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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사는 ‘삶의 질 일등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정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6:13
조회
289

유정배/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춘천에도 ‘명동’이 있다.
서울사람들은 춘천에 명동이 있다는 말을 듣고 대개는 피식 웃어버리지만 드라마 ‘겨울연가’덕에 유명해진 그곳은 춘천사람들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 곳이다.
소설가 한수산이 78년에 발표한 ‘안개시정거리’라는 작품에도 춘천명동이 언급되어 있듯이 그곳은 춘천의 청춘남녀들에게 사랑과 우정의 성장통을 앓게 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명동어귀에서 한 시간 정도만 서성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가끔 풋사랑에 가슴 졸이던 그리운 얼굴들과도 조우할 수 있었다.
명동은 춘천에서 제일 큰 ‘중앙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을 끼고 있어 말 그대로 그곳은 춘천의 ‘중앙’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동이 주변이 된듯하다.
중앙시장은 장사치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어 졌고 명동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은 오가는 인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대형 할인마트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은 존립이 어려워졌고 노쇠한 상인들만 발길 끊긴 시장통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또 도심지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외지자본이 재래시장지역을 재개발하면서 그나마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영세소상인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강원도와 춘천시가 수십억을 들여 중앙시장 외관을 알록달록하게 꾸미는 등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애를 쓰지만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는 소비자들을 막기에는 역 부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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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내 최고의 번화가인 명동 거리의 모습.
사진 출처 - 세계일보


 

강원도는 1999년부터 전국 최초로 해 마다 농어촌 주민들 가운데 자율적인 마을발전 역량과 의지가 높은 시범마을을 지정하여 사업비 5억원을 인센티브로 지원 하는 ‘새 농어촌건설운동’이라는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내발적 발전론’에 근거한 이 사업은 주민이 마을 혁신의 주체가 되어 지역내부의 산업·기술·문화적 토대에 기반해 지역혁신을 꾀하는 자발적인 노력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신 활력사업’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등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행과정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업은 중국에도 수출되어 개혁개방 이후 발생한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농촌지역을 진흥하기위한 정책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만약 한미 FTA가 정부 뜻 데로 체결된다면 춘천 명동과 중앙시장은 어떻게 될까?
강원도가 자랑하는 ‘새 농어촌 건설운동’은 또 어떻게 될까?
춘천시가 중앙시장 현대화 사업을 위해 예산을 세워 집행한다면 월마트가 춘천시를 상대로 직접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춘천시는 막대한 소송비용을 들이게 될 것이며 패소한다면 월마트의 손해를 보상해주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아마 강원도가 자랑하는 ‘새 농어촌 건설운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덕분에 예상치 않은 예산절감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가뜩이나 공동화된 농촌지역에 한미 FTA가 밀려오면 ‘어메니티’를 살려 농촌을 일으킬 농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전에 내국인 대우 조항에 위배된다는 미국의 시비에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알아서 폐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 기준 강원도내 총생산은 전국의 2.7%를 차지한다.
반면 전국의 수출액 가운데 강원도의 비중은 0.3%다.
강원도는 철저히 내수에 의존한 경제라는 이야기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제조업이나 지식기반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은 수도권은 통상확대의 이익을 입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강원도 같이 제조업이 없으며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 같은 영세서비스업이나 농업이 산업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역은 사실 어떤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일이다.

강원도 기업 중 그나마 산업적 의미가 있고 상대적 경쟁력이 있는 건설업도 지역의무 공동도급제 폐지 등 때문에 더 이상 지방공기업이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에 우선권을 주장하기 어렵게 되는 등 도산 하는 업체가 늘어 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강원도 건설업자들이 투정 부릴 지방 공기업자체가 없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한미 FTA가 체결되면 수도권 규제완화가 지금보다 더 급격히 진행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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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춘천 명동의 대형 주상복합단지 시공업체가 죽림동 중앙시장 내 도로
포장공사 등을 이유로 중장비와 철거용역 직원을 동원, 점포 일부를 강제 철거하고
나서자 이에 놀란 상인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세계일보


 

지난 11월 23일 경기발전연구원이 주관한 ‘한미 FTA에 대한 경기도의 대응방향’이라는 토론회에서 참석자 대부분은 FTA의 기본목표에 맞게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미 수도권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제도와 정책이 무력화 되고 있고 외국자본이 투자하기 좋은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어 FTA 체결 뒤 투자 효과는 수도권에 집중 될 것이다. 또 외국자본의 성장에 대해 국내 대자본이 내국인 역차별을 주장하며 수도권 규제철폐를 요구 하면 바야흐로 수도권의 덩치는 누구도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비대 해질 게 분명하다.

한미 FTA는 국가의 운명과 미래가 걸린 중대한 일이라서 정부의 눈에는 국민경제기여도가 3%도 되지 않고 150만도 채 되지 않는 인구를 가진 강원도민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 세계에 도전하고 시장에서 승부를 거는 글로벌 인간형으로 바뀌어야 생존가능하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지 못한 탓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새해에 강원도를 ‘경제선진도’와 ‘삶의 질 일등도’로 만들기 위해 기업을 100개 이상유치하고, 17개 재래시장에 186억원의 혁신사업비를 지원하며 농업진흥을 위해 도지사 품질인증제 100개 품목을 새로 지정 하는 등의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만약 정부의 질주에 의해 올 3월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도대체 우리 지사님은 강원도를 ‘삶의 질 일등도’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춘천명동과 중앙시장을 잃어버린 춘천사람들은 어디에서 삶의 질의 뿌리가 되는 고향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원래부터 가진 것 없는 강원도는 대체 한미 FTA가 보여주는 휘황한 미래, 어디쯤에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