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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조직폭력 (최응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3 11:22
조회
304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2006년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수행한 국내 폭력조직범죄에 대한 협동연구과제에 참여하여 「폭력조직의 서식환경에 관한 연구」와 「폭력조직의 하위문화에 관한 연구」라는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연구결과가 지난 1월 29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방송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에 시달려야 했다. 언론에 비친 조직폭력에 관한 기사를 읽고 나서 연구에 직접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청소년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표현이 있어 안타까웠다. 예를 들면, 폭력조직원의 직무만족도는 ‘보통’이 67.0%로 가장 많고, ‘만족’이 12.3%, ‘불만족’이 20.7%이었다. 그런데 경찰공무원 1천8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4년의 또 다른 연구에서 경찰의 직무만족도가 ‘보통’ 55.9%, ‘만족’ 9.5%, ‘불만족’ 34.7% 등으로 나타난 점과 비교되는 것으로, 경찰의 직무만족도가 오히려 폭력조직의 조직원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보도를 접하는 청소년들은 경찰의 직무만족도가 낮으니 직무만족도를 높여주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직폭력도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떻게 경찰관의 숭고한 국가공권력 집행행위와 폭력조직의 불법행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언론에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해서 보고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부분은 여과하여 신중하게 보도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폭력조직의 세계를 미화하는 사회분위기

조직폭력에 대해서는 형사사법실무가나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다. 조직폭력배들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 소설이나 영화로 소개되고 다루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모래시계’, ‘조폭마누라’, ‘친구’ 등 폭력조직의 세계를 소재로 해서 제작된 드라마나 영화가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청소년들은 조직폭력에 대한 환상을 갖거나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회분위기마저 조성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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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폭력조직은 주로 불법적인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국가의 안정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라는 점이다. 폭력조직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뿌리뽑기 위해 경찰과 검찰에서 지속적으로 단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폭력조직은 근절되지 않고 활동범위가 국내에서 이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민의 정부이래 공권력의 실추로 인하여 조직폭력서비스에 대한 수요 또한 미국 등에 비해 매우 높다. 실제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설문지 응답자의 10.7%는 “법에 의지할 여건이 안 되면 조직폭력을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응답자의 12.2%는 “누가 조직폭력을 앞세워 공격한다면 나도 조직폭력을 동원하겠다고”고 답변해 조직폭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이처럼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조직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는 폭력조직은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율, 혈육을 능가하는 결속과 연대감, 정보 누설시 철저한 보복 등으로 인해 적발이 쉽지 않고, 조직폭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여전하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조직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치와 더불어 언론의 협조가 기대된다.

 

혈육을 능가하는 결속과 연대감으로 운영되는 폭력조직

형사사법당국에서는 폭력조직의 실체를 파악해서 조직의 중추에서 조직을 유지·운영하고 있는 두목이나 간부들을 지속적으로 검거하여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폭력조직을 존속시키는 것은 분쟁해결에 필요한 비용, 폭력조직간의 대립항쟁시의 비용, 변호사비용 등 조직운영자금이므로 이들 자금원을 고갈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이 수립되어 지속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폭력조직의 서식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유흥향락업소와 사행성오락장에 대한 정비와 폭력조직의 인적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중·고교 학생들의 폭력서클을 찾아내 조기에 와해시키는 것이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조직의 피해자인 피해자, 참고인 또는 증인에 대한 철저한 신변안전조치를 통하여 보복의 두려움 없이 조직폭력의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폭력조직의 사회적 기반을 붕괴시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언론이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론은 입법·사법·행정에 이어 제4부로 불릴 정도로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청소년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조직폭력에 대한 신중한 보도태도는 조직폭력을 근절시키는 데 있어서 크게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흔히, 언론은 사회를 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조직폭력의 보도와 관련해서는 언론이 사회정화, 즉 조직폭력의 근절과 관련된 보도태도보다는 폭력조직의 진출 분야, 조직원의 월평균 수입, 폭력조직원의 직무만족도와 같은 흥미 위주의 보도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조직원의 월평균 수입이 400만원이라는 보도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많은 청소년들을 조직폭력세계로 유인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앞으로는 언론에서도 조직폭력배들은 의리를 중시한다거나 남자답다고 조직폭력을 미화하거나 왜곡 보도하기보다는 조직폭력의 해악을 상세히 보도하여 청소년 불량서클 가입자를 비롯한 예비범죄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