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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 선언 : 이스라엘 국제형사 재판소 기소에 맞서다 (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12-11 17:45
조회
1111

홍미정/ 단국대학교 중동학과 조교수


 100년 전 1917년 11월 영국외상 밸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고향 건설’을 허락하는 소위 밸푸어 선언을 하였다. 2017년 12월 6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건국이념인 시온주의를 성취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선언에 대하여 12월 8일,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우리의 수도, 예루살렘과 우리의 영광스런 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트럼프 선언에 맞서 각 도시마다 시위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입지를 정립해 가고 있었다. 이에 맞서 트럼프 선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소위 ‘세기의 협상안’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구노력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 최루탄 피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사진 출처 - 뉴스1


 2011년 10월 31일, 팔레스타인은 UNESCO에 완전한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2012년 11월 29일,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는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로 승격되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유엔의 장에서 국가의 지위를 얻었고, 유엔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The State of Palestine’ 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5년 4월 팔레스타인은 공식적으로 국제형사 재판소(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의 회원이 되었다.


 게다가 2017년 9월 20일에는 서안에 기반을 둔 4개의 인권단체 - 알 하끄, 알 마젠 인권센터, 팔레스타인 인권센터, 알 다미르 인권협회 - 가 ICC에 서안에서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과 가자에서의 범죄 행위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범죄를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700쪽으로 구성된 자료를 ICC에 제출했다. 알 하끄 대표에 따르면, 이 자료들은 4개 단체들이 수집한 사실에 입각한 정보에 토대를 둔 것으로, ICC의 로마규정에 따라 계획적 살인, 주민 추방, 이스라엘 점령촌 건설, 가자에 연안 천연가스 자원 채굴과 파괴 등 광범위한 재산 파괴와 전유 등 광범위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행위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구하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검사 사무실은 이 자료들을 받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제출된 자료들을 적절하게, 완전히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로마규정에 따라 분석할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결정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발송인에게 알리고, 우리의 결정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ICC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헤이그 소재 ICC법정에서 재판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11월 미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ICC 제소에 맞서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을 폐쇄하겠다고 협박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ICC에 이스라엘 기소를 중단하고, ‘무조건적인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요구하였다. 현재까지 미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설립하지 못했고, 1994년 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PLO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표하는 워싱턴 사무실을 개소하였을 뿐이다.


 미국이 제안하는 ‘무조건적인 평화 회담’은 트럼프와 사우디가 주도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을 종식시킬 최종 계획, 소위 ‘세기의 협상’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선언 한 달 전인 11월 6일,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를 리야드로 초청하여, 이 계획 ‘세기의 협상’을 설명하면서, 압바스에게 “이 계획을 수용하던지, 수반 자리에서 내려오던지 하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바스와 리야드 방문에 동행한 팔레스타인 관리들에 따르면, 2018년 초에 모습을 확실히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는 이 계획은 예루살렘 없이, 1948년과 1967년 전쟁으로 추방당한 난민귀환 없이, 토막 난 서안의 고립된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한된 자치다. 이것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주권도 갖추지 않은 모습이다.


 2017년 11월 18일, PLO 사무총장 사에브 에레카트는 만약 미국이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을 폐쇄한다면, PA는 미국 행정부와의 모든 접촉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같은 날 미 국무부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2015년 4월 1일 팔레스타인의 ICC가입, 2017년 9월 팔레스타인이 ICC에게 점령촌 건설과 가자에서의 전쟁 범죄행위 등 이스라엘 전쟁범죄 조사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PLO 사무실이 폐쇄될 것이다’고 쓰여 있다. 11월 22일, 하마스는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 허가 갱신을 위하여 미국이 내놓은 새로운 조건은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자가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하마스는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이러한 조건들을 거부하라고 요구하였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 허가 갱신을 팔레스타인의 ICC가입이나 시온주의자 전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과 연계시키는 것은 미국이 완전히 편파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1월 23일, 사우디와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이스라엘 ICC기소를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하였으며, 그는 이스라엘 관리들을 기소하는 단계를 밟지 않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와 대통령 압델 파타 알 시시가 이끄는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대의를 배반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중요한 예다.


 트럼프 선언에 맞서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새로운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시작하면서, 12월 9일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는 다시 한 번의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