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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 룰(Pence Rule)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6-07 16:12
조회
1238


- 성폭력의 폭로/미투에 대응하는 한국남자들의 자세-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 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지난 3월 7일, 네이버 검색 순위 1위는 ‘펜스룰’ 이었다. 여전히 ‘미투(#MeeToo)’ 운동이 상승하던 시기에 돌연 무고한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자기 방어의 수단’, 즉 ‘미투’의 대응책으로 등장한 것이 ‘펜스룰’이다. 처음에는 ‘울타리’라는 의미의 Fence인 줄 알았다. 여성과 남성사이에 분리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것이란 뜻으로 말이다. 그러나 2017년 미국 부통령이 된 마이크 펜스(Mike Pence)의 이름을 따온 것이란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2002년 <The Hills>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술자리를 갖지 않는다”는 발언을 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8년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라는 목사가 남성들이 다른 여성과 단 둘이 있을 때 성적인 유혹에 취약해질 수 있으므로 아내가 아닌 여자와 단둘이 있지 말라는, 청교도적 성엄숙주의를 지키자는 의도로 신도들에게 설파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래의 의미는 ‘성적 자기 절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런데 왜 여성을 피해야만 그 절제가 완성될까? 남성들에게 여성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존재인가보다. 그러므로 자기와 여성을 지키려면 멀리하는 수밖에 없는 ‘성욕에 지배되는 존재’라는 자기고백이 아닌가. 왜 여자를 두고는 자기 절제가 안/못 되는지 놀랍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고 하니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볼 수밖에 없지 않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펜스룰은 원래의 의미보다는 차라리 Fence에 가까워 보인다.



사진 출처 - JTBC


 “이모(여·29)씨는 다음 달로 예정돼 있던 사장 동행 중국 출장 일정이 갑작스럽게 취소됐다. 이 씨 대신 남자 선배가 사장과 출장을 가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오랫동안 현지 바이어를 설득해가며 출장 준비를 했던 게 헛수고가 됐다”며 “‘미투 운동’ 후 사장이 여직원 동행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업무 업적을 쌓을 기회가 줄어든다.” - 조선일보(2018. 3. 7.)


 “최근 한 중견기업 신입사원 면접시험에 응한 이모(25·여)씨는 “면접 내내 여성 지원자를 경계하는 분위기가 연출됐다”면서 “면접관들이 업무역량이나 장점을 묻기보다 유리천장 등 여성차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만 집요하게 물어봤다”고 털어놨다. 이 회사는 지난해 신입사원 여남 비율이 거의 같았지만 올해는 남성을 여성보다 2배 정도 더 뽑은 것으로 파악됐다.” - 이데일리(2018. 3. 7.)


 “내 주변 60cm 안으로 들어오지 마” - 공기업에서 일하는 여성(28)이 남성상사에게 들은 말


 “성폭력 당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 공공기관 입사 면접에서 나온 말


 이건 결코 ‘성적 자기 억제, 혹은 절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여성을 피해야 절제가 가능하다는 논리는 우습지만, 여성들도 남성과의 일대일 대면 – 위험할 상황 - 이 줄어들면 그만큼 활동영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변형된 한국의 펜스룰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울타리를 치고, 남성 자신들이 아닌 여성들을 가두는, 여성들을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어 활동영역을 좁히는 방식이 되고 있다. 펜스룰로 인해 여성들은 일대일 대면에서의 제한보다는 집단으로서의 경계대상이 되면서 공적영역에서의 활동공간이 제한되고 있다. 한국 남성들은 자기성찰조차도, 실수할까 두려워 조심하는 행동조차도 왜 ‘남성연대’의 강화로 될까? ‘모로 가도 서울’이라더니,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행동을 해도 여성배제, 차별로 귀결된다. 놀랍지 않은가? 한국의 남성연대!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무고’에 대해 살펴보자. 올해 3월 13일자 연합뉴스 “여성이 두렵다는 ‘펜스 룰’... 근거 없다.”는 기사를 보면 “‘여성들이 허위신고를 남발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최근 3년간의 범죄분석 자료와 ‘2016년 대법원 사법연감’을 예로 들어 보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성범죄 중 ‘혐의 없음’ 비율은 20%이고 여기에는 ‘허위신고’ 즉 ‘무고’뿐 아니라 ‘증거부족’도 포함되며, 무고죄 피의자 수는 평균 5천 700명인데 이 중 성범죄 관련 무고는 몇 건인지 통계가 없어 모르고, 2016년 강간 및 추행 사건은 5천618건이고 이 중 1심 무죄판결은 192건으로 약 3.4% 정도로 낮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허위신고를 남발해서 두렵다는 남성들의 주장이야말로 ‘허위’라는 것이다.


