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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교육프로젝트의 허와 실 (송기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7:36
조회
245

송기춘/ 전북대 법학과 교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공교육프로젝트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막강한 권력이 현직 대통령의 그것을 능가하고 각종의 정책구상이 기정사실화되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당선자의 지지자들조차도 놀랄 정책들이 줄을 이을 듯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영어공교육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생활이 영어로 가능하도록 하고, 이를 위해 영어교사를 해외에 보내 연수시키고 영어전용교사를 충원할 계획이란다. 영어수업은 영어로 한단다. 필자와 같이 공부를 하면서도 영어를 주로 책을 읽는 데만 사용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은 갈구는 결코 작지 않으니 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인수위의 구상은 현실의 필요에 부응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어느 누가 영어를 잘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과연 이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충실한 영어교육은 필요하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외국과의 교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서적을 읽어야 하거나 외국회사 또는 기관과 교류를 하여야 하는 경우에 외국어에 대한 필요는 절실하다. 필자도 영어를 30여년 접하고 공부해왔지만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은 강하게 가지고 있다. 영어가 서툴러서 아쉬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은 외국에 유학을 한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영어를 과목으로 두고 가르치는 이상 좀 더 실용적으로 가르치고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을 혁신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수십 년 동안 영어를 배웠어도 영어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걸 보면 그 동안의 영어교육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좀 더 나은 방법과 내용으로 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 영어교육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유독 영어교육만 강조되는 이유는?

그러나 교육문제 가운데 왜 영어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의문이다. 교육 가운데 제일 큰 문제는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아닐까? 대학은 중등학교의 성적 기타 평가를 불신하고 학생과 학부모 역시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의지하고 있다. 이러한 공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구상은 없는가? 우리의 엄청난 교육열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대학 가면 별 쓸모없을 지식을 암기하는 데 그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여한다는 것이다. 진정 효과적이고 유용한 교육을 할 방안은 무엇인가?

전반적인 공교육 정상화 방안이 어려워서 영어교육만이라도 정상화시키겠다는 뜻이라고 하자. 그런다 해도 과연 모든 국민이 영어를 모두 잘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언어를 습득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의 대부분이 외국과의 관련이라고는 주로 여행밖에 없는 경우 과연 일상생활을 영어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공부를 하여야 할 필요는 있는 것일까? 학교교육에서 과목이 많고 수업시간도 많다 하여 과목과 교육시간을 줄이려고 한다면 공교육을 통해 교육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떻게 결정하는 게 합리적일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영어교육을 강화하면 다른 교육이 그만큼 양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중심의 질서가 영원할 것처럼

또한 외국어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해도 외국어 가운데 영어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현재 전 지구적 지배질서가 미국중심으로 되어 있고 이러한 질서가 오래 갈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일찍 달러의 약화와 함께 미국중심의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EU나 중국이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고 우리도 이들과 좀 더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중국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고 교류의 내용과 폭도 다양하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외국어 가운데 유독 영어 교육만 이렇게 강조되어야 할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언어는 수요가 결코 적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
영어교육의 현실

다른 문제는 영어교육의 현실이다. 영어를 사용하여 교육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그런 수업을 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대학에서도 영어로 수업하는 강의에서 강사가 영어표현에 어려움을 느껴 전달하는 내용이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학생 가운데는 외국생활을 오랫동안 한 경우도 많아 이들은 강사의 ‘어설픈’ 영어강의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영어교사를 외국에 보내 연수시키면 이들의 수업능력은 많이 향상될 것으로 생각된다. 매년 3000명을 보낸다니 예산이 뒷받침되면 영어교육능력은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정책방향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만큼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정책은 대통령선거중에 제시되지도 않았고 지금도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대통령 임기 5년 중에 큰 줄기를 만들겠지만 이러한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도 이 정책이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결코 없다. 정부가 밀어붙이면 당분간은 계획대로 하겠지만 분명히 영어강의를 할 정도로 역량이 강화될 때까지는 무늬만 영어전용강의를 하게 되어 심각한 비판에 봉착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시행착오나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여러 문제를 감수하고라도 가야 할 전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그러한 합의가 전혀 없다. 번번히 대학입시정책에서 겪는 시행착오처럼 매년 정책을 수정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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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기러기, 펭귄, 독수리 아빠는 왜 생기나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의 문제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인수위 위원장의 말처럼 외국유학의 문제가 영어공교육을 강화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자녀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고 혼자 생활하는 걸 감수하는 기러기, 펭귄 아빠들이 애들 영어 공부시키자는 걸 제일 중요한 목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 현실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외국생활에서 얻는 중요한 이익이기는 하지만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다. 필자도 연구년을 받아 지금 외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겨우 1달이 되었지만, 1달 만에 아이들이 나중에 한국에 안 돌아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 소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직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아이들이 이곳의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일지 궁금하다. 지금 외국의 교육제도를 칭찬하거나 한국의 교육제도가 잘못이라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공교육제도에서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외국에 가서 활기를 찾고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아 만족하는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걸 보면 많은 비용과 가족의 별리를 감수한 외국유학이 영어공부 때문만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단언컨대 지금의 교육제도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한다고 펭귄, 기러기 아빠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독수리 아빠는 말할 필요도 없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사교육이 없어질 것인가

더구나 우리의 상황은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지 않고는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이나 버젓한 직장을 얻기 어려운 사회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이 제아무리 정상화된다고 하여도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려면 남들보다 더 나은 점수를 얻지 않고는 안 되니 어찌 공교육에 만족할 것인가? 학교는 변별력을 얻기 위하여 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게 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사교육이 어찌 없어질 것인가? 영어만큼은 과외 없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지만 그럴수록 고급영어에 대한 필요가 커지는 법이니 이제 학원과외와 영어공부를 위한 해외연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데 경쟁이 치열하면 그 자원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자격 이외의 다른 고려요소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대학이 서열화된 우리 사회에서 영어 과외 받지 않고도 대학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은 허망한 얘기다. ‘3년의 고등학교 교육 충실하게 이수한 학생이면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쉬운 문제’로 수능을 출제해봐야 새로 출범한 정부의 정책처럼 대학입시 자율화를 하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 어느 대학이 그 점수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겠는가?
교육은 백년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

공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국가를 만들려고 꿈꾸고 있는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모든 국민이 국제적 활동을 하도록 하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영원할 것처럼 영어교육 일변도로 나가도 되는 것일까? 전 세계가 중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고 EU의 비중도 결코 만만치 않다. 우리는 왜 세계화를 내세우면 미국중심의 질서만 공고하리라고 보는 것일까? 한국사회의 지배집단이 영어를 통해 입신한 사람들이어서인가? 언어만 해도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전문가가 양성되어야 할 언어는 적지 않다. 영어의 비중을 높일수록 이들 언어에 대한 비중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와 더욱 교류가 활발해질 나라는 중국과 일본이다. 이 사람들과도 영어로 얘기할 것인가?
내용이 충실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

언어교육은 교육 가운데 하드웨어의 측면이라고 생각된다. 더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닐까? 올바른 삶을 누리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현대세계에서의 올바른 인간의 삶과 필요한 지식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영어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이것을 소홀히 하자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면서 영어의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른 부분의 교육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질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어설픈 영어교육보다 충실한 교육내용이 우선이다. 언어는 사고를 담는 그릇이고 어설픈 영어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되므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교육하겠다는 이른바 영어몰입교육이 철회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애꿎은 학생들이 실험대상이 되지 않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