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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야? (이광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7:18
조회
214

이광조/ CBS PD



현직 국세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사상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변하던 사람이 구속된 뒤에는 ‘혐의사실을 인정하면 형량을 줄여줄 수 있냐’고 협상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짜증 지대로다. 그런데 이 분은 취임 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고 한다. 가증스럽다.

전군표 국세청장의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어른들에게서 듣던 얘기가 떠올랐다. 세무서 다니는 사람들은 장판 바닥에 지폐를 깔고 베개에 지폐를 넣고 잔다고 하더라, 결재 서류를 올릴 때 돈을 끼우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고 하더라...

세무공무원들을 싸잡아 비난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군표 국세청장이 취임첫날부터 집무실에서 공공연히 상납을 받았다면 그가 특별하게 돈을 밝히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짐작이 자연스레 생긴다. 대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공무원이랑 화투 쳐서 돈 잃어주는 게 내 일’이라고 푸념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기도 했다.

열불 나는 차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불법승계, 정관계 로비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졌던 문제라 새로울 건 없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파장이 큰 건 한 때 삼성그룹의 고위직에 몸담았던 사람이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 이사를 지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대한민국 최고 기업’,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행태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기업범죄를 다스려야할 검찰을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뇌물을 먹이며 관리했고 정치권은 물론 국세청을 포함한 국가기관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왔다고 한다. ‘떡값’이라는 훈훈한 표현 덕분이었을까. 자신이 출세했다고 생각하는 공직자 중에는 자신이 삼성의 관리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사람도 있다고 하고 몇몇 모자란 사람은 ‘나한테는 왜 안주냐’고 볼 멘 소리를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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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삼성 본관 앞 도보에서 열린 '삼성그룹 불법비자금 규탄 및 처벌촉구'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이건희 회장의 탈을 쓰고 나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조직을 위해 국가조직을 관리대상으로 삼았던 삼성. 이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보여준 관리방식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차별화된 관리 기준에 있는 듯 하다. 검사라고 다 똑 같은 검사냐. 학벌 좋고 성적 좋고 보직경로가 좋은 사람이 관리대상이란다. 뭐 이 정도야 어떻게 보면 상식에 속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를 감탄하게 만든 건 국세청 등 돈과 직결된 국가기관에 들어가는 뇌물의 규모가 검찰보다 훨씬 크다는 김 변호사의 증언이다. 어차피 법의 심판을 받을 일은 별로 없으니 세금 덜 내고 돈을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국세청이 검찰보다 한 단계 높은 로비 대상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하다. 생각이 이 쯤 미치고 보면 검찰, 법원, 정치권, 국세청, 재경부, 건교부, 언론사 등 삼성이 관리대상으로 삼은 기관들의 순위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검찰수사에서 이런 궁금증도 해결되려나?

로비 대상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도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현금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와인을 줘라. 여기에 등장하는 와인은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칠레 산 와인은 아닐 테고 아는 사람만 아는 고급 와인일 게다. 이 밖에 고급 골프채, 호텔 숙박권 등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만드는 맞춤형 뇌물을 공급해왔다는 점에서 투철한 관리정신이 엿보인다.

이건희 회장이 이런 세세한 대목까지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도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업계 최고 조직의 1인자, 조직 안에서뿐만 아니라 조직 밖에서도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평가되는 회장님이 힘 꽤나 쓴다는 정관계의 유력인사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챙겼다는 얘기 아닌가. 이 대목에서 영화 ‘대부’의 ‘돈 꼴레오네’를 떠올린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이게 나라야?’

국세청장의 구속과 삼성 비자금 조성, 로비 의혹을 보면서 입버릇처럼 한탄이 터져 나온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이 연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 시간에 삼성그룹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다 명예훼손죄로 구속된 한 노동자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있다.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김성환 씨.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를 양심수로 선정했다. 한국에서 노동자가 양심수로 선정된 건 김성환 씨가 처음이란다.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는 번번이 법의 심판을 모면하고 삼성에서 노조를 설립하려던 김성환 위원장은 감옥에 있는 현실, 이것이 삼성의 정관계 로비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삼성 휴대폰을 보면 괜히 반갑고 첼시 선수들이 삼성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고객에 대한 기업의 예의가 아니다. 삼성의 관리대상이었던 자랑스러운 공직자들이여,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