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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에 충실한, 너무나 서열에 충실한 사법부 (송기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8:12
조회
461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서열에 충실한, 너무나 서열에 충실한 사법부
-과연 법원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가

 

연수원 몇 기?
법원의 인사이동 때면 언제나 연수원 몇 기가 승진했다느니, 정기인사를 앞두고 어느 판사가 사임했다느니, 어떤 판결을 내린 판사가 어디로 전보되었다느니 하는 식의 보도를 접한다. 얼마 전 있은 법원의 인사에서는 연수원 15기가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한다. 후배기수가 선배를 앞지르기라도 하면 그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된다. 법조인을 소개할 때면 어느 신문 할 것 없이 연수원 몇 기 또는 고시 몇 회가 따라붙는다. 기수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 서열에 따라 움직이고 뒤지면 후배를 위해 용퇴하는 곳이 이 나라의 사법부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다. 적어도 그 조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풍경은 국민들에게 무엇일까?

 
법관인사의 법칙(?)
법관의 인사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철저하게 서열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법연수원 기수가 제일 중시된다. 같은 연수원 동기라 해도 사법시험과 연수원 성적에 의해 결정된 등수는 법원에 근무하는 동안 인사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을 필두로 등수에 따라 배치된다. 최근에는 여성 합격자의 성적이 좋아 법관 배치 방법이 일부 변하고 있다 한다. 대법원의 대법관 임명과정에서도 서열이 중시되는 점은 전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대법원장은 대법관을 자신보다 몇 기수 아래의,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 또는 법원근무경력을 가진 변호사 가운데서 제청해 오고 있다.

둘째, 승진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이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되어 있긴 하지만, 어느 법원이나 재판에서는 독립되어 있다. 심급이 있을 뿐 어느 법원이 어느 법원의 상위 또는 하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관은 대법원장, 대법관, 고등법원장, 지방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등으로 서열화되어 승진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법관의 서열화는 법원의 서열화를 가져와 국민은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에 의해 비로소 설득된다. 재판을 받을 권리의 내용으로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언급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서열화된 법원구조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법원장이 대법관임명제청권을 실질적으로 또한 결정적으로 행사하면 대법관도 ‘승진’ 임명되는 것이고,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관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청문절차가 의례적인 것이 되면 헌법재판관도 대법원장이 ‘승진’ 임명하는 꼴이 된다.

셋째, 승진에서 동기 또는 후배에게 ‘밀린’ 법관은 대부분 사표를 내고 변호사 개업을 한다는 것이다. 판사급여가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보다 ‘박봉’임이 분명하니 사임은 또 다른 기회가 되겠지만, 승진되었더라면 사표를 쓰지 않았을 법관들에게는 서열에 충실한 법원을 위한 희생이라 할 법하다.

