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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에 대한 단상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08
조회
136

이광조/ CBS PD



군사용어에 “부수적 피해”라는 말이 있다. 전투행위시 불가피하게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이르는 말이다. “피해”라는 단어는 전쟁의 참상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피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리는 건 교통사고나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부수적 피해”라는 말 속에서 팔,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부수적”이라는 수식어는 더 기가 막히다. “부수적”이라는 말 속에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행동에 따르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는 뜻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뜻도 있지만 ‘고의는 아니다’라는 무책임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 엄청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수 천 명에 이르고 이라크의 경우에는 최근 민간인 희생자가 65만 여 명에 이른다는 한 미국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도 이 보다는 적지만 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이 18만 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는 전쟁의 참상과 본질을 희석시키는 고약한 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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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베이루트의 무슬림 시아파들이 살아가는 남부 지역, 파괴된 건물 더미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엄청난 민간인 희생자 수도 문제지만 공격에 동원된 무기와 공격방식은 더 큰 문제다. 미국에 이어 영국이 이라크에서 ‘백린’을 무기로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면서 ‘인폭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사람의 살갗을 태우는 ‘백린’은 ‘과도한 피해와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무기로 국제적십자가 사용금지를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은 이런 호소를 콧등으로도 안 듣는 듯 하다. 이들 군사강대국들은 민간인이 밀집한 지역에서 ‘인폭탄’과 ‘집속탄(커다란 폭탄 속에 많은 수의 소형 폭발물이 장착돼 있어 소형폭발물이 분산 폭발하면서 살상반경을 넓힌 폭탄)’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고 적군이 있다고 의심되는 지역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도심을 무차별 폭격하고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속탄을 투하하면서 민간인들의 희생을 예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법을 잘 모르지만 형사법적으로 따지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해당될 듯 하다.

2차 대전 이후 지구촌에서 벌어진 전쟁의 대부분은 군사력이 비대칭적인 국가들 간의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고 최근의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까지. 군사력이 불균등이 심한 상황에서 강대국이 물량 공세를 펼 때 이른바 “부수적 피해”는 커지기 마련이다. 최근의 전쟁에서 “부수적 피해”가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물량공세는 주로 서방 강대국들의 몫이다. 더구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전쟁들은 이슬람에 대한 문화적 우월의식과 인종주의까지 암암리에 개입됐으니 전쟁의 양상은 더욱 참혹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후세인 같은 독재자는 법정에서 자기주장이라도 하지만 폭탄세례 속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은 이름도 목소리도 없다.

50년 전 이 땅에서도 전쟁으로 끔찍한 “부수적 피해”가 발생했다.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가 남북을 합쳐 수십만에 이른다(전쟁을 시작한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2차 세계대전 전 기간동안 사용된 폭탄의 3배 정도가 집중됐고 베트남전의 상징처럼 된 네이팜탄도 3만 2천 톤 이상 사용됐다. 주요 공격 대상은 북쪽의 도시들이었지만 남쪽에서도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경북 예천에서 수 천 명의 민간인들이 네이팜탄의 화염 속에 목숨을 잃었다(더구나 이 네이팜탄들은 일본에서 생산된 것으로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펴낸 화염무기에 관한 한 저서에서는 ‘일본 경제 재건의 첫걸음이 한국의 도시를 파괴하는 네이팜탄 생산이었다는 사실은 일종의 역설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아프간과 이라크,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죽음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전쟁 소식을 보도하는 언론과 전쟁의 참상에 무감각한 우리 자신을 보면서 가끔 무서운 생각이 든다. 불과 반세기 전 ‘부수적 피해’의 희생자였던 우리가 어느 새 가해자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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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이동하는 모녀의 모습.
전쟁은 민간인들의 피해를 가중시킨다.
사진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