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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구체적 보편성을 현실화한 국가를 향한 혁명 (조광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5
조회
31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국민의 권력


전번 10월 25일에 「민주주의적 파문이 요구된다」라는 글을 써서 올렸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독직 사건’(흔히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을 계기로 국민들의 대의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통해 최고의 통치 권력 기관인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하여 헌법재판소의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원들의 자발적인 판단과 운동에 의거한 것이 아니었다. 수백 만 명의 국민들이 곳곳의 광장에 총집결하다시피 해서 현직 대통령에 대해 ‘하야’, ‘퇴진’, ‘탄핵’, ‘체포’ 등을 외치면서, 각자 국민으로서 헌법에 의해 명기 · 보장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한 결과였다.


이러한 국민들의 직접적인 권력 행사는 헌법에 명기 · 보장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하여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고자 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그 간접적인 권력 행사가 무용한 정도가 아니라 악용되어, 오히려 자신들의 권력을 짓밟고 우롱하여 폐기 처분하다시피 한 사실을 확연하게 인식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기고자 광장에서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를 통해 국민들의 간접적 권력 행사의 결과로 이들 기관이 갖게 된 대의적인 권력은, 헌법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기 · 보장된 국민들이 갖는 근본 권력에 의거한 것임을 현실적으로 실증해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국민의 권력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게 된다. 첫째는 헌법에 명기된바 모든 종류의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근본 권력이다. 둘째는 국민투표를 통해 형성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기관으로 삼아 간접적으로 발휘되는 국민의 대의 권력이다. 셋째는 이번 촛불 집회에서 현실적으로 행사된 국민의 직접적인 권력이다.
2.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권력의 개별성과 보편성


이 중에서 특별히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마지막 ‘현실적으로 행사되는 국민의 직접적인 권력’이다. 국민의 대의권력의 행사가 지극히 사적인 권력으로 심각하게 변질됨으로써 국민의 근본 권력이 완전히 무력(無力)하게 되다시피 하자 대대적으로 발휘된 것이 바로 국민의 직접적인 권력 행사다.


12월 13일 자 《한겨레신문》 3쪽에 실린 ‘스마트 시민, 새로운 정치(상)’은 이번 촛불 집회를 효율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온라인 시민회의>를 만들려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사건에 대해, 누군가는 “당신이 왜 함부로 나를 대표하려는가?”라는 말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합법적인 대의권력 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의적인 시민단체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체의 대의적인 권력 행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들 각자의 자결(自決)에 의거한 직접적인 권력의 행사야말로 진정한 권력행사라는 것인데, 주시해야 할 사실은 그러한 각자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권력의 행사가 수 백 만의 통일된 집단적 권력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통일된 보편적인 권력으로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국민의 근본 권력이 지닌 개별성과 보편성이 하나로 결합되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좀 더 이론적인 설명을 하자면, 추상적인 보편성이 개별성에 의해 현실화됨으로써 구체성을 현실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국가를 일컬어 ‘구체적 보편성’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국가권력 역시 ‘구체적인 보편성’을 띤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때 ‘구체적’이라는 것은 국가권력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권력을 하나하나 반영할 뿐만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이라는 것은 국가권력이 통일적인 정체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통일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이번 대대적인 촛불 집회를 이른바 ‘촛불 시민혁명’이라 일컬을 수 있는 핵심 근거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 온 ‘대의제 민주주의’로 인하여, 간적접인 권력 행사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개개인의 국민권력을 행사함과 동시에 통일된 국민권력으로 승화시켜 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구체적 보편성을 띤 국가의 진정한 면모를 현실적으로 실현해 보인 점이라 할 것이다.


국가는 비가시적이다. 그래서 자칫 국가의 보편성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기 쉽다. 옛 군주제에서의 국가의 보편성은 전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오로지 강압에 의거한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져 온 독재정권들은 국가를 국민으로부터 찬탈하여 사적인 소유로 전락시킴으로써 국가의 보편성을 지극히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했다. 그러면서 강압적인 대의정치를 참다운 국가정치인 양 호도했다. 그 이후, 특히 민자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이들 독재정권들의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는 정치 세력들은 국민투표에 의한 국민들의 대의적인 권력 행사가 마치 헌법이 명시하여 보장되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근본 권력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형태인 양 여겨왔다. 그러면서 국가 권력의 기관을 일정하게 탈법적으로 동원하면서까지 각종 정치적인 홍보 전략을 구사하여 국가권력의 보편성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것처럼 행세했다. 그 결과 국가권력의 보편성을 추상적인 수준에 묶어두는 방식의 정치를 해 온 것이다.


00503188_20161212.JPG사진 출처 - 한겨레


3. 마무리


그러나 이번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개별적인 근본 권력이 현실적으로 발휘됨과 동시에 그러한 국민의 근본 권력이 통일된 보편성으로 실현됨으로써, 그동안 당연시되면서 자행되어 온 추상적인 국가 및 국가권력의 보편성이 구체적인 보편성을 갖춘 국가 및 국가권력으로 탈바꿈되는 대 전환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만약 앞으로 대의 정치에 의거해서 대통령직을 맡아 수행하려 하거나 국회의원직을 맡아 수행하려는 자들이 이 같은 구체적인 보편성을 띤 국가의 정체 및 구체적인 보편성을 띤 국가권력을 금과옥조인 양 온몸에 새겨 정치활동에 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이번 ‘촛불’이 그야말로 ‘대전환의 시민혁명’으로 현실화되어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또 그렇게 되리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글은 2016년 12월 1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