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이 된 검찰(이유정 인하대 법대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49
조회
167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아침에 이메일을 검색하기 위해 인터넷을 클릭하는데 “대검찰청 공안부(노환균 검사장)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다시 봉쇄하는 등 6.10 범국민대회 개최를 원천적으로 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는 기사가 눈에 번쩍 뜨인다. 경찰도 아닌 대검 공안부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원천봉쇄한다니. 집회 원천봉쇄라는 말은 신물 나게 들어봤지만 검찰이 나서서 직접 원천봉쇄를 한다면서 겁을 주는 것은 참 오랜만에 보는 진기한 풍경이다. 서울광장의 소유권이 서울시장에게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로 옮겨가더니 이제 대검 공안부로 옮겨 갔나보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아두었다. 물론 집회의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의 내용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규정에 근거해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법률이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주최하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신고를 하도록 하고, 신고서를 접수한 경찰서장이 시위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금지통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바로 이 규정을 근거로 경찰은 대부분의 집회. 시위를 금지통고하고 있으며,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집회. 시위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대검 공안부가 집회 시위를 봉쇄할 수 있는 권한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는 대검 공안부에 관한 규정은 단 한 줄도 없다. 다시 말해서 대검 공안부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원천봉쇄할 법적인 근거는 없는 것이다. 검찰청법 제4조 제1항은 검사의 직무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범죄수사ㆍ공소제기와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 범죄수사에 관한 사법경찰관리의 지휘ㆍ감독, 법원에 대한 법령의 정당한 적용의 청구, 재판집행의 지휘ㆍ감독, 국가를 당사자 또는 참가인으로 하는 소송과 행정소송의 수행 또는 그 수행에 관한 지휘ㆍ감독, 다른 법령에 의하여 그 권한에 속하는 사항”. 그리고 제4조 제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까지 규정해 놓았다. 검찰이 집회. 시위를 허가해 주거나 막을 권한은 헌법에도 법률에도 없는 것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는 검찰이 나서서 “법에도 없는” 권한을 남용하는 어이없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090609web01.jpg
대검찰청 공안부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다시 봉쇄하는 등 6.10 범국민대회 개최를
원천적으로 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검찰이 이처럼 헌법이나 법률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 이유는 검찰을 견제할 수단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검찰은 경찰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광범위한 직접적인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으며-아마도 검찰은 서울광장 집회 원천봉쇄는 수사지휘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강변할 것이다-대검 특수부로 대표되는 직접수사권, 대검 공안부로 대표되는 정보기능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영장청구권도 독점하고 있으며,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 검찰 입맛에 맞게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반면 검찰에 대한 통제장치는 인사권을 통한 정부의 통제와 사법부의 사후적인 통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인사권을 통한 정부의 통제란 인사권자에게는 충견 노릇을 하는 검찰에게 있어서 통제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이번 용산참사 사건에서 보듯이 검찰이 짜여진 각본대로 수사를 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만 재판부에 제출하는 경우에는 사법부에 의한 통제도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므로 어떠한 권력이든 국민들에 의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어떠한 권력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언제든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가기관은 권력에 상응하는 통제를 받아야 한다. 권력은 있으되 통제는 받지 않는 권력은 민주주의 그 자체를 위협한다. 현 정부 들어서 검찰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한 징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배임죄 사건, MBC 피디수첩 사건, 조중동 광고 중단 소비자운동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박연차 게이트 사건 등에서 드러나듯이 검찰은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검찰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검찰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칼날이 된 검찰에게 더 이상 ‘공익의 대표자’라는 고상한 호칭을 주어서는 안 된다. 헌법도 법률도 무시한 채 집회 원천봉쇄를 한다며 국민을 을러대는 검찰에게 더 이상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나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때만 ‘엄정, 중립’을 표방하는 검찰 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더욱 ‘정치적’이다. 이러한 집단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이제 남은 일은 검찰에게 빼앗긴 권력의 칼자루를 국민의 손으로 되찾아오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풀어가야 할 민주주의의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