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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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N 교수님께...(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4:43
조회
228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지요?
이리저리 활동하시느라 여전히 분주하시겠구요.
학자와 교육자의 길을 제대로 가시는 분이 있어
이렇게 편지라도 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있는 일입니다.
벌써 이년이 넘었군요, 교수님 못 뵌지...
사모님과 자녀분도 모두 건강하시지요?

제가 이곳 동경으로 온지 벌써 칠 개월째 접어듭니다.
저도 좋은 경험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 문화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은 커지는데
아직 제대로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을 보니
그게 다 공부려니 싶습니다.
무엇보다 여기 있으면서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말씀이 실감납니다.
제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나중에 자서전이라도 한 번 써보라고
하늘이 주시는 기회로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요.

평상시에는 잊고 잘 살다가
법원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학교 생각도 나네요.
연구실, 책상, 강의실...
때론, 내가 거기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말 옛 일처럼 아스라해지기도 하구요.
제 손때 묻은 책마저 거기 없었다면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연구실 폐쇄된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싶습니다.

저는 삼월 중에 한국에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11일이 고등법원 변론기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학교 측 변호사가 교내 교수와 학생 일인씩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는 바람에
즉석에서 4월 1일로 연기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4월 1일이 되니까 증인이 사정상 못 왔으니
또 5월 6일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하네요.
중간고사 끝나야 올 수 있다나 어떻다나...
어쨌든 학교측 연기 신청이 다시 받아들여져서
이번에도 3분도 안 되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동경에서 일부러 갔는데 좀 허무했지요.
증인이 못 오면 못 온다고 상대방에게 미리 얘기해주었더라면
여러 사람이 헛걸음까지는 안했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였을 텐데...
제가 동경에 있는 줄 알면서도 당일이 다 되어
기습적으로 연기 신청만 하고는 사라지니,
허무했다기보다는
술수만 쓰고 사는 것 같은 사람들 모습에 좀 씁쓸했지요.
장사에도 도의가 있다는데...
그리고 항소를 해놓고는 도리어 회피하기 급급하니,
스스로도 정당하지 못하니 그렇겠지요.

다음에는 그런 일 없도록 해달라고 학교 변호사와 얘기 좀 해볼까 했는데,
여러 번 불러도 전혀 못들은 척
재판 끝나자마자 황급히 법정 밖으로 빠져나가네요.
제가 언젠가 '변호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느꼈습니다, 배운 대로 실천은커녕,
왜 반대로 가려고만 애쓰는지...
오로지 돈 벌려고만 공부한 것은 아니었을텐데,
인권을 수단화하여 금권과 바꾸는 것이 법의 본래 정신은 아니었을텐데...

하긴 신학이라는 거창한 학문도 마찬가지지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겠노라 결심하는 순간에는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목사가 하나의 직업이 되고 난 뒤에는
자기 욕망을 신앙과 진리의 이름으로 슬쩍 포장하는 경우가 허다해지니까요.
그렇게 포장하는 자기 자신도 모를 정도로
자신의 이중적 자아에 스스로 속아버리기도 하구요.
그 때마다 네게는 그런 일 없었느냐는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너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하늘의 말씀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하구요...
저도 부족하기 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누가 저를 정죄하는 증인으로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만,
오히려 그분이 안됐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찌되었든 정죄하는 일은 마음 아픈 일일 테니까요.
신앙의 이름으로 남을 죽이는 일은 더욱이나...
그러니 자꾸 연기 신청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착각일까요?
그냥 책임질 것도 없이 딱히 해결될 것도 없이
그저 빨리 잊혀지기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요?

어쨌든 그 덕에 저는 5월 6일 전후해서 또 한국에 가게 생겼습니다.
아까워라, 비행기값...

사실 그동안의 경과를 정리하고, 각종 항소장과 답변서 등을 모아서
출판하자 권유하는 분도 계시고,
법이라는 것, 기독교라는 것이 현실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21세기에 벌어진 이 일을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제게도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이 마무리 된 다음에 해야겠지요.
어쨌든 자서전 쓸 거리가 생겨서 저는 좋습니다.

오늘 토요일, 일 년 간 저를 불러 준 이곳 학교에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좋은 계절에 입학식을 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기도 종교 학교니까, 교수는 진지하게 훈시하고
학생은 긴장하며 맹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순수한 고백과 염원이 오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누구도 ‘처음처럼’만 살면 될텐데 하는 당연한 생각도 새삼 들었습니다.

갑자기 학교 생각, 교수님 생각이 나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생각날 때 표현하지 않으면 그 생각마저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결혼 생활 하면서 많이 느꼈던 일이기도 하지요.^^
잘 했지요?
어쨌든 이렇게 메일 보낼 분이 계시니 좋습니다.
자주 소식 드리고 싶습니다만,
행여 교수님께 짐이 될까 하는 마음에...
그래도 기회가 되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게 도리이겠지요.
몸과 마음 더욱 건강하시고,
더욱 큰 학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8년 4월 5일
동경에서 이찬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