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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답답한 대한민국 - 관리의 대상이 아닌 숨 쉬는 자유인이고 싶다.(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4:44
조회
226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봄! 이다.
봄이 되면 근질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길 없어 떠남, 방랑, 자유니 하는 것들을 동경하면서 억매인 현실을 훌쩍 벗어나지도 못하는 몸만 애꿎게 괴롭힌다. 좀 자유롭게 살면서 꿈도 이루고, 먹고살 방법은 없는 걸까? 고민하면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까지, 규칙적인 등교를 포함해 학교생활의 규율을 따라잡기가 힘들었고, 자연히 개근상을 받아 본 기억은 한 번도 없다. 요즘도 여전히 규칙과 규율에 대한 성실성은 자랑할 수 없다. 같은 일상, 같은 방식, 같은 사고체계의 요구는 제일 견디기 힘든 삶의 과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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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지난 4월 14일, 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법무부는 09년 1월 1일부터, 국적취득을 원하는 자에 대해 결혼이민자에 대해서는 250시간(단순이민자는 450시간, 10년 1월 1일 시행)의 한국어실력 및 우리사회이해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이에 긴급하게 이주민 관련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본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전면재검토를 요구하게 되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일선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함께 한글교실, 다문화체험, 상담 등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단체들과 실제 이주민여성들이 참석하여 이주여성들의 현실을 글로, 또 퍼포먼스로 전달하였다.

중국출신의 한 결혼이주여성은 글을 통해 “...국적 없는 우리는 남편의 부속품에 불과합니다. 제 주변에서 종종 있는 일입니다. 국적 취득 전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기간 연장할 때 남편이나 남편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 협박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법체류자 될까, 추방당할까 항상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한국문화 풍속은 살면서 몸으로 체험하면 습득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하였다.

퍼포먼스에서는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네들의 풍속과 문화를 떨치고, 한국의 문화와 풍속을 강요당하며 각종 의무와 책임에 짓눌려 국적취득을 하기위한 노력을 형상화 하였는데, 기자회견장은 순간 숙연해졌다. 다들 마음속에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간직하고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사회통합’인가? 혹은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 통합이 무언지? 왜 필요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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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의 국적취득과 관련한 ‘사회통합교육이수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사진 출처 - 필자


답답함은 이것만이 아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호주제’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법’ 은 시행되자마자 민원이 빗발치고, 공무원들조차 여성단체에 항의와 상담을 할 만큼, 많은 문제들과 가족에 대한 의식들이 드러나고 있다.

남성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을 편재-줄 세우기-함으로써 모든 가족구성원이 강제로 호주(가장)아래 법적, 심리적으로 종속되게 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가족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호주제, 이러한 문제제기를 기반으로 개인별, 목적별로 신분등록제를 개편하자고 해서 만들어진 대체법안 ‘가족관계등록법’은 그러나 기대를 저버려도 한참을 저버렸다. 오히려 혈통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된 것이다.

현재의 가족과는 다른 예전의 자녀나 부모가 버젓이 서류에 등장하고, 혼인, 이혼의 경력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친부모와 자식으로 지내고 있는 입양가족 앞에 ‘기아발견’이란 항목을 통해 드러난 아이의 경력,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양부, 양모, 양자였다는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피해사례 중에는 이러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드러난 과거로 인해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지내” 고 있음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다.

나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에 돌아가신 아버님-과거 가족이었던-이 현재 등록부에 기재되어 있었다. 대체 그런 증명서가 어디에 소용이 있는 걸까?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가족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이러저러한 이유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사나 관계 등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공개되는 것은 폭력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에서는 민법상 친족 및 재산분할 등의 문제로 인해 혈연중심의 가족관계를 기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미 어려운 이유로 법적, 사실적 가족관계를 포기했음에도 그렇다. 원본은 보관하되, 증명서 발급 시 필요한 부분만 기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자는 의견에도 재정소요를 핑계로 외면하고 있다. ‘기아발견, 양부, 양모’ 등 부모자녀관계에서의 문제만 개선하겠다고 한다. 배우자 간의 관계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혼전 자녀, 이혼경력 등)는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로 인한 압박감은 여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굳이 상처와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개인의 정보들이 드러나야 하는 신분등록제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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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점에 관한 토론회
사진 출처 - 필자


위 두 가지 사례를 보면서, 어릴 적 학교가기 싫었던 그 느낌이 되살아난다. 선생님의 일방적 전달과 훈시, 때로는 폭력을 동반한 강요와 강제. 설명과 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문화... 여성운동 15년 동안 나는 그 답답함을 깨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답답함이 반복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민(民), 즉 개별자로서의 국가구성원들의 행복과 자유가 보장되고, 권리와 책임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구성원들의 특수성, 특수한 환경과 조건이 인정되는 것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의 공존이 기본전제가 된다. 다양성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여유와 배려 등 기다려줄 줄 아는 문화와, 또 굳이 다름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통합교육이수제’는 이주민들을 성급하게 적응시켜, 한국인화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등록법’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가족관계를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법집행을 위한 ‘관리’의 편의성(관료주의)과 혈통주의를 버리고 싶지 않은(단일민족 신화) 욕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뿌리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경제중심의 물질주의, 편의 중심의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검정 옷을 입고 있을 때 다른 색의 옷은 눈에 띄기 쉬어 쉽게 관리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양한 색의 옷들 속에서는 뭐가 더 다른지 표면상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필요가 나타난다. 집단 구성원을 단일화 하려하고, 때론 구성원 개인 정보를 필요이상 파악하려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국민들의 일탈을 방지하고 일탈을 발견하기 쉽고 단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관리의 용이함을 위해서) 획일화 시키고 단일화시키기, 한 가지 색만 강조하는 가부장적 관료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사회에서 느끼는 답답함은 숙명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역행하고 여성인권은 후퇴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봄 날,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 속에서도 나는 답답하다. 진정한 자유인으로 숨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