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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수도권이 나머지를 먹여 살릴 수 있다?(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4:46
조회
215

유정배/ 춘천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선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욕망의 정치'를 질타하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 유권자들이 뉴타운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선거 결과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한편에서는 시민들이 '경제적 이해'를 기준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 한다.

딴은 그렇다.
'계급투표'가 뭐 특별한 것이겠는가?
이렇게 보면 역설적으로 한국정치는 수도권의 자산계층이 정상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재벌들이 오매불망 외쳐대던 '수도권 규제완화'가 코앞에 와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수도권을 키워야 하고, 잘 키운 수도권이 나머지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한다. 그래서 규제완화는 필수란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위해서는 불도저로 돌진 할 태세가 된 듯 한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가장먼저 풀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수도권은 포화상태고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동반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는 낡은 축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유행지난 물정모르는 노래일 뿐이다. 이로써 한나라당 소속 춘천시장이 춘천시민에게 호언한, 서울 대학생들의 MT촌으로 유명한 강촌 근처에 조성하겠다는 200만평 규모의 지식기반형 기업도시 계획은 북한강 세찬물길에 스러져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실, 땅값은 수도권 규제완화의 핵심이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기술혁신이나 경영합리화 같은 것 보다는 수도권의 높은 땅값이 돈벌이의 ‘실용적인’ 수단 이다. 그동안 공장총량제등 수도권에 대한 입지규제 등에 의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땅값 때문에 지방으로 이전했던 기업들이 이제 지방에 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규제가 풀린 수도권 지역의 자연보전권역등이 택지와 공장부지로 개발되면 물량이 쏟아 질것이고 수도권 귀퉁이라도 부여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대박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춤을 추던 아파트 값이 수도권 규제완화를 앞두고는 용솟음치고 있다한다. 수도권 시민들이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한국자본주의의 법칙을 다시 한 번 확인 하는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경제성장율 7%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늘어간다는 볼멘소리만 들리는 지방에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치솟은 집값, 땅값이 주는 나른한 포만감을 알기 어렵다. 그리고 주식투자 한번 해보지 못한 변변하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복잡해 보이는 자산 늘리기 과정이 고등학교 때 끙끙대던 난해한 수학문제보다 더 어렵다. ‘강부자’ 정부 각료와 비서관들의 재산규모와 비법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모범 사례로 두둔되기도 한다. 이렇게 욕망은 정치선진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자본의 축적 방식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다시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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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 아파트 업체의 모델하우스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 출처 - 파이낸셜 뉴스


바야흐로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정책은 책임정치를 통한 정치발전을 꾀함은 물론 시민 개개인의 덕성이 근대적으로 만개되는 것까지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야경국가’가 국가의 좋은 모습으로 칭송받던 시절에 사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배운 데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정상적인 자본주의라는 시각에서 보면 지금 지방민을 홀대하고 수도권 시민을 우대하는 정책은 퇴행적이고 반체제적이기까지 하다. 식자들이 욕망의 정치를 걱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시민의 선택이라기보다, 수도권 자산계층의 ‘계급적 단결’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현실의 배반에도 역사발전은 계급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적 덕성’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신념을 확인하려는 먹물들의 계몽주의 일뿐인가?

성경 말씀이라고 들었다.
“나중 된 것이 먼저 된다”
지금 지방민들은 장로 출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에서 머지않아 진리가 예언자적 기적을 행할 것이라 믿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