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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민중들이 깨어나야 한다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17
조회
324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동학대 문제로 한참을 사회가 들끓었고, 바로 그 전까지는 각종 잔혹한 살인 사건이나 군과 학원 폭력의 희생자 문제, 그리고 염전 등 곳곳에서의 장애인 학대 사건 등이 지면을 장식해 왔었다. 이렇게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근에 안산의 한 호수 주변에서 사체의 하반신이 발견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며칠 뒤 나머지 상반신이 발견되었고, 곧바로 그 끔찍한 토막살인 범죄의 용의자가 검거되면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 젊은이가 그러한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며, 살해 동기나 공범의 여부, 그리고 살해 후 SNS 활동 등의 행적들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어찌 되었든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사한 범죄들 중에서도 이 범죄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물론 이름 등이 공개되면서부터이다. 소위 인권선진국들에서도 강력범죄자들의 인적사항들에 대해서는 공개를 당연시 여긴다는 사실을 근거로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강력범죄자들의 얼굴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몇 가지 기준을 근거로 몇 년 전부터 일부 강력범들의 얼굴이 공개되어 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다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유사한 범죄 등으로부터 위협을 크게 느끼며 불안감이 커진 한국 사회의 여론은 신원 공개론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 본격적인 수사는 물론, 최종적으로 법적인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깨고 얼굴을 비롯한 용의자의 신원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입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용의자의 신원이 공개되자마자 그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 심지어 전 여자 친구의 신상까지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 일어났고, 인터넷에는 이들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넘쳐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에 대해 경찰과 검찰은 단호하게 대응할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는 수사당국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얼굴 등 신상 공개 여부에 있어서 중요한 한 원칙은 바로 가족 등 범인 주변인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 경우에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원칙은 제대로 홍보가 된 적이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이 이번에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무엇인가를 덮거나 관심을 흩어 놔야 하는 목적이 있는 양 너무나 과도하게 모든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소한 현재의 한국의 인권감수성과 민주주의 수준에서는 용의자 혹은 심지어 형이 확정된 범죄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상습적 성범죄자들의 경우 신상 및 거주지 공개에 대해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기에는 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범죄자의 인권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용의자 혹은 범죄자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지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공개는 반대해야 한다. 얼굴을 공개해서 설사 그 용의자 혹은 범죄자의 가족이 누군지를 알게 되더라도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감옥에 들어가 있을 범죄자는 얼굴이 드러나도 큰 피해를 보지 않는 반면, 연좌제 비슷한 것이 전 사회적으로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의 가족과 친척들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


소위 수감자 가족들의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 한다. 더군다나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DNA가 그 아들, 딸에게도 유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꽤 확고하게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수감자 가족들은 한층 더 고통을 받는다. 평생을 주변의 시선을 피해 살아가야 하는 이들은 연애와 결혼, 취업과 거주 등에 있어서 심각한 제약을 받으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뿐인가. 가족의 범죄가 마치 자신의 범죄인 양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가야 하는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사회든 내 피붙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는 사실은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끔찍한 기억과 경험이겠지만, 한국처럼 가족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전사회적인 연좌제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같은 죄인으로 취급받는 사회에서는 범인은 물론 용의자 혹은 피의자에 대한 신상 공개는 대중의 관음증 해소 외에는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반대해야 한다.


article.jpg사진 출처 - 뉴스1


이러한 고민 없는 공개/비공개 논의는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몇몇 여성 연예인들이 소위 성매매를 했다고 해서 한바탕 여론이 뜨거웠었다. 그런데 엄연히 성을 산 당사자인 남성의 신원은 제대로 드러나지도 않은 채, 온통 사회의 관심은 여성 연예인들에게만 쏠렸다. 좌익효수를 비롯한 국정원의 선거 개입, 세월호와 국정원과의 관계, 전경련과 국정원과 어버이연합 등의 관계 등등 훨씬 더 집요하게 궁금증을 해소해야 할 사건들이 넘쳐나지만, 때로는 언론과 정권의 의도에 놀아나서, 때로는 우리 스스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크다.


이 외에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는 또 다른 문제를 드러냈다. 처음에 시신의 발 크기가 과도하게 작다는 보도에 대해 네티즌들은 안산 일대의 외국인 노동자일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중국 동포(조선족)들의 범죄나 동남아 이주자들의 과거 범죄 사례들을 들며 한국사회가 이들로 인해 위험해진 것으로 단정하고 심지어 피의자가 아닌 피해자가 외국인일 것이라는 추정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주의적 발언들이 넘쳐났다.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인종주의적인 댓글들이 넘치는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자살률과 마찬가지로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각종 산업재해들까지 합할 경우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각종 범죄들의 증가는 한층 더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극단적인 사이코패스는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범죄들, 심지어 소위 ‘묻지마 살인’조차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강력범죄들의 발생을 사회구조적인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들의 부정의와 불공정한 행태, 부패와 탐욕으로 인한 범죄들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데 반해, 저임금과 무복지, 빈곤과 불평등, 위계적 질서와 극심한 양극화, 각종 갑질들과 다양한 폭력에 노출, 방치되어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매우 잔혹한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며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위정자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킨다면 민중들이 깨어서 그것들을 막아야 한다. 추상적인 거리정치나 낡은 목적을 가진 저항논리나 운동정치론만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비록 주체적 의지로 역사와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지는 못 하지만, 설사 근본적인 변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당면한 정세, 아니 아주 작은 사건 수준이라도 시민사회는 제대로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발생하는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담론과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선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요인들을 근본적으로 문제제기해야 하는데, 여타의 다른 사회운동들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와 결합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 이것은 범죄학의 영역이고, 이것은 여성학의 영역이며, 이것은 사회복지의 영역이니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논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사고될 때만이 안전도 보장되는 이상적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이 글은 2016년 5월 1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