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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주화를 원하는가? (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7 15:44
조회
267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지난 주 수업시간 “여성운동, 여성의 해방은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정치적 차원에서 주장할 것이 아니라... 여성운동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해 왔나요?” 의견과 질문이 동시에 섞인 한 학생의 발언에 잠시 멈칫거리게 되었다. <인권>과 <정치>가 별개였는지? <정치적>이라함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답은 뒤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전후로, 지난 30여 년 간 해왔던 여/성/운동에 대해 뒤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든 현장에 있었다. 하나는 강남역여성살해사건 이후 198일간의 기록을 통해 그간의 활동을 정리해보는 자리였고 다른 하나는 사이버여성폭력에 대해 대응하던 일군의 여성들이 오프라인에서 단체를 결성하는 아주작고 소박한 자리였다. 이 두 현장에서 어쩌면 민주화와 더불어 30년간 여성운동을 해 왔다고 인식하고 있던 나는, 새로운 여성폭력현장과 현상의 출현에 대해, 그 잔혹함에 대해,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들에 대한 질기고 악랄한 위협과 테러에 준하는 남성들의 대응양태를 현장에서 겪은 그들을 통해 들으면서 절망, 슬픔, 안쓰러움, 분노, 공포 등 여러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야 했다.


강남역 사건이후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발화하였다 하더라도, 책임질, 즉 ‘총대를 메야’할 누군가는 필요하기에 자발적인 ‘총대’들이 나타났고 이들은 며칠 밤낮을 새우며 추모현장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듯이 ‘일베’를 비롯하여 수많은 남성과 남성 집단들이 ‘웬 여혐살인?’ 이라며 이들을 비꼬고, 비웃고, 욕하고, 위협하고, 나아가 타이르기 까지 했었다. 토론회에서 총대들이 겪은 사건들, ‘커터칼을 드르륵거리며 추모현장을 배회하던 남성’, ‘일베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추모현장 훼손’, ‘저지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로 촬영’, ‘동영상 및 영상 올리기’ 등 순간순간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후속작업으로 이어지는 온라인상에서의 촬영공개와 신상 털기는 이들이 현재까지도 그 공포와 두려움 안에 갇혀있게 하고 있다. 이들은 말한다. ‘처음부터 페미니스트는 아니었다.’ 고. 오히려 그러한 남성들의 위협과 공포로 인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라넷’을 위시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혐오와 뒤섞여있는 여러 사이트들을 알고 있다. 온라인 일상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행위에 대한 여성들의 공격은 소위 ‘메갈리아’를 통해 발화하였고 이들의 행위는 ‘미러링’이라는 양식으로 수많은-소위 진보남성을 포함-남성들의 비판과 우려, 타이름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더 치열한 보복과 위협들이 이 여성들에게 가해졌음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들에 대한 신상 털기는 결국 이들이 직장을 그만두게 될 지경으로 만들고, 고소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온라인 활동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고소와 그 판결에 따른 경제적 문제까지 떠안고 있으며, ‘남혐’ 신고로 이들의 활동사이트가 폐쇄조치 되거나 남성들의 공격으로 인해 자체 폐쇄하거나 아니면 폐쇄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그러나 ‘여혐’사이트에 대한 신고는 ‘표현의 자유’라는 보호 하에 운영되고 있는 것, 이것이 온라인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이다. 많은 여성들이 온라인에서의 성폭력저항활동이 위축되거나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을 넘어 좀 더 공식적인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것이 앞서 말한 단체의 개소식이었다. 그들 역시 여전히 그간 당해온 남성들의 위협과 ‘신상 털기’ 등으로 인해 공포와 두려움, 상처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20161207web01.jpg서울시여성가족재단 성평등 도서관 '여기'에 마련된 '기억 존'에 전시된 추모 메시지
사진 출처 - 여성신문


이 두 현장의 두 일군의 여성들을 보면서 어떤 이는 여성운동의 맥이 끊이지 않았다 반가워하고, 어떤 이는 온라인상의 여성폭력과 저항을 담론화해야 한다고도 한다. 나는.... 그냥 이들이 잘 생존했으면 했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상처, 신상 털기로부터 비롯된 직장 및 집, 가족들과의 결별로 인한 가난과 법적 다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축으로부터 이들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 또래의 이들의 저항이 너무나 처절하고 힘겨워서, 여성운동을 했다는 것이 정말 미안할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평가와 소문에 의존했던 것에 대한 환멸. 여성폭력관련법들이 제정됨으로써, 형식적 시스템이 구비됨으로써 어쩌면 여성폭력은 공식적 시스템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은밀하게 숨어버렸던 듯하다. 마치 성매매 집결지를 없애자 다른 곳에서 진행되는 것처럼.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그러므로 여성해방운동은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진행되어왔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자명한 듯 보이는 이 도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30년을 넘게 싸워왔다. 그리고 그 해결을 ‘정치적’ 으로 접근하여 법과 제도로 이식해왔던 것이다. 페미니즘이 뭐냐고 묻는다면 여성들의 수만큼 많은 페미니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삶의 현장이라는 맥락 속에 있는 주체들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성도 인간’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들이 페미니즘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적’인 영역에서 ‘시스템’과 ‘조직’으로 여성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하려고 한 것이 그간의 여성운동이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여성운동은 ‘공공의 성격을 띠나 매우 개인화된’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담론과 언어’를 통해 ‘개인’들이 여성차별과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이는 ‘일상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부딪히는 것은 시스템으로써, 구조로써의 가부장제가 아닌 ‘남성의 얼굴을 한’ 가부장제이다. 그러므로 남성 대 여성, 혹은 남성 집단 대 여성집단 이라는 구도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왜 자꾸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 몰아가느냐?’ 고 ‘나까지 싸잡아 몰지각한 남성으로 몰지 말라’ 고, 또는 ‘너무 예민하다.’ 고 할 것이 아니다. ‘일상의 민주화’는 뒤집으면 ‘일상의 비민주성’을 의미한다. 일상이 비민주적일 때 그 속에는 억압과 폭력의 주체와 대상이 존재한다.


가부장제 한국사회에서 과연 어떤 성이 주체이고 대상일 것인가는 자명하다. ‘미스 박’으로 모든 못마땅한 여성을 대상화하는 언어와 태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집회에서 성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에게 여지없이 욕설이 날아들고 성추행이 발생하는 한, 나는 어떤 정권 혹은 정부형태라 해도 온전히 민주적이라고 느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누구나 주인/주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권력에서의 의미만이 아니다. 아니 국가권력의 존재이유가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 즉, 국가의 주인/주체들의 삶을 잘 조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일상적인 삶을 누군가의 방해나 억압 없이 스스로 조직할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민주적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국가의 존재 자체가 국민구성원 모두의 자치적인 일상의 정치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곧 국가이며, 국가의 성격은 따라서 국민들의 성격을 닮을 수밖에 없다. 민주화에 대한 함성과 열망이 뜨거운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삶의 조직방식, 일상의 정치방식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나는 타인/타자, 특히 소수자와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는가?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가 내 삶과 어떤 연결을 가지며,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 무엇이 민주화인지? 나는 민주적인지......


이 글은 2016년 12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