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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생각한다 - 대통령 임기변경과 선거일정 조정만을 위한 개헌은 무모하다 (송기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6:16
조회
427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헌법학 교수



노무현 대통령이 느닷없이 개헌 얘기를 꺼냈다. 단순한 화제거리가 아니라, 여론 수렴을 거쳐 헌법개정안을 곧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개정하고자 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으로 하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4년 임기와 그 개시시점을 일치시키겠다는 것이다. 개헌해야 할 여러 쟁점이 있지만 다른 것은 일단 배제하고 이 두 가지 쟁점에 집중하여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20일 이상 대통령이 공고하고,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국회에서 의결된 후 국민투표에 붙여진다. 국회의결 이후 국민투표까지 30일 이내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개헌안을 제안하여 90일 이내에 헌법개정이 완료되니 대통령 선거에 결정적인 장애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헌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헌법 제128조 제2항)고 하고, 노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도 바닥이므로 노대통령이 자신의 중임을 위하여 추진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물론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이 이뤄질 경우, 현행 헌법의 이 조항이 새로운 헌법에도 계속 규정되지 않는 이상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 조항이 개정안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개헌구상은 대통령이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임기 이전에 가시적인 정치적 성과를 내고자 하는 의도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말처럼 시대가 변하면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1987년 헌법이 담고 있는 가치나 정신이 개헌을 얘기할 만큼 변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초점은 개헌구상의 핵심으로 얘기되는 대통령 4년 중임과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의 일치를 논의하는 것이 어떠한 시대정신의 변화를 반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이 두 가지 내용의 개헌과 관련해서는 거창하게 시대정신을 얘기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1987년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서 몰아내야 할 정신과 가치는 여전한 군사문화의 잔재와 사법특권을 옹호하는 제도이며, 새로이 헌법에 담아야 할 시대정신과 가치는 더욱 강화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 아닌가.

노대통령은 1987년 개헌과정에서 장기집권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마련된 5년 단임제는 이제 그 사명을 다했고, 오늘날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책임정치를 훼손하고, 국정운영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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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9일 오전 11시30분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 논의를 제안하면서 추후 이 같은 방향으로의 개헌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옳은 지적이다.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면서 국정수행능력이나 내용을 묻지 않고 임기를 딱 한 번만 수행하게 하는 것보다 잘 하면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단임제는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선진국에서 단임제를 택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에서 이뤄진 장기집권의 가능성도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유능한 정치인에게 장기적 국가과제를 설정하고 일관되게 국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려면 중임을 제한하는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보다 객관적으로 나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5년 단임제는 역사적 맥락이 1인 장기집권의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 의도를 가진 것이지만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재집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신 있는 국정의 구상과 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선을 위한 선거과정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를 의식하지 않고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책임정치가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전두환, 노태우의 사례에서 보듯이 무책임정치도 또한 가능하다.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정치인을 선택할 기회도 많아진다. 모든 제도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단임제는 반드시 단점만 가진 제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중임제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근거로 드는 단임제의 단점은 중임제의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두 번째 임기에는 단임제와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또 단임제는 장기적인 국정과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데도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운영이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 늘수록 정책은 정당 차원에서 구상되고 추진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단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구상도 문제가 있다. 이런 주장은 이미 학계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수시로 치러지는 선거,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회에서 겪는 대통령의 괴로움을 모를 바 아니다. 사회적 갈등이 일상화되고 선거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와 임기개시시기를 일치시키면 문제는 없는가? 이 경우 대부분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이 형성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장 선거와 의회의원 선거는 언제나 여대야소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의회다수당을 차지한 여당에 의해 뒷받침을 받은 대통령은 국정을 수행하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여대야소의 정국에서 우리는 어떤 경험을 했던가? 이성적 토론이 실종된 국회, 타협에 의한 합리적 방안의 도출은 포기되고 일방적 관철이나 목숨을 걸었다는 ‘결사저지’가 다반사 아니었던가? 우리의 의회는 이제 변하였는가?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만 변했다고 하기엔 아직도 멀었다. 이런 현실에서 여대야소 구도는 여당의원들에 의한 대통령 국정운영의 일방적 지지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사안에 따라 합리적 대안이 제시되고 이성적 토론이 이뤄지기보다는 자기정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반대파에 대한 무조건적인 결사저지가 나타날 수 있다. 헌법이 권력분립주의를 택한 근본적 이유가 적절한 견제를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기여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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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26 재보궐선거일인 26일 서울 성북구 월곡4동 한 아파트 단지내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수시로 이뤄지는 선거는 주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국민의 의사가 표출되는 과정이며, 국정운영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선거문화를 바꿔나간다면 사회적 비용의 발생도 굳이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금권정치가 문제이지, 선거가 자주 있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4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경과한 뒤에 국회의원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면 그 과열양상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미국 연방의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의회 하원의원 임기는 2년, 상원의원은 6년이다. 상원의원은 2년마다 3분의 1씩 개선되어 2년마다 의회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의 정책수행에 대한 중간평가가 이뤄진다. 수시로 이뤄지는 선거를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또 생각할 수는 없을까?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현재의 제도보다 나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 장점만 나타나고 단점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제도를 바꾼다고 현재의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불식한다고 할 수도 없다.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대통령 4년 중임과 국회의원과 대통령 임기의 일치 등 의제에 집중하여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를 행사하지 않아야 할 뚜렷한 사유가 없는 한,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헌법이 부여한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하니 노대통령은 조만간 개헌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헌은 단순한 문구의 수정이나 조금 더 나은 제도로 만들고자 하는 단순한 발상에서 이뤄질 것은 아니다. 개헌은 그 대상이 헌법의 중요한 사항에 대한 것이어야 하고, 그 내용을 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요성이 있어야 하며, 그 사항에 대한 국민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한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는 부수적인 내용의 개헌도 함께 이뤄질 수 있는 것이겠지만, 개헌을 추진하려면 우선은 이러한 중요한 대상과 그 개헌의 필요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임기와 선거일정의 조정이 다른 것보다 앞서서 개헌을 해야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의제일까?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를지 모르지만,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민들에게 대통령 임기와 선거일정 조정 등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헌논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헌법이 가지는 기본권 제약요소를 찾아내고, 국민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군사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일반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군사재판 권한(제27조 제2항), 평등권을 침해하는 군인·군무원 등의 국가배상청구권 제한(제29조 제2항), 법관의 관료화·서열화를 초래하는 법원구성의 방법인 대법원장의 대법관임명제청권(제104조 제2항),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정당국고보조(제8조 제3항) 등 조항을 폐지 또는 개정하는 것은 몇 가지 예이다.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정말 중요한 조문들의 개정이 없이, 그 장점이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 없는 내용만을 위한 개헌이라면, 대통령이 그토록 우려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할 때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4년 중임제로 바꾸면 5년 단임제가 나타내는 문제점을 없앨 수 있는가? 과연 다른 것을 미루고 그 내용을 바꿀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는가? 좀 더 임기를 계속해서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할 만한 정치인을 우리는 가졌던가? 단임제가 초래하는 정치왜곡이 그리도 심각한가? 국회와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켜 두 기관을 균질화하는 것이 그리도 필요한가? 오히려 국회의 의정활동의 내용을 바꾸는 게 먼저 필요한 게 아닌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헌법은 여러 문제점들이 있지만, 그래도 잘 손질하고 적절하게 메꾸면 우리 시대의 삶을 담아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헌법을 바꾸면 정치가 바뀔 것이라는 안이한 환상은 금물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의 개정은 정치의 변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지금 굳이 개헌을 하자면 우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정치적 계산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