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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잣대를 가진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이유정 인하대 법대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04
조회
236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법은 최소한의 정의라는 말이 있다. 법이 정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정의를 보장해 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법에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정의를 보장해 주기는커녕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훼손하고, 권력에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법률도 많다. 나치시대의 법률이 그러했고, 유신시대의 법률이 그러했다. 그 이외에도 우리는 법률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정의롭고 옳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전제는 객관성과 형평성이다. 적어도 법은 법전에 적혀있고(객관성),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잣대(형평성)이기 때문에, 법치주의라는 말은 신뢰를 준다.

지난 8월 25일 한국 법률가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법치를 국정운영의 3대 중심축의 하나로 삼아 흔들림 없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법치를 확립코자 한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좋은 말이다. 제대로 법치주의를 하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현 정부의 법치주의가 형평성과 객관성이라는 두 가지 전제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에 부동산 투기 등 각종 탈법을 저지른 인사들을 보란 듯이 청와대와 내각에 임명하더니, 공공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기관장들의 임기를 보장한 법률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일괄사표를 강요했다. 공영방송인 KBS의 사장을 쫒아내기 위해 국가기관을 총동원하더니 뚜렷한 비리가 드러나지 않자,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납부함으로써 KBS에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를 들어 해임을 강행했다. 그리고는 공영방송의 중립성 보장을 위해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사장 임명절차를 무시한 채 청와대 관계자, 방송통신위원장, KBS이사장이 모여서 후임사장 문제를 논의했다. 그 뿐인가. 경제를 살린다는 막연한 이유를 들어 판결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경제비리사범들을 대규모 사면했다. 현 정부가 얼마나 법을 무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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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법률가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반면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에 대하여는 가차 없이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쇠고기 졸속협상에 대한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촛불집회의 참가자들을, PD수첩의 오역을, 쇠고기 문제를 왜곡 보도한 언론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폭력, 명예훼손, 업무방해로 수사하고 구속한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색소 섞은 물대포를 발사하여 옷에 색소가 묻은 사람들을 무차별 연행하고 경찰에 연행된 여성들의 브래지어를 벗기는 것처럼 군사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일들도 버젓이 일어난다.

정부가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어기고 무시하면서, 국민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법의 이름을 빌린 폭력이고 만행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법치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은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 속에는 앞으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법의 이름으로 더욱 가혹하게 탄압하겠다는 저의가 묻어나와 섬뜩하기도 하다. 정부의 정책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사표시를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떼를 쓰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탄압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의견을 대화와 토론으로 조정하고 해결해 가는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대통령의 말처럼 “법치가 없으면 인권도 없고, 자유민주주의도 없다.” 맞는 말이다. 자기편과 상대편에게 서로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의 잣대가 아니라, 형평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법률가대회에서 한 약속을 과연 얼마나 잘 지키는지 두고 볼 일이다. 마침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ta)’는 라틴 격언까지 인용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