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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에 눈 감고 귀 막은 사법부, 뼈저리게 반성해야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6:23
조회
333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독재권력에 눈 감고 귀 막은 사법부, 뼈저리게 반성해야
- 잘못된 판결 바로잡은 독일의 교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긴급조치 사건 판결을 공개한다고 해서 30여년 전의 일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에 판결을 작성한 판사들의 실명공개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판결문 공개 자체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각도 있고, 실정법이었던 긴급조치를 적용하여 판결을 한 것만으로 판사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우려를 표명하는 견해도 있다. 또 역사적인 차원에서 평가하고 사법부 전체가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며, 일부에서는 사법부 인적 청산을 거론하기도 한다.

판결문은 비밀문서도 아니고 일반인들도 정보공개를 요구하여 열람할 수 있는 내용이므로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판결을 한 판사들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인데, 판사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의해 판결을 하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비밀로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판결문을 공개하는 주체가 사법부였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사법부 스스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공식적인 반성이나 유감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진실화해위원회가 먼저 판결문 공개를 한다고 하여 못마땅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법부 스스로 들추기 어려운 과거의 잘못을 드러내고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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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31일 오후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 실명이 포함된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판사 실명 공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다만 긴급조치가 실정법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주장에 대하여 상급심인 대법원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수차례 하였던 상황에서, 판사 개인이 긴급조치위반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하지 않았다는 또는 못하였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인적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판사 개인이 정의와 양심에 반하는 실정법의 적용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법적 안정성과 정의가 충돌할 때 어느 것을 더 우선하여야 하는가라는 법철학자들의 해묵은 논쟁거리와도 관련이 있으며,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의 역사적인 책임마저 덮어주자는 것은 아니다. 긴급조치 제1호는 그 내용 자체만 보더라도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하여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긴급조치 제4호는 민청학련과 관련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고 심지어 학생이 정당한 이유 없이 시험이나 수업거부, 교내집회를 하는 경우에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내용이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영장주의의 원칙, 신체·양심의 자유, 언론·출판. 집회·결사의 자유, 재판을 받을 권리 등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누가 보더라도 정당하지 못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법원이 여러 차례 긴급조치가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그 소임을 다하기는커녕 독재권력을 정당화하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에 대하여 역사적인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사법부는 지금이라도 독재권력의 불법적인 권력행사에 대하여 눈 감고 귀 막은 과거를 뼈아프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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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서울 광화문에서 유신헌법 폐지를 주장하는 한국신학대 학생 50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보도사진연감



부정의한 법률은 정의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독일의 법철학자인 라드부르흐는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이라는 논문에서 “법률의 정의에 대한 위반이 참을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부정의한 법률은 정의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러한 논리는 나치시대의 실정법을 적용한 판결을 바로잡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일례를 들자면 나치시대에 사법공무원 푸트파르켄이라는 사람이 괴티히라는 상인이 공중화장실에 “히틀러는 학살자이고 전쟁은 그의 책임이다”라는 낙서를 하였다고 신고를 하였다. 괴티히는 이 낙서 이외에 외국방송을 청취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사형판결을 선고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2차 대전 이후 튀링엔 주 검찰총장은 푸트파르켄을 기소하면서 “히틀러 시대에 다른 사람을 밀고한 자는 자신이 피고인을 진실발견과 정당한 판결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합법적인 소송이 아니라, 완전한 자의에 내맡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고, 실제로 그러한 사실을 알고 밀고를 했다”고 하면서 “푸트파르켄은 괴티히가 사형에 처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의욕 했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시인했고, 이는 살인의 고의에 해당하며, 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면 그는 살인의 간접정범이고, 만약 살인의 책임을 사형을 선고한 법관들에게 돌린다면 그는 살인의 방조범이 된다”는 논고를 하였다. 튀링엔 주의 배심법원은 푸트파르켄에게 살인방조죄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식견이 부족한 탓에 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는지 아니면 상급심에서 변경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전후 나치시대의 실정법을 적용한 수많은 판결에 대해 그 자체가 적법성이 없는 재판이므로 이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독일의 여러 주에서 있었고, 나치시대의 법률은 “법률적인 불법으로서 무효”라는 논리에 근거한 여러 판결들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