 결국 펜스룰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남성들은 <남성 = ‘성욕’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 집단’>, <여성 = 무고한 남성들을 성범죄자로 몰아가는 ‘허위 신고 집단’>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 시선 안에는 남성의 정체성이 ‘성욕 덩어리’와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이라는 이질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이중의 정체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남성이 성적존재라는 자기비하적 고백이 만들어 낸 것으로, 이러한 비하를 여성을 더 비하 – 거짓말쟁이 - 함으로써 만회하려는 전략이 만들어 낸 참사이다. 결국 펜스룰은 여성혐오를 토대로 하는 전략이고, 남성들 심리 내면에 자신들이 ‘성적존재’라는 기저, 그러므로 잠재적 성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대일 대면을 줄이겠다는 선언은 여성들로서는 잠재범죄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된다. 1)


 그러나 공적영역에서의 펜스룰은 ‘남성연대’, 즉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이 가부장제라는 남녀의 위계, 즉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성폭력범죄를 행사하는 남성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남성연대’가 강화될수록 ‘남성’이 될 수 없는 집단에 대한 혐오는 강화되기 때문이고 그것의 일차대상은 여성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펜스룰은 의미가 없다. 여성들이 미투를 하는 것은 이 사회전반이 성폭력이라는 권력형범죄에 물들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는 범죄가 가능한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사회를 바꾸자는 것인데, 펜스룰은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쩌라고~~~오~~?”라며 화살을 여성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참에 남성들에게 제안을 하고 싶다. 어차피 당신들이 성본능을 제어하기 힘든 집단이라는 것을 고백했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하자고.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확인하는 과정을 밟아보되 그 과정을 남성들끼리가 아니라 여성들과 같이 해 보자고. 대화라는 방법으로, Fence없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시원하게 까발려보자고. 그리고 그것이 남성연대가 만들어 낸 자기비하의 허위라는 사실에 직면해보자고. 성욕을 제어하지 못해 여성만 보면 성범죄를 저지를까 두려워서 하는 자기절제와 억압으로서의 펜스룰이 아니라, 자기개방을 통해 범죄가 아닌 성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솔까말’ 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갈등은 상대를 외면하거나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도 마찬가지로 직면해야 해결점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길 위에서 벽을 만나면 되돌아가기보다 벽을 타고 돌아가야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직면하는 용기와 돌아가는 유연함이 펜스룰에는 없다. 두려움과 억압, 관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관성을 끊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 강제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것은 미투와 페이미투(#PayMeeToo) 2) 에 응답하기 위한 권력으로서의 국가의 법과 제도들이다. 이미 여성국회의원들이 집단 왕따로서의 펜스룰을 경계하기 위한 여성차별방지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5월 1일 방영된 ‘피디수첩’에서는 조계종의 유명한 두 스님들이 성폭력과 성매매를 일삼았다는 보도를 했다. 성폭력으로 인해 생긴 딸 사건, 2004년부터 약 4년간 유흥주점과 1급 호텔에서 8200만원의 카드결재 및 성폭력 사건이다. 조계종 측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 후 “개인의 인권과 명예보다 방송의 자율권을 우선시한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인권’이라니... 여기서도 펜스룰이 적용된다. ‘허위’이고 ‘무고’라는 의식 말이다. 5월 2일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과 보좌관들 전수를 대상으로 한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국회 내 성폭력의 원인은 불평등한 권력관계다. 위계질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가장 큰 근본적 원인"(유승희 윤리특위 위원장/미디어스 5. 2)임이 드러나고 처방으로는 조직문화개선이 제안되었다. 여전히 미투는 진행 중이고 타 영역으로 확장중이다. 그러나 성범죄자의 인권을 주장하는 관행, 위계와 위력이 판치는 국민대의기관의 조직문화, 이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대안은 없다. 성찰이 필요하다. 관행과 관습을 정지하고 문화를 바꾸기 위해 무엇이 문제인지 직면하고, 우회하더라도 숨지 말고 나가봐야 한다. 그러나 펜스룰은... 도망가는 것, 숨는 것이다.


1) 한국일보에서 3월 29, 30일 조사한 펜스룰 지지율에서 남성(44.8%)보다 여성(46.3%)이 높게 나옴
2) 노동과정에서 성차별적인 채용과정, 임금, 승진 등 전반적인 고용불평등을 제기하는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