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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내전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역할 (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22
조회
875

: 아랍에미리트가 동부지역 하프타르 장군 지원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아랍에미리트(UAE)는 리비아 내전에서 동부지역 파벌을 이끄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후원한다. 2016년 5월 14일자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동부지역을 통제하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은 ‘리비아에서 가장 강력한 리비아 국군(the Libyan National Army) 사령관’이고, 리비아 분쟁에서 거의 모든 주요한 파벌과 협력하거나 전투함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20160622web03.jpg사진 출처 - Economist.com


□ UAE가 전방위적으로 하프타르 장군 지원


2016년 4월 3일 리비아 옵저버에 따르면, UAE는 리비아 미디어 매체의 약 70%를 지배한다. UAE 71은 “UAE 보안부가 7개의 리비아 미디어 매체와 4개의 소셜 미디어 페이지에 자금을 대고 후원한다. 아부다비는 이들 미디어 매체에 약 7천 4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이러한 미디어 매체는 칼리파 하프타르에게 우호적이다.”고 폭로하였다.


뿐만 아니라 UAE는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이 동부지역을 완벽하게 장악하도록 장갑차, 트럭, 탄약과 무기 등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4월 26일 리비아 프로스펙트에 따르면, UAE에 기반을 둔 유조선이 동부지역 마르사 엘 하리가 항구에서 석유를 적재하였다. 이러한 UAE-동부지역 석유 비밀거래는 칼리파 하프타르를 경제적으로 돕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UN주재 리비아 대사, 이브라힘 다바시는 “국민합의 정부(the Government of National Accord)는 리비아 석유를 불법적으로 수출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우리는 전통적인 경로를 벗어나는 리비아 석유구매에 관하여 매우 우려한다.”고 밝혔다. UN안보리는 국민합의 정부의 관리를 받는 트리폴리 소재 리비아 석유회사(the Libyan Oil Corporation)를 통해서만 리비아 석유판매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 동부의 하프타르 세력/ 서부의 국민합의 정부


현재 리비아의 주요한 분열은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의 리비아 국군이 지배적인 동부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리비아 돈과 미스라탄 부대 등이 활동하는 서부 사이에 존재한다.


2015년 12월 UN의 중재로 동부와 서부지역 일부세력들이 합의함으로써 국민합의 정부를 창설하였다. 그런데 동부지역 의회는 반대자들이 많아 이 합의를 승인하지 못했다. 게다가 하프타르 지지자들은 “국민합의 정부가 하프타르 장군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 정부에 리비아 국군 지휘권을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합의 정부는 국방장관직을 동부지역 군 사령관 중 한 명인 마흐디 이브라힘 알 바르가티에게 할당함으로써 하프타르를 완전히 소외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3월 30일 국민합의 정부 총리 세라즈는 튀니지로부터 해로를 통해서 트리폴리로 들어왔으며, 해군기지에 머물고 있다. 그가 임명된 지 3개월이 지난 이후에야 비로소 해로를 선택해서 트리폴리에 들어온 까닭은 트리폴리에 기반을 둔 정부가 그의 트리폴리 입성을 반대하면서 공항을 폐쇄했기 때문이었다.


세라즈는 최근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권력 투쟁에서 영향력 있는 특정파벌과 특별한 제휴관계를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하면, 세라즈는 내세울만한 이력이 없고, 리비아내에 정치․군사적인 지지기반이 거의 없었으며, 외국 세력들에 의해서 총리로 세워진 인물이다.


그런데 2016년 5월 세라즈는 국민합의 정부 역할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시르테에 본거지를 둔 IS를 겨냥하여 반-IS 센터를 트리폴리에 창설하였다. 그는 이 센터를 하프타르 군대에 대항하는 주요 세력인 미스라탄 부대 출신들로 채웠다. 이로써 국민합의 정부는 서부에 그 중심을 두고, 현재 진행되는 내전에서 동부의 하프타르 세력과 통합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프타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5월 중순에 미스라탄 부대와 하프타르 군대는 시르테 남부 질라 근처에서 전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UAE의 후원을 받는 하프타르 장군도 시르테에 본거지를 둔 IS에 대항하는 전투에서 필수불가결한 서방의 동맹임을 입증하면서, 앞으로 진행될 리비아 국가 수립을 위한 협상에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한다.


□ 하프타르 장군의 부활 그리고 혼돈의 늪


정치 초년생인 세라즈와는 달리, 하프타르 장군은 1969년 쿠데타부터 현재 내전 시기까지 40년 이상 변화무쌍한 리비아 정치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1969년 이드리스 왕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한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이 주도한 쿠데타에 참가한 이후, 카다피와 함께 리비아 정치․군사의 중심에 있었다. 카다피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하프타르 장군은 1980년대 중반 리비아-차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후원을 받은 차드 군대가 하프타르 장군이 이끄는 리비아 군대를 굴복시켰다. 결국 1987년 하프타르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차드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 그런데 이때 카다피 대통령은 하프타르 장군과 연락을 끊고, 차드에서 포로가 된 리비아 군대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하프타르 장군을 배신하였다.


1990년 미국 CIA는 협상을 통하여 하프타르와 그의 병사 300명을 난민 프로그램을 통해서 수단에서 미국으로 데려왔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으며, 미국 정보부와 협력하여 카다피 암살을 시도하였다. 2011년 카다피에 반대하는 반란이 시작된 이후, 하프타르는 리비아로 귀환하였고, 동부지역 반란군 사령관이 되었다.


2014년 2월 TV에서 하프타르 장군은 서부지역에 중심을 둔 일반 국민회의(the General National Congress)에 반대하는 봉기를 일으키도록 요구하였다. 일반 국민회의는 카다피 축출 이후 2012년 7월 실시된 국민투표(유권자 중 61.58%, 1,764,840명 투표)를 통하여 출범하였다. 카타르와 터키의 후원을 받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일반 국민회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이슬람주의자들에 맞서 UAE와 이집트의 후원을 받는 하프타르 장군은 2014년 5월 벵가지와 동부지역 내 이슬람주의자 민병대를 척결하기 위한 군사작전(Operation Dignity)을 시작했다. 2014년 6월 25일 국민투표(유권자 중 18%, 약 63만 명 투표)로 동부지역에 중심을 둔 대표자들의 정부(the House of Representatives, 2014년 8월 4일 창립)가 일반 국민회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하프타르를 리비아 국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2016년 2월 리비아 국군은 이슬람주의자 민병대 대부분을 벵가지 밖으로 축출하였고, 2016년 4월 중순에는 이슬람주의자들을 벵가지 동쪽 250Km 떨어진 데르나로 축출하였다. 현재 하프타르 장군이 이끄는 리비아 국군은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리비아 돈, 미스라탄 부대, 벵가지 혁명 세력인 슈라위원회, 시르테에 중심을 둔 IS 등과 싸우고 있다.


UAE뿐만 아니라 이집트, 카타르, 터키, UN,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한 외국세력들이 리비아 내 서로 다른 파벌들을 지원하면서, 리비아는 완전한 혼돈의 늪, 전쟁터로 변했다.


이 글은 2016년 6월 2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