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시험과 성적 (최응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9 10:13
조회
204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2007년 3월 힘차게 출발했던 한 학기도 시험채점과 성적평가를 끝으로 대부분의 대학이 긴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성적평가를 할 때마다 매년 달라지는 세태를 느끼게 된다. 필자가 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는 10․26과 12․12 등 정치적인 큰 소용돌이로 인하여 휴교를 일삼았다. 그 결과 수강과목의 대부분은 3분의 1정도도 채 마치지 않고, Report로 성적이 평가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독학을 통하여 학업을 이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절대평가니 상대평가니 하는 학교에서 정해 놓은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교수들의 성적평가도 지금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자유스러웠다.

1997년부터 피평가자의 입장에서 평가자의 입장이 되면서 이제 11년째 학생들의 시험을 채점하고 성적을 평가하고 있다. 아마도 성적평가와 관련하여 매년 달라지는 세태는 학교에서 정해 놓은 평가기준을 준수해야 하고, 사전에 학생들에게 일정기간 성적공시를 해야 하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에 근거해서 학생들의 성적을 강제로 배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다 보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도토리 키 재기처럼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출결상황, 시험성적, Report 성적, 발표성적 등을 다시 한 번 면밀하게 검토하고 성적의 우열을 가려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100점 만점에 1-2점 차이로 성적의 등급이 강제로 매겨지고, 그에 따라 학생들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이러한 성적평가는 곧바로 학생들로부터 강의평가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수강 학생이 적은 과목이거나 성적평가가 좋은 경우에는 강의평가가 상대적으로 좋게 나오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강의평가가 좋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것은 교수들의 교육업적과 직결되고 있다. 어찌 보면 교수와 학생 사이가 사제지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를 평가하는 평가자의 입장에 선 셈이다.

또 한 가지 평가자를 괴롭히는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성적을 평가하고, 이를 일정기간 공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말이 되면 늘 바쁘듯이 학기말이 되면 왜 그리도 바쁜지 시간에 쫓기며 시험채점과 성적평가를 해야 하는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년퇴임식장에서 그동안 교수생활을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 중의 하나가 “채점에 쫓길 때 백지답안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는 점에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면서 채점을 완료하고 성적을 평가하여 일정기간 공시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졸업을 위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4학년 학생으로 취업을 위해서 학점을 관리해야 한다는 등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시험채점이나 성적평가에 오류가 있을 때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어야 할 성적공시제도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처럼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이면에는 취업 걱정과 장학금 수혜가 가장 크게 자리 잡는 것 또한 평가자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만큼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고, 경제난으로 등록금 마련이 수월치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070627web01.jpg


그림 출처 - 오마이뉴스


 

성적정정을 요구하는 학생들 중에는 정직하지 못한 학생도 간혹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교수님만 성적을 올려 주시면 조기졸업이 가능하다거나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다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교수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감동을 하게 되고 성적을 올려 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구 절절한 요구가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공통적으로 써먹는 수법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요구에 교수가 넘어가면 좋고, 설사 요구대로 되지 않더라도 처음 성적보다 내려가는 일은 없으니 학생에게는 전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점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예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고 나면 그러한 학생을 탓하기에 앞서 내 자신 학생들에게 전공지식 주입에만 신경을 쓰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교육하고 지도하지 못한 자괴감에 괴로울 때가 많다.

이제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학생들이여! 시험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더 크고 넓은 세상 속에서 본인을 드높이고, 우리나라를 세계 일류국가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기원한다. 지금보다 어른스럽고 꿈이 가득한 여러분을 다음 학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번 성적평가에 만족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