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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노무현’은 어디로 갔나? -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8:17
조회
396


이광조/ CBS PD




‘바보 노무현’은 어디로 갔나?
- ‘바보’를 잃어버린 한미 FTA 추진



96년인가, 97년인가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지역주의의 아성에 정면으로 맞서 92년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거푸 낙선의 아픔을 맛봤던 야당 정치인 노무현이 목동 CBS 스튜디오에 출연했다.

청문회 스타로,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으로 방송 출연이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그 날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뒤풀이 자리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목동은 ‘버블 세븐’ 운운하는 요즘과는 달리 오목교역을 중심으로 서울 변두리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을 때였다. 오목교 역 주변에 있는 허름한 실내포장마차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권양숙 여사, 그리고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제작팀이 ‘쭈꾸미’를 안주 삼아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바보 노무현’은 아름다웠다

술자리의 화제는 물론 돈키호테 같은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였다. 패배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한 정치인 노무현의 용기와 일관된 원칙에 대해 우리는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과 격려를 전했고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4.19 세대, 6.3 세대, 긴조 세대, 전대협 세대…. 우리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현실정치의 틀 속에 너무도 쉽게 길들여져 가는 걸 봐왔기에 당시 정치인 노무현이 보여준 행동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묻어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허름한 잠바차림의 아저씨들이 만 원짜리 몇 장을 가지고 와 노무현씨에게 건 낸 것도 그런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사모를 만든 힘이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쏟아진 수많은 돼지 저금통도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이런 감동과 격려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치엘리트들이 권력의 꿈을 좇아 현실에 타협할 때 정치인 노무현은 정당의 보스나 정치권의 관행을 좇는 대신 정도를 택했고 그의 이런 ‘바보’같은 행보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한편의 정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눈앞의 정치적 이해를 좇기보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있는 정의에 대한 갈구를 좇았던 정치인 노무현의 선택은 탁월했고 2002년 대선에서 그에게 승리를 안겨다준 대한민국 국민의 선택은 역사에 남을만한 위대한 사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위대한 선택으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아직 임기가 끝나지도 않은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논한다는 것이 나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비판의 수준을 뛰어넘는 정치적 공세에 시달려온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일에 일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88년 정계에 입문한 뒤 2002년 대선에서 승리를 이루기까지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던 정치인 노무현의 미덕과 장점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바보’는 가고 노무현만 남았다

정치인 노무현의 미덕과 장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서민적인 풍모와 언행, 뛰어난 언변,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 하지만 대통령 스스로 인정하듯이 우리사회의 비주류인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큰 힘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 속에 다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언변까지 좋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국민들이 노무현을 선택한 건 ‘바보’라는 애칭 속에 담겨 있는 ‘진정성’을 높게 평가한 것일 게다.

정치인이 제 아무리 잘난 들, 선거 때마다 ‘국민의 종복이니 뭐니’ 떠벌린 들, 유권자들은 입에 발린 말에 속지 않을뿐더러 그런 잘난 인간 하나 없다고 나라가 안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말로만 국민의 뜻 운운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지역주의에 맞서고 낡은 정치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정치인 노무현을 선택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말 잘하고 똑똑하다는 걸 모르겠는가. 결국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 속에는 정치적 득실보다는 민심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따를 줄 아는 민주적인 정치인, 목표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겸손한 정치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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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15일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한데 이런 노무현의 미덕이 어디로 갔는지를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요즘 한창 진행되고 있다.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한 논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내게 ‘바보 노무현’의 미덕을 의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사건은 한미 FTA의 추진이다.

한미 FTA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논외로 하자. 신자유주의 정책이니 진보․보수 논쟁도 제쳐놓자. 국민여론이 한미 FTA 체결에 부정적이라는 사실도 일단은 접어두자. 세상에 절대악과 절대선이 없듯이 한미 FTA도 장점이 있을 것이고 국가를 운영하는데 있어 족보가 서로 다른 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국민의 여론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 FTA의 손익계산을 둘러싼 조작 논란이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어가며, 4대 선결조건 같은 건 없다는 거짓말이 그렇게 쉽게 용서가 되는지, 토론을 그렇게 좋아하는 참여정부 아래서 한미 FTA 협상단과 협상지원단은 왜 그렇게 토론에 소극적인지, 정부의 주장에는 엄청난 홍보비를 쏟아 부으면서도 주머니 사정이 뻔한 서민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만든 의견광고는 왜 못 내게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뿐인가. 한미 FTA에 대한 반대를 구한말의 쇄국주의쯤으로 매도하는 데 이르러서는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계화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갈수록 개방이 확산되는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으며, 한미 FTA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은 ‘FTA 결사반대’가 아니라 ‘어떤 FTA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의 미덕이 그립다

외환위기 10년을 맞는 2007년. 10년 전에 오늘과 같은 상황을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물론 2017년쯤 되돌아볼 때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이 옳았다는 평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급쟁이의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린 외환위기 정도의 변화라면 아무리 좋은 변화라도 당사자들의 이해와 동의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한미 FTA는 외환위기보다 더 큰 변화를 초래할 거라는데, 외환위기야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거지만 한미 FTA야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인데, 국민들이 조금 덜 벌어도 조심스럽게 가자면 그 선택은 존중해야하지 않겠는가.

언제 없어질지도 모르는 정당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 그래서 나중에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국회에 국민의 생활과 미래가 걸린 일을 떠넘기는 일은 없길 바란다. ‘바보 노무현’은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