넷째, 법원내의 엘리트코스로 법원행정처를 거친다는 점이다. 전도양양한 법관 상당수가 법원행정처에 발령받아 재판보다는 법원행정을 담당한다. 오랜 기간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다가 대법관이 된 분 가운데는 재판으로부터 너무 오래 떠나 있다보니 재판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다. 1970년대 이래 임명된 대법관의 약 40%가 법원행정처의 고위직을 맡은 적이 있고, 법원행정처 차장(최근까지만 해도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 겸직하였다)의 경우 대법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70%를 넘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헌법재판관, 고등법원장 등 상급의 직위로 승진한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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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다섯째, 법원행정에 종사하는 법관이 더 우대된다는 점이다.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법관들이 우대되는 것은 물론, 대법관으로 ‘승진’ 임명된 법관의 대부분은 법원행정에 종사하던 법관들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판을 담당하다가 대법관에 임명된 경우는 극소수(김영란 대법관, 윤일영 대법관, 안병수 대법원판사 등)이고 대부분은 법원장 등 행정에 종사하던 법관들이다. 사법부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통제되는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법원 내의 (인사)문제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얼마 전 책을 출판한 어느 변호사는 20년이 다 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인사유감」이란 글을 썼다가 서울민사지방법원 발령 하루 만에 다시 울산지원으로 좌천당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괘씸죄에 걸려 좌천당했다는 얘긴 들었지만, 본인이 증언하는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책에 실려 있다는 내용을 빌자면, 당시 대법원장이 “나는 이 나라에서 나보다 높은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는 사람이다, 새까맣게 아래에 있는 젊은 판사가 나를 모욕에 가깝게 비판하는 것을 가만둘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순하게 생겼구먼. 서 판사가 비판한 인사는 다 이유가 있었다.……서 판사도 자숙하면 선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법관조직의 과도한 관료화, 계급화는 사법부 만악의 근본」이라는 글을 썼다가 재임용에서 탈락하고 지금은 어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분도 비슷한 경우이다.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대법원장의 인사에 대해 감히 유감이라니 불경죄에 해당할 법하다. 아하, 대법원장이 그런 자리였던가? 며칠 전에는 2월 법원인사에 대해 현직 판사가 비판하는 글이 법원내부통신망에 올라 보도되기도 한 걸 보면 예전만큼은 아니라 생각되지만, 대법원장의 여전한 인사권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서열에 충실한 법원
이런 인사법칙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아무래도 서열에 충실하다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법원에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참으로 이상하기 그지없는 것이 법원의 조직이고 인사이다. 냄새나는 방안에 오래 있는 사람은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방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그 냄새를 쉽게 맡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법원장이 판결의 잘못에 대해 말을 해도 무반응인 까닭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과거 사법부의 인권옹호노력이 부족했던 데 대한 반성과 사과를 하였고, 이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그 용기를 칭송하였다. 사법부의 수장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참으로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 사건이라 할 법하다.

그러나 과연 그게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바라봐야 할 일일까? 누군지를 특정하지도 않은 채 과거 정권의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충실하지 못한 때가 있었고 그런 잘못된 판결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런 판결이 한 두건도 아니고 천여 건이 넘는다고 한다면 그런 발언에 대해 법원의 법관들은 또는 과거에 법관이었던 사람들은 그저 대법원장님의 말씀이라고 경청만 하고 있어야 옳은 것일까? 그런 혐의를 받는 판결을 한 판사는 자존심도 없나? 헌법적으로 독립이 보장되는, 아니 요구되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 재심을 거치지 않고 대법원장이라는 자격으로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법원의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발언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결론이야 옳다지만 이런 발언의 맥락은 결코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에 반할 위험도 있는데 말이다. 필자는 이런 무반응이 이러한 법원의 서열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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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대법원장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서열화의 원인
이러한 서열화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대법관의 임명방식, 대법원장의 인사권과 법관양성제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
첫째, 대법원의 구성방식의 문제이다. 우리 대법원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법원은 현재 13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최고법원이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대법원장 임명에 국회와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원리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대표기관의 관여를 통하여 대표성을 얻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대법관의 임명에 대통령과 국회가 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법원장이 왜 대법관의 임명제청권을 갖느냐는 것이다.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능력 있는 법률가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입김보다는 법원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이러한 제도를 취하는 예가 없는가? 그것은 대법원이 합의부 법원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합의제 기관은 구성원 사이의 대등성과 독립성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법관들이 소망하는 대법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제청권을 가지는 대법원장에 대해 대법관이 얼마나 대등하며 독립될 수 있을까? 오랜 법조경력을 가진 분들이 대법원장에 대해 종속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임명과정을 거친 경우 적어도 대등하거나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법관은 대법원장과 그의 제청을 받아 임명된 대법관의 관계를 합의부의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의 관계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이 악법 중의 악법으로 지목되는 1972년 유신헌법에서 처음 채택된 제도라고 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을까? 현재 대법원이 13인으로 구성되는 합의부인 최고법원이라는 점은 대법원장의 임명제청권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법원장의 인사권
둘째, 대법원장의 인사권이다. 대법원장은 결코 대등하지 않은 대법원을 구성하고, 대법관전원으로 구성되는 대법관회의의 의결을 거쳐 법관에 대한 인사를 한다. 대법원이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구성된다면 대법관회의에서 대법원장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행정조직으로 관료화된 법원은 이러한 인사권에 의해 조직된다. 자문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활동은 미미하다. 대법원장의 강력한 인사권은 서열화를 촉진하고 강화한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을 보좌하는 법원행정처에 우수한 법관들이 임명되고 인사에서 우대됨으로써 법원의 관료화도 강화된다.

