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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악의 평범함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9 10:12
조회
273

이광조/ CBS PD



여름이다. 일상생활에서 여름을 느끼는 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극장에 개봉하는 공포 영화들을 보면서도 계절을 느낀다. 아주 어릴 때 봤던 “장화홍련”부터 중고생 시절 유행했던 “13일의 금요일”, 비교적 최근에 본 “한니발”과 개봉을 앞둔 “검은 집”까지. 공포 영화의 소재는 무척 다양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나 인간과 사회를 증오하는 이른바 ‘싸이코 패스’들이다.

겁이 많은 탓에 공포 영화를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공포영화에 흥미를 잃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영화가 주는 작위적인 공포보다는 현실이 훨씬 더 끔찍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던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내가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을 처음 느꼈던 건 대학 1학년 때 처음 경찰서에 잡혀갔던 때가 아닌가 싶다. 가두시위에 나갔다 시위에는 참여도 못해보고 사복경찰에 붙잡힌 나는 이른바 ‘닭장차’에 실려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머리를 무릎에 처박고 앉아 어디서 무엇이 날아올지도 볼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곤봉으로 혹은 군화발로 폭행을 당하면 정작 맞는 순간보다 타격이 가해지기 전의 잠깐이 훨씬 두려운 법이다. 하지만 좀 맞다보면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비슷한 패턴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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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 '검은집' 홈페이지


 

얻어맞는 것보다 더 큰 공포를 느낀 건 경찰서에 들어간 뒤였다. ‘전경들이야 시위학생들에게 공격을 당했으니 흥분해서 우리를 때렸겠지만 사람들의 눈이 있고 높으신 경찰간부와 형사들이 있는 곳에선 좀 덜 때리겠지.’ 하지만 나의 이런 순진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꼬박 24시간동안 2시간 단위로 새로운 전경들이 들어와 우리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경찰서의 높으신 양반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 느낀 배신감과 절망감이란. 그 뒤 내가 당한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끔찍한 고문에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더구나 80년 5월 광주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이 총칼에 목숨을 잃고도 침묵을 강요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막 세상물정에 눈을 떠가던 내게 사람들이 권력의 횡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현실은 ‘공포영화’ 그 자체였다.

그 공포를 일으킨 사람들은 ‘싸이코 패스’도 아니었고 ‘소복 입은 귀신’도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정에서 자상한 아비였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정 많은 좋은 친구, 이웃에겐 모범적인 생활인으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한 없이 선량한 이 소시민들이 ‘먹고 살아야지,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있나’, 또는 ‘세상이 그런데 어쩔 수 있나’라는 핑계로 거대한 악을 지탱하는데 일조했다.

얘기가 장황해졌다. 거대권력이 폭압을 휘두를 때 거기 맞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저항했기에 나는 깊은 정신적 상처를 받지도 않았고 그 시절 ‘먹고 살기 위해’ 권력에 휘둘렸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그런 ‘거악’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부당한 공격을 받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할 사람들이 가해자를 두둔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손가락질한다면, 그가 느낄 공포와 절망은 어느 정도였을까? 더구나 그 피해자가 아직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청소년에다 연약한 여성이라면, 또 그가 겪은 고통이 ‘성폭행’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폭력이라면, 그가 느낄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나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이 전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피해 학생이 겪은 2년 6개월은 세상 그 어느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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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해 방송한 MBC '뉴스 후'
사진 출처 - MBC


 

그는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힘도 센 남학생들 수 십 명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경찰과 주변 사람들, 제대로 된 현장 조사도 없이 가해자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린 법원과 자신의 신상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 경찰과 언론, 가해자들과 쉽게 합의를 해줘버린 아버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가해자인 자기 자식의 선처를 위해 그가 어렵게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을 망쳐버린 가해자의 어미까지. 세상에 이런 공포영화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상대방의 입장과 고통을 헤아리지 않는 인간,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성찰하지 않는 인간. 나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인간. 그들이 한 소녀에게 가한 행위는 ‘악’이다.

악은 멀리 있지 않다. 반성하지 않는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평온한가. 때때로 악은 바로 그 평범함 속에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