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유대 국가와 민주주의는 양립 가능한가? (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9 10:01
조회
298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시민권 획득과 입국에 관한 법(the Citizenship and Entry into Israel Law)’이 2003년 7월 31일에 제정되어 2007년 현재 실행되고 있다.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에 기초한 이 법은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계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10년 동안 유지해온 가족 관계조차도 파괴한다. 이 법은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 지역 출신의 팔레스타인인들과 결혼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가족이 이스라엘에서 함께 사는 것을 금지하며, 점령지 출신의 배우자뿐만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에게도 시민권과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결국 이 법은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며, 수천 가족들을 체포, 추방, 별거 등의 위협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유엔 인종 차별 철폐 위원회(UN 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는 이 법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국제 조약을 위반하였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스라엘 의회 아랍 정당인 발라드 당(Balad Party) 소속 의원 자말 자할카는 이 법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신화가 폭로되었다. 이 법은 가장 야만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법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베테누(Israel Beytenu, 이스라엘 우리 고향)당의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수는 2006년 의회 선거 직전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 특성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모르도바 이민자 출신인 리베르만은 구소련 출신 이민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적의에 찬 그의 주장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호소력을 발휘하였다. 이 당은 2006년 3월 의회 선거에서 2003년 의석보다 8석이 증가하여 11석을 획득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정당으로 등장하였다.

전임 총리였으며 현재 리쿠드(Likud)당수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2003년 12월 “아랍인들이 증가해서 35-40%를 차지한다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유대 국가도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아랍 인구 위협(인구 폭탄)’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유대국가의 특성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잠재적인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아랍계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야만적인 인종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유대계 이스라엘 정치인들과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pal070522.jpg
이라크 내 시리아 접경도시의 난민촌에서 지쳐 보이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이들은 50도에 가까운 살인적 열파와 식수난, 의료지원 부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스라엘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 인구는 2020년에 이스라엘 전체 주민의 21-24% 정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은 베두인(10%)을 포함한 무슬림 82%, 드루즈 9%, 기독교인 9% 등으로 구성된다. 베두인과 드루즈는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등 이들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충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the Israeli Democracy Institute)가 2006년 10월에 수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75%는 “이스라엘 헌법이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박탈당할까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창설된다하더라도 이스라엘 시민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단순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증가 숫자에 토대를 둔 네타냐후의 ‘아랍 인구 위협’ 주장은 과장되었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007년 현재 약 142만 명으로 이스라엘 주민의 20%를 구성한다. 이들은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권자들과 아랍계 이스라엘 영주권자들로 구성된다. 1948년에 이스라엘 영역이 된 지역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967년 점령지인 동예루살렘에 거주해온 아랍인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각 이스라엘 시민권과 영주권 박탈 위협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주권을 박탈당한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동예루살렘 거주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의 투표 참가율이 매우 저조했다. 그 주요한 이유는 이스라엘 영주권자들이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 참가했을 경우, 영주권이 박탈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500만 명 정도의 유대인으로 분류되는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이주민들이거나 그들의 후손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에 팔레스타인 거주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3%를 넘지 않았다. 유대 이주민들은 1948년 팔레스타인에 이주민들을 위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후 이스라엘 국가는 지속적으로 최대한 이주민들을 끌어들이고 영토를 확장하는 한편,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2007년 현재 주요한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점령지를 최대한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시키고, 이스라엘 영토내의 아랍계 인구를 최소화함으로써 ‘유대 국가’와 ‘민주주의’를 둘 다 성취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인종차별에 토대를 둔 ‘유대 국가’ 이념과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민주주의’ 정치 이념은 현실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