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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만을 강조하는 대학 교육, 삶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가져야...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6:47
조회
215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요즘 대학가에서는 “인권” “윤리” “정치”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는 별로 인기가 없고, 그 대신 “문화” “성” “건강”과 같은 이름이 붙은 강의는 인기가 높아서 수강신청이 몰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과목을 수강하겠다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삶의 근본적인 문제, 가치, 공동체 등에 관한 문제는 외면한 채 “실용적이고, 재미있고, 돈 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이번 학기에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으로 맡은 과목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교양과목이었다. 제목이 그럴 듯해서 수강인원이 꽤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책도 몇 권 새로 구입하고, 강의계획표도 만드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수강신청변경기간이 끝난 후 행정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강인원이 적어서 폐강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최고 인기강좌 중의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하기야 요즘 대학생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역사책에서 접하고, 87년 민주화운동 역시 유아기에 겪은 세대이니 민주주의와 인권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야말로 대학가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클레멘트 코스라고 불리는 빈곤층과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통상 국가는 사회복지 정책으로 “교육”이 아닌 “훈련”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적능력이 부족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등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반면 인문학 교육은 삶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찰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어 가난한 사람들도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라는 것이 가난 그 자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얼 쇼리스의 주장은 한계가 있지만, 삶과 사람에 대한 성찰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 민주주의 사회에 온전한 시민으로 참여할 수 없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참으로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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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세계일보



인문학 교육은 어떠한 지식을 얼마나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의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기능과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요즘의 대학 교육은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가를 키워낸다는 미명하에 실용적인 “훈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변화는 저임금을 주고 부려먹을 수 있는 가난한 기술자를 원하는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는 현실을 보면 결코 근거 없는 억측이 아닌 것 같다.

얼 쇼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필요의 지배를 받게 되면 정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간도 열정도 사라지게 되며, 그 결과 힘 있는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어진다.” 정치적인 삶이란 인간으로서의 삶과 가치,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공동체에 대해 성찰하고 실천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인권연대가 꾸준히 하고 있는 일반시민, 재소자, 노숙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사람의 가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삶에 대한 열정과 희망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