김문기 측은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결의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청구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판결로 “임시이사들이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들(종전이사)에게 이사회결의의 하자를 다툴 소의 이익이 있으며, 임시이사는 임시적으로 그 운영을 담당하는 위기관리자로서, 일반적인 학교법인의 운영에 관한 행위에 한하여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고 판결(대법원 2007.05.17. 선고 2006다19054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함으로써 비리재단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이후 교육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상지대의 분규사태를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정식이사 8명과 임시이사 1명을 선임했는데, 이사 9명 중 4명은 김문기가 추천한 인물로 구성되었다. 교육부가 상지대의 정상화방안이라는 미명하에 비리재단을 복귀시킴으로써 진정한 정상화를 갈망하는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불러왔고, 오히려 상지대는 더욱 비정상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에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등 상지대 구성원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이사선임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1심과 2심은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이사의 선임으로 교수와 학생 등 대학구성원들의 학교의 운영이나 학문의 자유 등에 관한 권리나 이익이 침해된다고 볼 수는 없으며, 설령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지극히 간접적일 수밖에 없고, 또한 학교의 구성원일 뿐 학교법인의 운영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은 원고들로서는 이사선임과 관련하여 종전이사의 지위와 같은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학교구성원인 원고들이 종전이사에 준하여 이사선임처분에 대하여 다툴 법률상 이익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결(서울고등법원 2012.07.11. 선고 2011누40402 판결 참조)함으로써 비리재단의 복귀는 법적으로도 완결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15년의 대법원판결에서 서울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함으로써 대반전이 이루어졌다. 이 판결의 핵심은 “임시이사제도의 취지, 교직원·학생 등의 학교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한 개방이사 제도에 관한 법령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사립학교법과 그 시행령 및 법인 정관 규정은 헌법 제31조 제4항에 정한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에 근거한 대학교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의 학교운영참여권을 구체화하여 이를 보호하고 있다고 해석되므로,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는 이사선임처분을 다툴 법률상 이익을 가진다.”는 것이다(대법원 2015.07.23. 선고 2012두19496, 19502 판결 참조). 이로써 대학교 운영의 주체, 다시 말해 학교민주주의의 주체는 근본적으로 대학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해 주었다.


사학의 비리재단에 의해 촉발된 분규로 최대의 피해를 입는 당사자는 대학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이다. 대학의 진정한 정상화와 민주화를 부르짖는 교수들과 직원들은 부당한 파면과 해고 등으로 내몰리며 교권을 유린당하고 비리재단의 입맛에 맞는 이사와 교수, 직원들로 그 자리가 메워짐으로써 학생들의 정상적인 수업권은 침해당한다. 더욱이 교육부의 인위적인 대학구조조정의 칼날은 상지대 구성원들의 교육인권을 갈가리 찢어내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은 학령인구감소로 인해 대학입학정원이 줄어들 것이므로, 그 불균형한 수급을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대학숫자를 줄이고자 하는 것에 있다. 그 수단으로 교육부가 설정한 기준에 의한 대학평가를 통해 부실대학을 지정하고 지정된 대학에 대한 정부재정지원 및 사업의 제한, 국가장학금 수혜와 학자금 대출의 제한으로 고등교육시장에서 전면 퇴출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대학구조개혁평가라는 미명하에서 상지대는 D등급을 받아 부실한 대학으로 지정되고 말았다. 파행적이고 부실하게 된 대학운영의 책임이 비리재단인 학교법인의 그릇된 운영으로 인해 빚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실질적인 내용과 과정은 무시한 채 정부재정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대학주체인 교수와 학생들의 교육인권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고등교육에 있어 사학의 양적 팽창과 이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분명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에 필연적으로 사악한 비리사학이 양산되었고, 고등교육을 위한 시민의 지출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하기만 해왔으며 고등교육은 그 본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전문기술 내지 직업학교로 전락하고 있는 등의 총체적인 고등교육 황폐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적으로 그에 대한 책임은 교육의 공공성을 방기한 국가에게 있음에도, 그 피해와 책임은 고스란히 대학구성원과 시민에게 지워지고 있다. 인제대 고영남 교수의 지적처럼, 공적인 학교제도를 보장하고 일정한 범위에서 사립학교의 운영을 감독·통제할 권한과 책임을 지는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자신의 부작위와 무능을 교육주체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국가는 고등교육정책의 나침반을 교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지점으로 되돌려 놓아야만 한다. 현재와 같은 인위적인 대학구조조정의 수단을 폐기하고, 대학의 자율성과 대학주체의 교육인권을 드높이기 위한 고등교육의 본질을 되찾는 방안을 모색하고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사학의 비리재단부터 철저하게 퇴출시켜야만 한다. 상지대가 보여주고 있는 비리재단과의 처절한 싸움과 그 결과는 고등교육의 정상화와 공공성 강화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이다. 상지대의 정상화 투쟁은 비단 상지대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고등교육, 더 나아가 전반적인 교육정책에서 교육부와 학교법인의 독단적인 지배 권력으로부터 잃어버린 교육주체들의 교육인권을 되찾아 주는 상징적인 깃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깃발이 모든 교육현장에서 나부껴야만 교육복지를 통한 시민복지국가로 성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16년 9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