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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타결도 침묵하게 하는 동계올림픽의 힘 (유정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3 11:39
조회
226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한-미 FTA 타결도 침묵하게 하는 동계올림픽의 힘
- 민주주의 위협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지난 3월 27일,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대구가 유치했다는 ‘쾌거’가 보도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치루는 7번째의 ‘자랑스런 나라’가 된다고 한다.

생산유발효과가 5,840억 원이며 고용창출 효과가 6,800명 이상이고 대구의 국제도시화가 기대된다며 대구지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언론이 들썩였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강원지역의 여론은 혹시 동계올림픽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사뭇 부러운 기색이다. 일부에서는 대구의 물량공세에 아프리카지역 IOC위원들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동계올림픽 유치에 긍정적일 것이라며 안심시킨다. 김명곤 문광부 장관은 정부차원에서 국제 스포츠 행사 개최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다.

강원도보다 인구와 경제규모 사정이 훨씬 나은 대구의 성적에 이 정도 반응이니 변방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온 나라가 경악 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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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유치로 대구의 국제도시화가
기대된다며 대구지역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의 언론이 들썩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가 단체장 역량 검증 기준?

초등학교 때 박정희 대통령의 성을 딴 ‘박스컵’이라는 국제축구대회가 있었다. 어느 해인가 우리나라 축구팀이 킹스컵 대회에서 말레이시아에 진 뒤 같은 팀을 박스컵에 불러들여 대파한 일이 있었다. 강원도 궁벽한 시골에서도 그 경기는 대단한 화제였고 우리 또래 까까머리 꼬마들을 가을걷이가 끝난 논바닥에서 겨우내 축구를 하게 할 만큼 인기 있는 시합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던 80년대 초반, 강원도 연고팀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는데 너무 약한 팀이었고 전두환의 계산이 빤히 보이기도 해서 일부러 무관심해 하기도 했다. 88올림픽 때는 ‘상계동 올림픽’ 비디오를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했지만 온 나라가 올림픽에 들떠있는 모습을 보며 심하게 우울해 하기도 했다.

이때만 해도 스포츠를 정당성 없는 권력이 국민을 동원하고 위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긴 했지만 상업성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2002년, 2006년 월드컵부터는 대중의 자발적인 응원문화를 자본이 점령하고 애국주의 캠페인으로 치장하는 현상이 두드러진 듯하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자치단체장들의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를 위한 각별한 행동은 전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치열하다. 이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뤘고,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인천광역시도 같은 해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처럼 광역자치단체장들 뿐 아니라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추진하는 크고 작은 국제 스포츠행사는 파악이 어려울 정도다.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고 치루는 것이 국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단체장능력의 시험대라는 약간 이상한 자의식에 너도 나도 ‘올인’하고 있는데 이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참 부족하다.

 
민주주의 위협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우리 사회가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추진에 이렇게 관대 한 것은 ‘성장콤플렉스’에 대한 심리적 의존이 크거나 아니면 우리 모두 ‘대발이’가 될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있기 때문인 듯하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경제적 파급효과만도 총생산액 유발효과는 11조 5,166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5조 1,366억 원, 고용증대 효과는 14만 3,976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은 없다.

일단 지방자치단체장이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전에 뛰어들면 지역에서 다른 견해 또는 비판적인 의견이 드러나거나 자리 잡을 여지는 거의 없다. 지역 언론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수라며 중앙정부의 소극적 지지를 질타하거나 시민사회의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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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실사단이 지난 2월 강원 평창을
방문하자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대체로 지식인들은 유치타당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앞장서고 유치위원회는 갖가지 이벤트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며 지역기업들은 기부에 나서는 등 지역시민사회 전체는 하나의 동원체제가 된다. 지난 2월 IOC 동계올림픽 실사단이 경기장 시설 등을 평가하기위해 방문했을 때 강원도 사회가 ‘동계올림픽 실사 총동원체제’로 전환되었다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강원도를 방문하는 중앙정치인들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지하고 있으니 스포츠 행사가 이념과 사상을 ‘통합’한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듯하다.

국제 스포츠 행사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처럼 무엇보다 ‘민주주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한-미 FTA 타결도 침묵하게 하는 동계올림픽의 힘

강원도가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 한 뒤 지적된 여러 문제점 가운데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유치위원회의 자금 조성과 사용처였다. 강원도의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도비집행내역 이외에 민간에서 기부한 기금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는 강원도의 주장에 유야무야 넘어가 버렸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대구도 세계육상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임원의 숙박비 등을 대회 시작 3개월 전부터 면제해주는 조건을 제시하며 IOC 위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미 FTA가 대통령의 해괴한 용단(?)에 의해 체결되면 강원도 농민 12,000명 가량이 실업자가 되고 농업생산액은 1,480억이 줄어든다고 한다. 강원도가 애쓰고 있는 민·외자 유치사업도 어려워지고 강원도민이 대거 수도권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강원도에는 5조의 부가가치가 발생하고 14만 여명의 고용이 창출된다는 동계올림픽이 있어서인가. 강원도는 한-미 FTA 타결에도 침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