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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우리들의 블랙리스트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8
조회
308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블랙’, 악마의 상징인 색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비단 구속되어 있는 김기춘 씨와 조윤선 씨 그리고 그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박근혜 씨만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스스로가 참다운 지배세력이라고 믿고 있는 악마적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부를 넘어서서 그리고 정치적인 권력을 넘어서서 예술 문화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삶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온몸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오히려 악마로 보였던 것이다. 악마의 눈에는 악마들만 보이는 법이던가. 게다가 자그마치 만 명에 이르는 악마들이라니! 헌법에 명기되어 있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심지어 그 표현의 자유를 의무와 책임으로 여겨 만민이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견인함으로써 그야말로 헌법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악마들이라니! 과연 악마적인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인간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같은 악마적인 폭력성을 왜 어떻게 구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이 한편으로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 궁금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결코 그런 뜻에서는 아니지만, 우리도 그들의 이름들을 거론하면서 블랙리스트, 진짜 악마라고 여겨지는 그들의 이름들과 그 악마적인 죄상을 병기하여 열거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악마적인 그들이 만든 블랙리스트는 본래 악마적이기에 시커먼 음지에서 음모적이고 사적으로 작성되어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범죄적인 폭력을 자행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순수한 블랙리스트는 양지에서 공적으로 당당하게 작성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그들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처벌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148359780950_20170106.JPG사진 출처 - 한겨레


우리들의 순수한 블랙리스트에 올릴 이름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그 기준을 너무 폭넓게 선정하여, 예컨대 어떤 방식으로건 인권을 유린했을 경우라고 하면, 또는 어떤 방식으로건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경우라고 하면, 그 기준들이 원칙으로 대단히 중요하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건’이라는 단서를 적절하게 한정해서 변경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예컨대 ‘주도적으로’, ‘비인간적인 이념으로 무장하고서’, ‘대다수의 인민들의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자신의 지배적인 권력의 유지 · 강화를 목적으로’ 등으로 한정해서 변경해야 할 것이다.


공공의 사회역사적인 심판을 위한 순수한 블랙리스트,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들의 그 순수한 블랙리스트를 대대적으로 작성한 적이 있다. ‘친일인명사전’이 그러하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반민주적 · 반인권적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은폐돼 온 진실을 밝혀내고자 노력함으로써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름들을 찾아내어 백일하에 밝히고자 한 노력이 그러하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이번에 악마적인 그들에 의해 음험하게 작성되어 실제로 상당한 불이익을 준 것과는 달리, 우리의 순수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과 그들에 의해 여전히 이익을 보고 있는 자들을 드러내 놓고 실제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명예에 관련한 피해를 주었을 뿐, 뒤늦게나마 정식 재판을 열어 우리의 공동체로부터 일정하게 배제시키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것을 분열책동이라는 등 해서 정치사회적인 반발이 거셌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정의와 인권, 이를 뒷받침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사회역사적인 공동체 의식이 제대로 쉽게 현실화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이번 악마적인 블랙리스트 사건을 계기로, 우리들 대다수 국민들이 떨쳐 일어난, 그 강렬하게 타올랐던 ‘수백만의 촛불’의 위력을 총동원하여 정의와 인권을 위한 우리의 순수한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효성 있는 사회역사적인 심판을 위한 법 제정에 돌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차제에 대한민국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책임지고자 하는 대선 주자들이 이 사안에 대해 가슴 깊숙이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이 글은 2017년 1월 2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