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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한다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9 10:17
조회
203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한다
- 이랜드 사태로 본 ‘비정규직보호법’

 

교복자율화가 시행된 1980년대에 이랜드라는 상표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동복과 숙녀복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입을 것이 없는 사춘기 소녀들이 사촌언니와 막내이모 때로는 엄마의 처녀시절 옷까지 걸쳐보던 시절이었던지라, 청소년을 위해 만들어진 산뜻한 디자인과 색깔의 이랜드 옷은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게다가 품질에 비해 값도 저렴해서 패션에 신경 좀 쓴다는 친구들은 이랜드 옷을 사기 위해 1시간이나 걸리는 이대 앞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랜드와의 인연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나는뉴코아 백화점과 킴스클럽에 장을 보러 다녔으며, 아이들 옷을 사러 계절에 한번은 2001아울렛에 갔다.

얼마 전 2001아울렛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2001아울렛은 일요일에 매장을 닫기때문에 불편하다고 투덜거리자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판매원이 웃으면서 "아이구. 우리는 월급 적고힘들어도 일요일 날 쉬는것 하나 보고 여기 다녀요. 안 그러면 일요일 날 아이들도 못 챙기니까."라고 대답했다. 화장을 했어도 얼굴에 기미가 가득한 그 여성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는 이랜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랜드 비정규직 직원들이 매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제의 발단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비정규보호법(진짜 명칭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이다.

7월 1일부터 시행된 위 법률은 비정규직을 2년 이상고용하는 경우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는데, 위 규정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가 편법을 사용해도 정부는 아무런 제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외주용역화하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이랜드 그룹도 비정규직인 계산원에 대한 대량계약 해지와 업무의 외주용역화를 추진함으로써 현재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비정규직을 진정으로 "보호"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러한 규정을 어긴 사업주를 처벌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워낙 비정규직법안 자체가 타협의 산물이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내용이 되어버려 결국 가장힘없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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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원동 이랜드 뉴코아 지하매장 점거농성 중인 이랜드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듣자 하니 200여명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뉴코아 강남점에 회사측이 쇠막대와 쇠사슬을 동원해서 출입문을 용접해서 봉쇄하였다는 흉흉한 소식도 있고, 화장실 다녀올 겨를도 없이 6-8시간을 서서 일하는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모두 소화불량(위염), 근골격계 질환, 방광염을 앓고 있다는 마음 아픈 소식도 들린다. 농성장의 사진을 보면서 일요일에 아이들을 챙길 수 있어 이랜드에 다닌다던 기미 가득한 얼굴의 중년 여성노동자를 떠올린다. 방광염에 걸리고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에만 다닐 수 있으면, 일주일에 한번 일요일만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내쫒는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야만이다. 정부는 이랜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법률로서 단죄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진압하는 야만을 또 다시 저질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