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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중요한 사회 - 박사학위에 대한 나의 고백② (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19 10:53
조회
298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1. 지난 번 ‘수요산책’에서 신정아씨 학위 위조 사건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는 글을 쓴 바 있다.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씨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일부 나오면서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까지 비화되고 있지만, 어떻든 이번 일이 박사학위, 가능하다면 미국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을수록 무언가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학문적 역량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분위기야 문제될 일이 전혀 아니지만, 그것이 지나쳐 학위, 학교 또는 학위 수여국 자체가 학문적 능력과 단순 동일시되는 현상은 경계하고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니 특정 대학 학위를 위조하고도 버젓이 활보하거나, 그렇게 행세하도록 조장하기까지 하는 일부 사회적 분위기는 타파되어야 하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번에 적은 대로 과거에는 중국, 한 때는 일본, 그리고 이제는 미국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권력에 가깝게 다가설 가능성이 커지는 현실은 우리에게 체질화되다시피 한 사대주의적 구습이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현상이니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기회에 일부라도 극복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인 것도 분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앞에서 무엇보다 내 자신은 그러한 저급 문화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먼저 묻게 된다. 나부터 그렇지 않고서 어찌 사회가 바뀌기를 바라겠는가? 이번에는 박사 학위에 얽힌 나의 얘기를 써보련다.

2. 나는 화학과 재학 중 인생 고민을 하다가 대학원을 종교학과로 진학했고, 학문에 대한 흥미와 순수한 열망 속에서 종교학 및 신학으로 두 번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뒤에는 나름대로 인생관도 뚜렷해지고, 학문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났다. 특히 종교 공부는 매력 있는 일이었고, 박사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학문도 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신감만으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현실적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89년 종교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동료 및 선후배들과 ‘종교문화연구원’이라는 연구소를 창립해 연구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면서의 일이다.

연구소 활동은 충분히 즐거웠지만, 그런 즐거움과 자신감은 정말 나만의 것이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나름대로는 학문적 자신감에 넘쳤지만, 남들도 나를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학문, 특히 종교학과 신학의 핵심은 연구자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에 있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런 순수함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색이 연구소의 연구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 보니, 사회는 나의 연구가 정말 신뢰할만한지 객관적인 근거가 있느냐며 물었다. 그러니까 박사 정도는 있어야 네 연구를 신뢰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 네가 하는 연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자격증이 바로 ‘박사학위’였던 것이다. 혼자 도를 닦는 것이 아닌 마당에 나름대로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것이 현실이었고, 나는 그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야만 했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박사학위는 내 인생 첫 번째의 ‘타협’이었다. 평상시 신념에 따르면 학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위가 내 앞길을 넓게 열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타협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학자에 대한 사회적 눈높이 내지 흐름에 나도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물론 공부 자체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자격증도 필요했던 것이다. 신정아씨가 온갖 학위를 편법으로 취득하거나 위조한 것도 학위가 있으면 자신의 앞길이 좀 더 탄탄하리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는 점에서는 나와 전적으로 다르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3. 석사 과정 중 나는 적어도 외국, 특히 미국에서는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서던 그런 학생은 아니었지만, 광주항쟁 이후 ‘반미’적 정서를 갖게 되었던 학생 시절 한국에서 쓸 자격증을 취득하러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그 때 내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반일한다면서도 일본 유학 한 뒤 출세 길로 들어선 상당수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종교학과 신학은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이니, 어디서든 제 하기 나름 아니겠느냐 믿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나중에 여행이나 다녀야 할 곳이라는 마음이 그 때는 강했다. 그렇게 해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박사 과정을 끝내고 보니 이른바 국내박사가 미국박사에 비해 받는 푸대접은 생각보다 심했다. 우리 사회에 미국에 대한 사대적 성향은 과거 중국 종속적이던 시절에 비해 커지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박사가 돌아오자마자 받는 대우와 비슷한 대우를 국내박사가 받으려면 학위 취득 후 10년 이상 노력해 상당한 연구실적을 쌓으면 될까 말까 하는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박사학위 취득 후 학회에서 논문 발표라도 할라치면, 종종 듣던 말이 ‘언제 귀국했느냐’는 것이었다. 종교학이나 특히 신학계에서 학자라는 명함이라도 내밀려면 미국이나 독일 정도에서는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팽배했다. 아닌 게 아니라 97년 한 기독교 관련 학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국내에서 박사를 마친 이는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는 사실을 문득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언제 귀국했느냐는 물음은 좀 불쾌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신학계에서 결코 어색한 물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학에도 ‘원조’가 있으며, 그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나 독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나는 이들이 저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국에서의 학문을 열등한 것으로 매도하고, 진리의 기준을 늘 자기 밖에서만 찾다가 결국 자기 자신도 잃어버리고 말게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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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박람회 모습
사진 출처 - 경향신문


 

4. 이러한 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몇 가지 소박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 때 제대로 읽지도 않은 외국어 책을 의도적으로 각주나 참고문헌으로 인용하면서 내가 외국 학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 자랑하려는 유치한 분위기에 편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몇 가지 단순하나마 나만의 규칙을 갖게 되었다. 첫째, 논문이나 책을 쓴 사람의 학위를 참고는 하되 내용을 읽거나 보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둘째, 연구자의 학위취득 국가나 학교에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셋째, 우리 말 책을 읽고는 마치 영어나 독일어로 읽은 것인 냥 논문 각주에 원서 참고문헌을 줄줄이 달아놓는 유치한 일은 하지 않는다. 넷째, 외국의 흐름과 현황을 익히기는 하되, 그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당시 결심했던 내용들은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요지인즉, 형식보다는 내용, 술수보다는 순수를 지키는 것이 결국 학문의 정도임을 나름대로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5. 적고 보니 다소 우습지만 솔직한 고백이다. 때로는 이러한 단순한 규칙마저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마음은 늘 간직하고자 한다. 학문의 기준은 오로지 내실과 내면에 있는 것이지 외형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데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에야 실력을 보고 평가하지, 권력을 보고 평가하는 저급한 사례는 줄어들 것이다. 좀 더 전문성을 인정받으려 박사학위라는 ‘자격증’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니 박사학위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신정아씨나 나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정아씨는 왜 학위 위조 내지 매수의 길을 갔을까? 만일 그가 학위 조작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았더라면, 그의 최소한의 실력마저 묻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