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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개혁을 위한 개헌방향 (김재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4-24 18:45
조회
729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웅거(Roberto Mangabeira Unger)는 그의 저서 『Democracy Realized』에서, “정치의 속도를 올리고 기본 개혁의 반복적이고 빈번한 실천을 촉진하기 위해 고안된 헌법적 양식은, 사회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할 다양한 통로들과 강력한 신임투표제적인 요소를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강력한 의회는 실질적인 정치적 주도권을 가진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공존하게 된다”고 말한다(1). 웅거의 이 말은 제왕적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의 현실정치와 최근의 개헌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선출권력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 권력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은, 또 다른 선출권력인 국회이다. 그래서 국회는 행정 권력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과 수단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 의회와 비교해 볼 때, 우리의 국회는 행정 권력을 확실하게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은 최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촛불개헌’ 관점에서 본 정부개헌안 시리즈)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정부의 법안제출권과 시행령 위임관행으로 말미암아 입법권 자체가 약하다는 점, 둘째 대통령의 고위직 임명에 대한 통제권이 거의 없다는 점, 셋째 정부의 예산안에 대한 통제권이 약하다는 점, 넷째 법집행감독에 필요한 회계감사원을 산하에 두고 있지 않을 뿐더러 청문회실시권한 행사요건이 까다롭다는 점, 다섯째 입법권 행사에 필요한 연구조사기능이 약하다는 점 등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집권당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눈치를 볼 일이 많게 되는데, 그 이유는 대통령이 사실상 전략공천권과 비례대표공천권을 장악할 뿐 아니라 장관자리도 겸직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우리나라 국회가 행정 권력을 충분히 견제하지도 못하고 입법기능도 부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회의원들은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 국회의원들은 4년마다 반복되는 선거에 따른 정치적 책임 이외에는 임기 동안 어떤 다른 견제도 받지 않으며, 선수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일인의 승자만이 독식하는 소선거구제가 오랫동안 고착되면서 정책적 대안 생산을 통한 국회 입성보다는, 지역감정과 토호세력을 등에 업은 기성 거대정당에의 공천만으로 국회입성이 가능한 구조도 형성되어 왔다. 때문에 거대정당의 갑옷 안에서 국민과는 괴리된 당리당략에 충실하기만 하더라도, 개별적 권력을 반영구적으로 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헌법과 법제도의 양식으로는 정치의 속도를 올리거나, 기본 개혁의 반복적이고 빈번한 실천을 촉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고착화․토착화되어 온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의 정치구조 안에서, 그들이 주도하고 만들어내는 권력구조 재편의 개헌과 법개정 내용은 결국 그들만의 리그를 재생산하는 것일 뿐이게 된다. 자신들의 정치적․권력적 이해관계에 첨예하게 얽혀 있는 사항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자가당착과 자기대리, 쌍방대리가 행하여지는 것이다. 때문에 개헌은 철저하게 국민주도로 수미일관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 핵심내용으로는 실질적인 입법기능을 촉진하기 위한 인력(개별 의원에게 따르는 보좌관 등을 폐지)과 예산의 적정하고 적절한 재배치와 국회의원 정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 국민 각 계층이 갖는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장차관 겸직의 금지, 4년 임기를 2년으로 하는 임기단축과 선수제한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개헌과 입법이 국민의 손으로 이루어져야만, 권력구조에서부터 일상에 이르기까지 바람직하고 올바른 개혁이 반복적이고 빈번하게 실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제왕적 대통령과 국회의원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권력구조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1) 웅거의 저서는 최근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전원)에 의해 [민주주의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