 

 

법관양성과정과 연수원
셋째, 법관의 양성과정의 문제이다. 사법연수원 과정을 통해 변호사가 양성되고, 이 중 예비판사가 임명되고 배석판사를 거쳐 법관이 양성된다. 합의부의 배석판사는 합의부 부장판사에 의해 법관으로 훈련되고 양성된다. 업무상의 지도와 함께 인간적 관계도 돈독해진다고 한다. 합의부는 배석판사 2인 중 한 명이 주심을 맡고 부장판사와의 ‘합의’를 통해 합의부의 의견이 나온다. 합의부라지만 판사는 둘뿐인 셈이다. 사법연수원 과정에서도 이러한 법원의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서열에 매우 충실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간혹 접하는 연수원 선후배들의 모임을 보면 군대보다 엄격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 연수원 교수와 연수생들의 관계는 고려시대 과거제에서 지공거와 과거급제자의 좌주와 문생의 관계라 할 모습이 나타난다. 스승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 좋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필자의 시각이 삐딱해서일까? 법원의 판사가 판사로만 일로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때가 되면 변호사로 개업하려 하고 연수생들도 법원에 가거나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선배법관들과 가까워져야 하는 처지에서 서로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단지 법률가로서의 공부와 관련해서만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서열화, 획일주의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결국 대법관임명, 법관양성과정, 사법연수원 과정 등 여러 장치를 통하여 법원은 대법원장을 필두로 지방법원합의부 좌배석판사까지 철저하게 서열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열화를 깨는 것은 각 법원이 독립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재판을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개개의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서열화, 관료화된 법원의 상하위계질서 속에서의 획일주의적 압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서열문화는 법관의 사고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사재판에서는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고 형사재판에서도 적절한 제재를 하지 못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는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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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 본관.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대법원의 구성방식 개선이 필요하다
법원의 서열화를 깨려면 대법원의 구성방식을 바꿔야 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방식을 같게 해야 한다.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가지는 방식은 그야말로 대통령 다음의 권력을 대법원장에게 주는 위험한 구상이다. 이제 그만 갈아 치울 제도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도 생각해봄 직하다. 선거에 따른 부작용도 있으므로 그게 어렵다면 대법원장과 대법관 모두 국회의 동의와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은 법원만의 대표가 아니므로 법원의 판사 또는 법원의 판사와 직원이 선출하는 방식은 국민주권주의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법률가들만이 참가하여 선출하는 방식도 안된다. 국민으로부터의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법조인의 수를 늘려라
법조인의 양성과정도 문제이다. 근본적으로 법조인이 1만여 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변호사 개업이 고소득을 보장해준다면 법원의 판사가 나중에 변호사개업을 하지 말라는 것은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관들이 대법관이 되려 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선호하는 이유가 그 명예보다는 현실적인 것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필자만의 어리석은 추측일까? 단 한 군데뿐인 법률가 양성기관을 통하여 일원화된 제도는 이러한 서열화된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법원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법조인의 수가 획기적으로 증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사법개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적어도 법률가 양성기관이 한 곳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독립성을 가지는 여러 기관을 통해 법률가가 양성되어야 한다. 사법시험제도를 유지하든 법학전문대학원제도를 도입하든 법률가의 수는 획기적으로 증가되어야 하며 법률가 양성기관은 다원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서열화를 불식하는 것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
법원의 서열문화를 혁파하는 것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길이다. 개헌논의가 활발한 요즘, 굳이 개헌을 하자면 국민에게 절실한 문제부터 접근해야 한다. 모든 논의의 시작과 끝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