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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령비현령식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3 11:49
조회
536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이현령비현령식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 중국, 러시아 동포도 마땅한 한국인

 

1. 미셀 위가 천재 골프소녀로 이름을 날리자 국내 언론은 미셀위의 모든 경기를 시시콜콜하게 보도하면서, 미셀위의 한국이름이 위성미이고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그녀가 떡볶이 같은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하인스 워드가 MVP에 오르자 모든 언론은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헌신적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고생한 그의 어머니를 취재하기에 바빴다. 미셀 위와 하인스 워드는 한국인인가?

2. 버지니아공대의 충격적인 총기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범인이 중국계라는 뉴스가 나오자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인들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댓글이 넘쳐났다. 그러던 중 범인이 한국계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은 그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1.5세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혹시라도 불똥이 한국에게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였다.

심지어 미국 언론에서 그의 이름을 ‘조승희’가 아닌 미국식으로 ‘승희 조’라고 표기하였다는 것도 기사거리가 되었다. 조승희는 한국인인가?

3. 조선족 여성 김 모씨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다.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김씨는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에 소지하고 있던 중국여권과 신분증 등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결혼을 주선한 브로커가 위장결혼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구속이 되자, 김씨 역시도 위장결혼을 하였다는 이유로 국적취득이 무효가 되어버렸다.

김씨는 더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를 할 수 없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중국에서 국적회복을 인정해주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중병에 걸렸는데도 아무런 의료혜택도 받을 수가 없다. 김씨는 한국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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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셀 위와 하인즈 워드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스포츠칸, 한겨레, 연합뉴스



단일민족 이데올로기의 선택과 배제

국적법에 따르면 미셀위와 김모씨는 한국인이 아니고, 조승희는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적과 무관하게 미셀위가 한민족이라며 자랑스러워 하고, 조승희가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하나의 핏줄, 언어,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35개 이상의 혈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절대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하나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그 단일민족의 개념속에 중국이나 몽골, 러시아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셀위는 기꺼이 한민족이고, 조승희는 어쩔 수 없이 한민족이지만, 조선족 여성 김모씨는 한민족이 아니라 그저 조선족일 뿐이다.

이처럼 이중적인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족은 대부분 일제 치하에서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해, 또는 먹고 살기 어려워 부득이 한국을 떠난 사람들의 자손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건너온 조선족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에 대한 호칭부터가 다르다. 중국동포가 아니라 조선족인 것이다.

이들을 조선족으로 부르는 밑바닥에는 이들이 우리와 한 핏줄이 아닌 다른 족속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구분 지으려 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그래서 차별적이다.

명칭뿐만이 아니다. 단순 노무활동에 종사할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재외동포는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중국, 러시아 동포들은 재외동포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조선족이라는 명칭 자체가 차별적

예외적으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취업관리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국내에 친인척이 있는 자 등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으며, 입국한 후에도 복잡한 고용절차와 수많은 제한규정들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불법체류자가 되기 십상이다. 국내에 친인척이 없는 동포들은 아예 취업비자를 받을 수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국이나 러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 동포들이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부득이 불법체류를 하고 있거나 입국·출국에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불법체류 상태에 있더라도 이들이 최소한의 의료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반도를 떠나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동포들을 한민족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의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셀위와 조승희가 한국인이라면 조선족 여성 김씨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한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