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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의 평화’: 학생들과 함께 한 <철원 평화예술기행> (이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2
조회
411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이 간 곳이 없다. 산란한 마음에 자꾸 뉴스만 클릭하게 된다. 그 사이 또 어떤 엄청난 일이... 무섭기도 하다. 내 잘못도 아닌 일에 이렇게 ‘쪽팔리게’ 될 줄 몰랐다. 집중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청계광장으로, 광화문으로 나가볼까. 그런데 뒷덜미를 잡아끄는 글 빚들,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들... 하지만 마침내, 지금 ‘뭣이 중한디?!’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던 영화 속 대사를 이렇게 읊조리게 될 줄이야. 요즘과 꼭 같은 마음상태였던 때가 한 번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들었을 때다. 그땐 그게 그렇게 쉽더니...


이런 시국에 무슨 다른 주제의 칼럼을 쓸 수 있을까...싶었지만, 흘러넘치는 이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엄연히 사실인 이야기들, 아무리 들어도 새삼스레 진저리쳐지는 소식들, 당연한 분노와 흥분과 규탄에 또 다른 목소리를 얹고 싶지는 않다. 아니, 그럴 능력이 안 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잘못돼도 너무 잘못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어디서 끝내야할지도 모르겠으니. 그런 차에 필자가 속한 기관에서 진행 중인 <평화아카데미> 수강생들과 함께 ‘철원 평화예술기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60여년 넘게 계속된 정전 상태에 멈추어있는 곳. 이 아수라장을 잠시라도 떠나 차라리 그 멈춤 속에 서고 싶었다. ‘폐허 위에서 평화를 상상하다’라는 컨셉 아래 분단의 비극, 그러나 통일의 희망을 함께 상징하는 철원으로 떠났다. 안보관광이 아닌 ‘평화기행’의 일종으로.


철원은 현재 남한의 북쪽 한계선에 자리하지만, 사실 딱 한반도 허리에 해당하는 지리적 중심이다. 궁예가 통일신라와 후백제에 맞서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철원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 평화전망대에 설치된 DMZ 조감도에는 옛 궁예궁터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한국전쟁 이전 철원은 춘천과 더불어 강원도 내 대읍부향의 하나였다. 경원선의 주요기착지이자 금강산 전철의 시발점이었고, 중부에서는 드문 비옥하고 너른 평야로 농축산물의 거래가 활발했다. 각종 관공서, 금융기관, 교육기관은 물론, 당시로서는 드물게 백화점까지 갖춘 풍요롭고 넉넉한 도시가 철원의 옛 모습이다.


IE001571353_STD.JPG노동당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하지만 한때 번화했던 도시는 이제 폐허로 남았다. 우리가 돌아본 옛 철원 경찰서, 노동당사, 농산물 검사소, 제2금융조합, 얼음 창고, 수도국지, 철원감리교회 등은 간신히 그 흔적을 헤아릴 수 있는 ‘터’로만 남아 있다. 포탄이 관통한 흔적이 그대로 남은 기둥, 원래의 형체를 가늠하기 힘든 부서진 잔해, 구멍 숭숭 뚫린 벽들 사이로 유독 차가운 바람이 휑하니 분다. 그와 대조적으로 DMZ 남방한계선의 철책, 그 너머의 군사분계선, 남북한 초소, 그리고 곳곳에 잠복한 지뢰와 각종 화기들로 ‘비무장지대’란 이름을 무색하게 하는 ‘중무장지대’의 살벌함은 너무 생생한 현실이다.


만일 우리를 반겨주시고, 가이드를 자청해 우리를 안내해주시고, 차진 철원 오대쌀로 갓 지은 점심과 저녁을 마련해주신 양지리 두루미 마을 어르신들이 안 계셨다면, 그 폐허 속에서 평화를 상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숨죽인 땅을 분주히 일깨워 삶의 터전으로 만든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이들에 한껏 기뻐하셨다. 그곳을 먼저 찾은 또 다른 젊음들에 그러하셨듯이.


철원 양지리 마을엔 세계 각국에서 온 예술가들이 머물고 있다.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희구가 절박하게 교차하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지속된 긴장이 DMZ 풍경 속에 최대치로 가시화되고, 숨죽이며 총을 겨눈 그 진공상태 속에 오로지 자연만이 무심히 번성하는 이 기묘한 곳에 ‘두루미처럼’ 찾아든 예술가들이다. 예를 들어 아트선재센터의 ‘리얼 DMZ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일정기간 지역주민과 함께 살며 그 특이한 ‘장소성’을 행위예술로, 이미지로, 영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기행의 가장 중요한 순서도 우리 젊은 학생들과 이 젊은 예술가들의 만남이었다.


이날 ‘철원 평화예술기행’에 참여한 학생들은 각자의 감상과 느낌을 시, 사진, 랩, 퍼포먼스 등 장르 불문, 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술화한 과제를 제출하기로 되어 있다. 이 학생들이 어떤 결과물을 제출할지 몹시 기대된다. 학점도 인정 안 되고, 별다른 스펙도 될 리 없는, 게다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저녁 7시에야 시작되는 이 아카데미에 제 발로 찾아온 (혹은 ‘두루미처럼’ 날아든) 이 기특하고 대견한 학생들은 이날 폐허를 종횡무진하며 자못 진지해졌다가 이내 깔깔거렸고, <노동당사 매점>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가게에서 내가 사준 ‘고소미’를 깨물고, 어르신들이 차려준 밥상을 ‘맛있다!’를 연발하며 싹싹 비워냈다. 그날 나는 이미 폐허 위에서 평화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 불 꺼진 버스 안,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 두 명이 낮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광장에 사람들 무지 많이 모였대”, “내 친구들 다 거기 있다는데”, “사진 찍은 거 계속 올라와”... 폐허 위에서 내가 본 평화가 헛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흐뭇해졌고, 기운이 났다. 다시 시작이다!


이 글은 2016년 11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