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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사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종합적, 입체적 대안이 필요하다 (정재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12
조회
35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인천 연수구에서 학대와 배고픔을 참지 못 해 2층에서 배수관을 타고 내려와 슈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주민들의 신고로 밝혀진 한 아이에 대한 무지막지한 학대 사건 이후 전수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후 곳곳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 사건, 부천 여중생 딸 시신 방치 사건, 광주 7세 여아 살해 사건에 이어 최근 신원영 군 살해 사건 등 드러난 것만 해도 수 건이 넘는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그 자체로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훈육의 일환처럼 여겨져 온 손찌검 정도를 안 하는 가정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노동 시간이 긴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모두 일을 하는 가정의 경우 육아는 전쟁에 가깝다. 게다가 아이를 제대로 돌 볼 수 없는 상당수의 빈곤 가정의 경우 육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이어나가지 못 할 정도의 폭력 등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가정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 학대나 방임은 한층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허약한 아이들에게 그토록 무자비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이해를 하지 못 한다. 긴 시간 굶기거나 뜨거운 물이나 다리미 같은 것으로 화상까지 입히는 행위... 차디찬 욕실에 가두어 락스와 찬물을 끼얹거나 소금만 먹이고 구토한 것을 먹게 하는 행위... 손과 발은 물론 각종 도구를 이용해 뼈가 부러지고 살갗이 찢어지고 피멍이 곳곳에 들 정도로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행위 등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러한 행위들을 어떻게 심지어 친부모가 자행하거나 방조, 혹은 방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빈곤 가정의 경우 더 많은 학대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학대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예방이나 처벌 강화가 아닌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은 너무나 많다. 살해까지 이르지 않았을 뿐, 수많은 학대와 방임, 그리고 성적 학대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러한 ‘부모들’을 사실상 만들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 문제는 이러한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대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큰 주목을 받았던 학원 폭력의 가해자들이나 대학 내 군기 잡기, 군대 폭력의 가해자들이 부모가 되어서는 갑자기 순한 양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들 역시 또 다른 학대 피해 경험을 가진 이들일 수도 있다. 인분 교수 사건이나 동기 간 학대 사건, 선후배 학대 사건, 직장 내 왕따 및 폭력 사건과 같은 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부모가 된 후 어떻게 변할까?


그 뿐만이 아니다. 사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 계획이 나왔을 때, 곧바로 의문을 갖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위의 중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들 중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소위 ‘가출 청소년’의 문제이다. 과연 이들은 초등학생 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학대 아동 현황 파악에서 벗어나 있어야 하는 카테고리인가? 그리고 과연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국가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자료에 따르면, 한 해에 2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가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현재 무려 약 20만 여 명의 가출 학생들이 거리를 떠돌며 범죄 등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리고 여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가출 역시 빈곤과 가정 내 불화 및 학대 등이 원인들 중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45524435659_20160213.JPG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일단 아동학대로만 제한하더라도 전 세계 48개 국가들이 부모의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아동 체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아동학대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기본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의 강화를 통한 아동학대방지정책은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아동 자체에 대한 학대와 방임 등에 대한 대책 강화는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폭력을 유발시키는 다양한 원인들의 근본적인 제거가 너무나 절실하다. 즉 단순히 ‘내 아이의 문제는 내 가정 내의 문제’, ‘체벌도 하나의 훈육 방법’ 등과 같은 전근대적인 교육 방법이나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습에 대한 타파로 협소화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 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완벽하게 이웃과 단절되어 버린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웃공동체의 역할의 강화 등 사회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자는 방법 역시 아직은 이상적인 것에 가깝고 실효성이 없다.


물론 대안은 쉽게 마련되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책이 아닌 단기적이고 협소한 대책으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게임과 도박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음주와 성매매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 서로를 차별하고 짓밟고 증오하며 속여야만 살 수 있는 사회, 스트레스와 불만이 극대화되어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고통 받는 등 정신적인 문제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사회, 폭력과 사기와 협잡과 궤변이 승리하는 사회, 질병과 파산과 빈곤과 자살 등 수많은 사회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사회, 불공정과 불평등과 양극화 속에서 극소수만 잘 사는 사회를 사실상 방치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대한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왜곡하고, 온갖 특혜로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의 횡포가 유지되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 사회의 언론들은 ‘계모’만을 강조하여 ‘친부’의 학대 책임을 상대적으로 경감시켜 주고 있으며, 수많은 재혼 가정의 어머니들에 대한 편견을 한층 더 확대시키고 있다. 범인의 얼굴을 알려도 친척이나 지인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는 미국 등지와는 전혀 달리, 범인의 얼굴을 드러낼 경우 주변 가족들이나 지인들까지도 피해를 입게 되어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범인의 인권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인 양 착각하는 여론들도 여전하다. 학대의 가해자가 ‘조선족’이었던 한 사건에서는 본질을 벗어나 외국인혐오증이 극에 달한 적도 있었다. 이 끔찍한 아동 학대에 대해서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진지한 논의들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언제나 그렇듯 부차적인 관심들과 엉뚱한 논의들만 무성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보다 더 끔찍한 사건들이 예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이주 노동자 자녀들이나 중도입국 자녀, 혼혈 가정 자녀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 문제 자체도 심각하지만, 이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기존의 문제들과 중첩되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위에서도 강조했듯, 언제나 이러한 문제 역시 개인과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되며 국가는 사실상 방치하거나 심지어 방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윤과 탐욕에만 눈이 먼 기득권 집단들, 여론 주도층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기 때문에 복지라는 형태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선교의 대상으로 인식할 뿐 근본적인 국가 복지로 해결하는 데에 매우 저항적인 보수적 종교 단체들 역시 역할을 하지 못 한다. 시민사회만이 국가를 압박하고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대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아직 종합적으로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내기엔 힘이 달린다. 부디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이 글은 2016년 3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