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여전히 알몸으로 싸워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3 11:25
조회
474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76년 7월 동일방직의 여공들은 회사의 어용노조 결성에 반대하며 알몸시위를 벌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25일 아침이 되자 회사주변의 교통은 두절되었고 조합원들은 7월의 뜨거운 태양과 허기로 지쳐 쓰러져 있었다. 저녁 6시 반, 기동경찰은 연행버스를 대기시키고 방망이를 들고서 이들을 포위했다. 경찰은 5분간의 여유를 줄 테니 자진해산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여성노동자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노총가를 목이 찢어져라하고 불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비열한 경찰일지라도 반나체의 여성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으리라고 믿은 이들은 여성의 수치도 잊은 채 지친 목소리로 절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무자비하게 이들을 구타하고 연행해갔다. 곤봉이 난무하고 가냘픈 여성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였다. 어떤 여성은 죽어도 조합을 사수하겠다며 내의까지 팽개쳤지만 경찰은 나체 그대로 차에 팽개쳤다. 몽둥이에 얻어맞고 머리채를 잡혀 차에 끌려가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차바퀴 밑에 드러누워 연행을 저지시키려는 노동자도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7년 3월 7일 울산과학대학교에서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던 중 학교 관리사원들에게 맞서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알몸대치를 하였다는 신문기사가 실렸다. 이들 대부분은 5-60세의 여성들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월 7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수년간 울산과학대학교에서 청소업무를 하였다. 그런데 지난 해 노동조합을 결성해 민주노총 울산 지역 연대노동조합에 가입하자 대학 측에서 이들이 속한 청소용역업체인 ㈜한영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하였고, 이들은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농성을 하다가 농성장에 남자직원들이 들어오려고 하자 “옷을 벗고 있으면 못 들어올 것 같아서” 옷을 벗고 알몸대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위치에 놓여있는 이른 바 "청소아줌마", 여성이라는 성이 아닌 아줌마라는 제3의 성으로 남자 화장실을 무표정한 얼굴로 드나들어야 하는 그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70여만 원의 급여로 서너 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그들이 갑작스러운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농성을 하고, 알몸으로 끌려 나가면서 느꼈을 절망감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넘나드는 빈곤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알몸으로 권력에 맞서야 하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070314web04.jpg


울산과학대의 여성노동자들은 알몸시위를
벌였으나 직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왔다.
사진 출처 - 울산노동뉴스



여성 노동자에 대한 노동시장의 차별

한 연구에 따르면 생활보호대상자 중 3분의 2가 여성가구주이고, 도시빈곤가구주 중 3분의 1이 여성가구주라고 한다. 여성들은 전통적인 영역은 가정이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임신,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용의 단절, 여성의 노동을 남성의 노동에 비해 낮게 평가하는 고정관념 등으로 인하여 노동시장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며 쉽게 빈곤층으로 몰락하게 된다. IMF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무차별 인원감축을 할 때 여성들은 가장 우선순위로 해고 대상이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죽어라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빈곤층 가운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그것도 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가구주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빈곤이 성차별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는 7월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앞두고 기업에서 반복하여 계약을 지속하여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하면 사용자는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비정규직법안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나 계약해지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법률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계약해지를 부당해고로 보아 이를 금지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음식, 숙박, 서비스 부문 영세사업장의 고용보험가입 의무화와 최저임금의 현실화, 여성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보육시설 마련, 빈곤여성에 대한 직업훈련의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