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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경제 만들기 위한 지역시민운동의 과제... (유정배)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19
조회
348

유정배/ 참여와 자치를 위한 춘천시민연대 사무국장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서오지리는 38선 이북에 있다.
도청 소재지인 춘천과 가까운 곳이지만 춘천호가 마을을 감싸고 있어 오지가 돼버린 곳이다. 서오지리에는 ‘건넌들’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수몰 전에는 논농사를 많이 지어 ‘건넌들’이라고 한단다. 댐이 생긴 뒤 논은 물에 잠겨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나게 되었고 남은 몇 가구는 과수농사를 짓거나 낚시꾼들에게 잡동사니를 팔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이 마을주민들이 요즘 수생식물인 연(蓮)을 가지고 호수를 새롭게 가꾸어 가며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주민들은 호수를 연꽃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생계수단의 제공자인 낚시꾼의 출입을 금지하였고 연근, 연차, 연주 등 부가생산물을 만들어내며 마을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직은 연꽃단지가 조성단계여서 일반에게 개방하지는 않고 있지만 호수주변 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테마들을 개발하여 마을의 잠재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주민들끼리 민주적인 토론을 거쳐 진행하고 있으며 ‘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해서 마을경영을 위한 협동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은 대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등 앞 다투어 민생을 해결 할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민·외자를 유치하고 ‘기업하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주도형 경제 발전 전략만으로 지속가능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가 가능한지 의문이 생기곤 한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원인이 박정희식 경제를 혁신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지만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 정책 진행과정을 보아도 시민사회에서 주체가 형성되지 않은 채 위에서 내려오는 경제정책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강원도 지역혁신사업의 성과를 보면 주민주체와 지방자치단체, 전문가의 네트워크가 좋은 지역은 나름의 성과가 있지만 주민주체형성 과정을 생략하고 구색 갖추기로 진행한 곳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진행하는 기업유치 성적표를 보면 기업유치가 지역주민의 삶과 얼마나 동 떨어져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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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리 연꽃단지 '세미원'에 핀 수련의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강원도는 2000년부터 수도권에서 모두 377개의 기업을 유치해서 올해 건교부로부터 기업유치 실적이 가장 좋은 자치단체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초라하다. 유치한 기업 중 48개 기업은 이미 강원지역에서 영업 중인 기업인 것으로 드러나 실제 수도권에서 이전해온 기업은 324개 사였다. 그 가운데 101개 기업은 휴·폐업을 했고 82개사는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어 실제 운영 중인 기업은 141개 이다. 그나마 50인 이하 업체가 118개이며 그 중 10인 이하 업체가 46개사이다.

경제력이 수도권에 초집중 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변방’이라고 하는 강원도에 기업유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화려하게 제시한 수치 속에 감춰진 진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이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외부요인에만 의존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잘 보여 준다 하겠다.

오래전부터 사회운동은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대안경제’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면서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굳건한 시민사회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역시민운동에게 지속가능한 경제 만들기는 더 절실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으며 실천적인 방안도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그렇지만 더러는 사회운동의 비판적 기능에 익숙한 탓에 그런 시도를 다소 무모하게 여기기도 하고 궤도이탈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이 몰락해 가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분산’이라는 이름으로 이익배분정치가 작동하여 토호를 살찌우며 ‘자치’를 말살해 가는 현실은 지역시민운동이 대안경제 창출에 뛰어들 것을 요청 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의 위기를 시민들이 모여 해결해가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사회운동의 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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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한림대 고령사회교육센터 1층 국제회의실에서 춘천지역고용포럼(공동대표 안봉진.박준식)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시민의 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시민사회 주도형의 산업발전을 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얼마 전 춘천의 활동가들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그들은 지역의 시민사회가 나서서 춘천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고용 및 인적자원의 개발을 위해 지역 내부의 잠재적인 자원을 활성화 시키고 네트워크화 해서 춘천의 대안적인 산업전략을 합의하고 실행 기구를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춘천지역고용포럼‘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역동적이고 활달한 시민사회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 경제적 성취도 크다는 경험이 아직 드물지만 이들의 실험은 사회운동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지역을 살기 좋은 삶터로 변화시킬 것이다. 활성화된 시민사회와 협동하지 않는 경제정책은 그들만의 잔치가 되거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정책이나 대운하 건설이 일시적으로 고용을 창출할지는 모르지만 양극화로 고속 질주하는 사회를 멈추지는 못한다.

농사일 빼곤 해본일 없는 서오지리 주민들이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 삶의 질을 높여가는 가듯이 ‘자치’와 ‘협동’에 기반한 시민들의 경제 살리기가 세계화와 양극화로 갈갈이 찢겨진 삶을 치유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