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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집단의 오만과 편견(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05 14:02
조회
75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6월 3일, 지인이 올린 글은 5월 29일에 있었던 경찰대학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강사 당사자가 당하고 느낀 상황들, 그로인한 분노와 당혹감, 좌절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은 우리 모두는 역시 분노와 어처구니없음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당일저녁 TV 방송인 ‘스트레이트’에서는 ‘정보경찰’의 정권에 대한 무한 아첨과 아부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점에서 경로당까지 대중동향을 파악하고, 심지어 역술인의 점괘까지 동원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대응전략이 필요한지 까지 제시하며 정권유지를 위해 복무해온 경찰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그대로 실천한 정권의 모습에서 경찰이 다만 검찰에 비해 약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사권의 독립, 경찰의 독립,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치안정책과정>의 ‘성 평등’ 교육장에서 보여준 그들의 행태와, 시민의 인권이 아니라 정치권의 권력에 아첨하는 모습은 경찰의 독립이나 자치제로의 변화는 성급한 것을 넘어 결코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지난해 혜화역 붉은 시위에서 여성들은 여경을 90%로 하라고 주장하였다. 현재 여경은 1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90%에 대한 요구는 그동안 경찰들이 여성문제 혹은 여성인권문제와 관련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보여준 편파적인 수사결과 때문이었다. 불법촬영이 이루어져도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와 여성인 경우에 대한 수사 과정이나 결과가 판이한 것에 대해, 결국 경찰들이 대다수 남성들이기 때문에 남성카르텔이 당연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남성에 대해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는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오랜 관행을 깨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옳았다.


 교육을 해본 이는 대체로 알 수 있다. 하나의 교육을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관련 자료의 수집, 분석, 현실 사례 발굴과 분석, 어느 땐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한 요구조사까지, 제대로 된 교육의 효과를 위해 많은 시간의 지적, 감정적, 신체적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생들과 어떻게 하면 같이 호흡하며 교육의 장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교육안을 만든다. 왜냐하면 인권의 관점에서 교육이란 일방적, 소위 저금식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교육의 장, 교육의 과정자체가 인권이 발현되면서 상호 인식전환, 인권의식의 상승, 인권지식의 확장, 인권 고양의 장이 되는, 즉 교육자와 피교육자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교육의 내용과 결과를 구성해내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5월 29일에 있은 총경(경찰서장)급 간부들이 보여준 성평등 교육과정에서의 ‘분탕질’에 대해 분노한다. 이는 기본 중에 기본인, 그리고 경찰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간/ 인권에 대한 예의 없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 외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오만함이다. 결코 시민이나 국민의 인권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식한 행위와 태도일 뿐이다. 이러한 태도, 교육자를 무시하고, 토론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커피를 마시며, 잡담이나 하고, 통계에 대해 시비를 걸며,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주장으로 교육자를 업신여기거나 항의하는 태도들은 분명히 혐오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혐오는 이들이 권력을 가진 자이자 권력을 가졌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혐오는 피권력자는 가질 수 없는 정동이다. 피권력자는 권력자의 혐오에 대해 분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경찰집단의 권력에 대한 오만함이자, 인권과 성에 대한 편견이다.



지난해 8월 경찰청에서 열린 성평등 감수성 교육 모습
사진 출처 - 경찰청


누군가 뒤에서 피곤한데 귀찮게 토론시키지 말고, 그냥 강의하고 일찍 끝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무시하고 토론 방법과 시간을 설명하고 조별 토론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조별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별 토론 시작을 알리는 순간, 15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웠다. 조별 토론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는 불평이 나왔고, ‘졸리다’, ‘, 커피나 마셔볼까라면서 우르르 자리를 이탈했다.”


이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50대 여자 박사인 강사와 그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성 평등이라는 주제 자체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강의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중단되었다.”


 곧 경찰 최고 간부가 될 이들에게는 자신이 교육의 대상, 그것도 성 평등이라는 주제의 피교육생이 된다는 것, 나아가 여성이 강사라는 것, 여성박사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자격지심 등은 평소 이들이 여성과 여성들의 경험에 대해 얼마나 혐오적인 태도를 가졌는가를 보여준다. 혐오는 인권과 같이 갈 수 없다. 정보경찰이 정권을 위해 한 짓들이나 성 평등 교육에서 이들이 보여준 만행들은 경찰집단의 인권의식의 천박함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민갑룡 청장은 권고를 했다고 하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 경찰대상의 성 평등 교육의 실태조사, 내실 있는 교육을 위한 지침마련, 나아가 지난 29일 교육에 참석한 이들의 진급제외 혹은 징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및 자치경찰제 도입이라는 개혁을 경찰집단이 원한다면 그에 맞는 행태들을 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 이들의 모습에서 개혁이후의 경찰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거나, 여과 없이 드러난 이들의 행태에서 반 인권적, 반성평등적인 태도가 이들 집단의 문화, 관습, 관행이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대한 기대는 경찰집단 스스로의 이유와 원인으로 인해 점점 더 소원해질 것이다. 그 결과는 그들이 감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