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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의 세계, 현실은 다르다 (최응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3 11:44
조회
320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며칠 전 ‘우아한 세계’란 영화를 관람하였다. 평소 영화 관람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영화 보기가 쉽지는 않다. 영화 관람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주말에 방송되는 ‘영화특급’ 이나 ‘명화극장’ 등을 보며 영화보기의 아쉬움을 달래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예전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방송3사의 주말영화가 한결같이 심야에 시작되기 때문에 밀려오는 잠으로 한 편의 영화를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일요일에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SBS TV 박스 오피스’를 즐겨 보며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개봉되는 영화 중에 범죄라든가 경찰 분야를 다룬 영화가 있을 경우 관심을 갖게 되고, 가끔은 직접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학과 사무실로 영화 무료시사회 초청권이 들어와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이번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대학원 수업이 계기가 되었다.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는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조폭의 이야기’를 통해 그렸다는 홍보에 영화를 통한 전공 공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보게 되었다. 영화 관람 후 수업의 연장선상에서 호프를 마시면서 서로의 ‘영화평’을 듣게 되었다. 다양하게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단연 주제가 되었던 것은 ‘조폭의 세계’와 ‘왜 아버지는 딸에게 약한가’였다. 딸이 없이 아들 둘만 있는 필자로서는 후자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조폭의 세계’만큼은 몇 가지 거들고 싶었다.

‘들개파 넘버 3’으로 등장하는 강인구(송강호)는 건축공사장이나 유흥업소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이권을 챙기는 전통적인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렇게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집에서는 부인 허미령(박지영)과 딸 김소은(강희순)에게는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감독의 창작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몇 가지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우선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건 아니잖아’를 연발하는 장면들이 있었다. 들개파의 두목인 노회장(최일화)과 노상무(윤제문)를 죽이고 교도소에 구금되었다가 정당방위로 풀려나는 장면이라든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이국적인 집을 사서 이사 간 후 집들이하는 장면들이 그것이다.

평소 조직폭력은 사회악으로 우리 사회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편의점에서 다른 조직원에 의해서 강인구가 살해되거나, 아니면 자기를 죽이려는 노회장과 노상무를 어쩔 수 없이 죽였더라도 그동안의 전과사실과 조직폭력 활동에 비추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평생을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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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영화 '우아한세계'


 

이런 생각을 한 후 인터넷으로 ‘우아한 세계’의 영화평을 보니 이 영화는 ‘연애의 목적’에 이은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영화로서 대한민국 40대 가장들의 피곤한 삶을 ‘누아르’라는 장르로 요리한 영화란다. 어두운 범죄세계를 다룬 누아르의 관습상 주인공이 죽는 일이 많은 데 이 영화는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식상한 누아르를 교묘히 비틀고 있다는 평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아들과 딸의 유학을 위해 부인까지 캐나다로 떠난 후 자장면을 먹으며 강인구가 가족들의 캐다나 생활을 촬영한 VTR을 시청하며 기러기 아빠의 한심하고 처량한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도 “조직폭력의 생활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그리고 영어가 아무리 중요한들 가족관계를 파괴할 만큼 의미가 있는가 되돌아보게 했다. 하기야 2007년 4월 14일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호텔에서 치러진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의 아들 결혼식장에 1천 100여명에 달하는 하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보도를 접하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일반시민들에게는 씁쓸하고 석연치 않다.

감독이 이 영화를 송강호가 나오는 재미있는 코미디, 액션영화로 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감독의 전유물인 것은 사실이다. 타르드(G. Tarde)의 모방법칙이나 매스미디어의 모방효과로 인하여 조직폭력의 세계가 잘못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영화 내용 중 일부라도 권선징악적인 면도 가미되었으면 하는 것도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