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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위기 때문에 군법무관을 징계한다고?(이유정 인하대 법대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42
조회
151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아침에 일어나면 현관으로 가서 배달된 조간신문을 집어 드는 것이 오래된 습관인데, 언제부터인가 신문을 집어와 1면만 훑어보고 그대로 놓아둔 채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무엇하나 즐거운 일은 없이 온통 짜증나는 소식이 가득해서, 아침에 신문을 읽고 나면 하루 기분을 완전히 잡쳐버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짜증스럽다 못해 용산 철거민 참사와 같이 신문 보기가 겁나는 기사들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해 신문 구독을 중단할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무엇보다도 법률가로서 제일 화가 나는 일은 이 정부와 집권세력들이 도무지 법에 관심도 없고 법을 지킬 생각도 하지 않는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법을 지키라고 훈계를 하며 법을 마구 휘둘러대는 일이다.

최근에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건과 관련하여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이 ‘대외비라는 문건을 슬쩍 유출한 판사도 공직자윤리위에 회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외비라는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내 재판에 압력을 가하려고 한 행위보다 그 이메일을 유출함으로써 부당한 재판개입이 있었음을 알린 행위가 더욱 잘못이라는 것이다. 처음 들어보는 해괴한 논리이지만 혹시나 싶어서 공직자윤리법을 찾아보았더니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외부에 알린 행위를 처벌하거나 징계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법을 몰라도 지나치게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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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인터넷 서점 '알라딘'


같은 날 국방부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 2명을 파면한 것도 같은 논리이다. 국방부가 소위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한 것이 군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의 행위가, 군 내부의 지휘계통에 따라 건의절차를 거치지 않아서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 파면의 이유이다. 군인사법 제56조는 징계사유로서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때,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 그 밖에 이 법 또는 이 법에 의한 명령을 위반한 때’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행위는 이 가운데 어느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군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행위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태만히 하는 것도 아니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도 아니며, 군인사법상의 명령을 위반한 행위도 아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는 법에도 없는 이유를 들어서 군법무관들을 파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논란이 확대되자 국방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안보위기 때문에 중징계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는데, 안보위기 때문에 군법무관을 징계할 수 있다는 규정은 어느 법에도 없다. 국방부의 해명은 대통령이 북한의 침략위협과 안보위기를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영장 없이 국민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감금하던 70년대의 논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처럼 법에도 없는 ‘공직자 윤리’와 ‘군 기강’ ‘안보위기’ 같은 것을 들먹이면서 법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반대세력을 탄압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법’의 칼을 빼들고 설친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재판에 회부하고,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참사를 당한 용산철거민 사건의 대책위원회 간부들을 구속하고,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며 언론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하는 YTN 노조간부를 구속하고, 폭행에 가담한 명백한 증거도 없이 민가협 간부를 구속한다. 이유는 한결같이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다.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법을 무시하거나, 법을 무기로 휘두르면서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이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괴롭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배는 고플지라도 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망명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