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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다 (이유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9 15:17
조회
972

이유정/ 변호사, 법무법인 자하연



1. 지난 주 어느 학회에서 성매매여성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후배 변호사를 만났다. 그 후배는 성매매여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법률지원 활동에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면서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늪을 지나는 기분이었는데, 법이 시행된 후에도 여전히 진흙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라고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하였다. 법률은 어느 정도 정비되었지만 우리사회에서 성매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2. 우리 사무실이 위치한 강남역 근처에는 수많은 유흥업소가 있는데, 요즘 불경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대낮에도 반나체의 여성사진을 크게 걸어놓고 명함과 유인물을 돌리는 호객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인물에 쓰인 귀를 보면 누가 같이 들여다볼까 무서울 정도로 노골적인 표현들이 대부분이다. 유인물에 유흥업소 웨이터들의 광고는 더욱 요란하다. 강남역 근처 보도블럭에 빽빽하게 붙여진 미남 청년의 사진 위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000, 2차 100% 보장합니다.”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광고를 들여다보다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서울 어디에선가 살아남기 위해, 또래의 여성을 미끼로 돈을 버는 그 미남청년의 가난한 삶에 문득 연민을 느낀다.

3. 성매매여성 두 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요란하게 화장하고 나타날까 은근히 겁먹고 있었는데, 너무나 예쁘고 참한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그중 한 여성은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포주가 찾아와서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하여 과거 자신의 경력이 들통날까봐 걱정이라고 눈물까지 글썽인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친척집에서 기거하다가 눈치가 보여 집을 나왔는데, 잠재워주고 월급 많이 준다는 광고가 있어서 업소를 찾아갔단다. 처음에는 2차를 안 나가도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2차를 나가지 않으면 매일 빚이 늘어나 결국은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한번 발을 들여놓자 빠져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졌다고 한다. 용기를 내서 목욕탕에 간다고 도망나왔는데, 갚지 못한 선불금이 그대로 남아있다. 포주가 고소를 하면 경찰서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아야 하고, 빚을 갚지 못하면 사기죄로 처벌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그 여성 앞에서 문득 할 말이 없어진다. 이 젊은 아이에게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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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는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의 쉼터에서 거주하는 여성 10인의 수기와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4.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여성활동가를 만났다. 환하고 씩씩한 웃음. 성매매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언니동생하며 지내는 그 여성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면서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 자신도 하루 빨리 ‘탈 성매매’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게 웃는 그 여성은 성매매 여성들을 특별한 남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탈 성매매를 결심한 후에도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짓’을 계속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주면서. 자활을 꿈꾸는 어린 성매매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발에 밟히면서도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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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여성폭력추방공동행동이 지난 4월 11일 오후 청계천 광장에서 '여성폭력 없는 세상' 선포식을 갖고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5.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성매매에 관한 우리사회의 논의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폭력범죄가 늘어난다거나, 성매매를 금지하면 미혼남성들은 성욕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거나,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관련 산업의 불황이 심각하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도 버젓이 제기될 정도이다. 성매매산업 속에서 여성들은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굴욕을 겪으면서 폭력과 성적 학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신체와 인격에 대한 중대한 침해임에도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한 여성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돈 때문에 부득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타인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를 얻는다면, 타인에게 신체를 제공함으로써 신체에 대한 폭력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놓인다면, 신체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여 번 돈을 대부분 빚 갚는데 사용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다시 그 일을 반복하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이것은 더 이상 여성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장애인, 노인,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만큼이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서 심각한 인권침해상황에 놓여있다. 다만 소리 내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매매에 대한 논의는 여성단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이다. 앞으로는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가끔씩이라도 인권단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