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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끼리 이럴 수가 있는가? (홍미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22 17:40
조회
212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지난 1월 필자는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가르는 분리 장벽 근처에 있는 무슬림이며 비르제이트 대학 사회학 강사인 루바바 사브리(Lubaba Sabri) 집을 방문했다. 그 이웃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인 압도 콥티(Abdo Copty)도 먼 나라 한국에서 온 무신론자인 필자를 만나기 위하여 와 있었다. 루바바 사브리의 가족과 압도 콥티의 가족은 매우 절친한 사이였고, 필자와 이들 사이의 대화에서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루바바는 1960년대에 찍은 자신의 어머니 결혼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은 서양식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신실한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루바바는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비롯한 서안과 가자를 완전히 점령하기 이전에는 예루살렘, 라말라 등 도시 여성들은 히잡을 쓰지 않았어요. 도시 여성들은 1970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히잡을 쓰기 시작했지요. 작은 소도시 툴카렘 출신인 나의 어머니 역시 이 때 히잡을 처음 쓰기 시작했답니다.”고 밝혔다. 루바바의 주장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에 저항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루바바에게 “아마 당신 조상들이 대대로 팔레스타인에 살아왔다면, 아마도 그들은 유대교도였을 겁니다.”라고 농담을 건네자, 루바바는 진지하게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팔레스타인에 거주했던 많은 사람들은 비잔틴 로마 통치하에서는 기독교로 개종했을 것이며, 7세기 중반 이후 이슬람 통치자가 이 지역을 정복한 이후 이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로 개종했을 겁니다. 아마 이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 역시 무슬림이 되었을 것입니다.”

루바바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압도 곱티는 “이집트의 곱트 교도였던 우리 고조할아버지는 이스라엘 국가가 건설되기 훨씬 이전에 나자렛 근처로 이주해 왔어요.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 할아버지를 ‘곱티’라고 불렀고, 그래서 성이 ‘곱티’가 되었지요. 사실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 국가 건설’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 국가가 폭력적으로 건설되기 이전에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종교의 차이로 인한 분쟁은 거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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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타 난민촌에서의 필자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무함마드는 “19, 20세기에 있었던 유대인 박해 문제는 유럽의 문제였고, 이 곳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인종, 종교 등이 다름으로 인한 차별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지는 분쟁은 종교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가 결코 아니지요. 현재 이스라엘인들의 대부분은 20세기 이후에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고, 이주민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사람들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을 비롯한 전 세계 주류 유대 공동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럽과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들(Ashkenazi Jews)은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어떤 연고권을 주장할 만한 근거가 희박하다. 헝가리 태생이며, 영국 시민이었던 열정적인 시오니스트 아더 코스틀러(Arthur Koestler)에 따르면, 이 유대 공동체들(Ashkenazi Jews)은 8세기 중반에 동유럽 지역 카자르 제국(Khazar Empire)의 통치자가 유대교로 개종하여 국가 종교로 유대교를 채택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징기스칸의 침략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서유럽과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유럽과 러시아, 아메리카 등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 주류는 동유럽 카자르 제국민들의 후손들이며, 고대 유대인(Israelites)들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이 ‘조상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독점적인 주권을 폭력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미디어(http://www.imemc.org)에 따르면, 지난 3달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했다. 2008년 1월부터 2월 15일까지 이스라엘은 3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납치했다. 이 중 200명 이상은 헤브론을 비롯한 나블루스, 베들레헴, 라말라, 칼킬리야, 예루살렘, 살피트, 제리코, 알비레 등 서안 전역에서 납치되었고, 납치된 이들 대부분 민간인들이다. 나머지 100여명은 라파, 알 제이툰, 베이트 라히아 등 가자에서 납치된 사람들이다. 매일 보도되는 이스라엘의 만행은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 살해와 납치, 밤낮 가리지 않는 가택 수색, 가옥 파괴,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한 임산부가 길거리에서 아기 낳는 일 등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끼리 이럴 수가 있는가?

2월 17일 팔레스타인 보건 장관은 이스라엘의 연료 공급 중단으로 가자 지역에서는 구급차 운행조차 중단되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지난 2주 동안 연료를 실은 배가 가자 해안 지역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http://www.haaretz.com)에 따르면, 2월 17일 북아메리카 유대 조직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올메르트는 앞으로도 가자 지역에 대한 연료 공급을 중단하면서 공격을 계속할 것임을 강조하는 한편, 서안과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점령촌 확장사업도 강화할 것임을 다짐하였다.

지난 1월 필자가 방문한 예루살렘과 라말라가 인접한 거리는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건설로 작년 겨울과 또 달라져 있었다. 골목 안, 대문 안까지 파고드는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하다. 그 분리 장벽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다. 이와 같이 돈, 권력, 총구 앞에서 노예가 되는 것 이외에 허기진 배를 움켜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것은 뼈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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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필자가 방문한 예루살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