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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사가 맞아? 〔1〕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59
조회
229
나, 역사가 맞아?〔1〕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다음은 ‘그날’ 이후 지난 3주일 동안 역사가 (맞아?) A교수가 경험, 관찰, 청취한 기록을 생각(안)나는 대로 제멋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1. 대학원 면접심사를 위해 토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학교 도착 전 아내가 늦잠에서 덜 깬 경황없는 목소리로 전직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면접직전 문학전공 동료교수가 “세계사적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는가?”라고 역사전공 A교수에게 물었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 넓고도 깊은 지식이 매우 부족한 A교수는 “한국현대사에서 전례 없는 매우 독특한 사건이 방금 발생했음은 분명하다”고 눙쳤다.

면접 후에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뉴스를 확인한 그는 약속을 위해 시내로 향했다. 고등학교 문학동아리 선배가 관여하는 대안언론단체를 돕기 위한 일일주점에 참석하는 길이다. 을지로 골뱅이 맥주 집을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주었다. 교사, 회사원, 학원 선생, 언론종사자 등 직업은 다르지만 지난 30년 동안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심심하거나 할 때면 가끔 만나던 선배/친구들이다. 지금은 아무도 문학전문업소(?)에 종사하지는 않지만, ‘문학하는 마음으로’ 사회를 살아가려는 50대 초반의 ‘문청’들인 셈이다. 1년 후배인 A교수가 이들과 즐겨 어울리는 까닭은 젊은 시절 선배들이 한 때 간직했던 ‘새파랗고 과격한 생각’들이 자식들 군대 보낼 나이까지도 도대체 늙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철없고 이름도 없이 일상적으로 살아남은 7080 ‘운동권’의 잔챙이들에 대한 존경과 추억이랄까.

화제는 자연스럽게 자살사건으로 모아졌고, 아니나 다를까, “역사적인 차원에서 향후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는가?”라는 물음이 A교수에게 날아왔다. 자신이 유럽사상사 전공자라고 주장하는 그는 “한국현대사 문제는 한국사 전공자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며 비켜갔다. 한심한 꼴뚜기 역사가라는 계면쩍은 마음에 A교수는 어제의 숙취를 외상처럼 달아놓고 자리를 먼저 떴다. 사실 어제 ‘이 정권 들어 졸지에 모두가 불법단체가 되어 버렸다’고 하소연하는 시민단체관계자들과 늦은 밤까지 다소 과하게 마셨다. 정치가 7080 복고풍으로 되돌아 간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쏘맥 폭탄주’를 거푸 마셨는데, 밤새 이런 기막힌 일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귀가하자마자 아내―전직 대통령의 서울 검찰청 출두장면을 멀리서 지켰던 여자다―는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역사적으로 올바른가?”하고 A교수에게 따졌다. 제기랄, 오늘은 왜 하루 종일 모두가 나를 괴롭힐까. 직업적 역사 선생이 반드시 족집게 정치평론가 노릇을 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역사가는 최소한 30년을 뜸 들여서 말하는 스로우 쿠커(slow cooker)라니까!” 관련 자료들이 충분히 공개될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정사건의 역사적 배경, 원인과 결과, 전개과정과 역사적 교훈 등을 순서대로 그리고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불 꺼, 오늘은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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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면적인 국정 기조 쇄신을 요구하는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번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에서 잠시 쉬는데,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갔던 대학동창이 “칭찬하려고 전화했다”고 뜬금없이 안부를 전했다. 조금 전에는 제자, 졸업생과 대학원생으로부터 ‘수고 하셨습니다.’라는 문자를 받고도 어리둥절했던 A교수는 비로소 자신이 ‘서명교수’였음을 깨달았다. ‘현직 대통령은 반성하고 국민과의 소통에 힘써라’는 요지의 교수시국성명서에 이름을 빌려 주었던 것이다. 서명에 동참하는 것만큼 쉽고도 무책임한 일이 없는데, 웬 호들갑. 지난 십여 년 동안 A 교수가 발표했던 수십 편의 논문을 읽고 감동받았다고 연락한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는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에는 대학원 논문심사 후 심사위원 교수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 저런 심사평의 뒷얘기 끝에, 정치현안이 식후 안주거리로 생략될 수가 없었다. A교수보다 나이 많은 고참 B교수는 “새 정권 출범 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증거를 대봐라”고 정색을 한 뒤, “국민이 합법적으로 선출한 현직 대통령을 흔들어 나라에 무슨 이익이 되는가.”라고 야단쳤다. 이런 엄청난(?) 질문이 제기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가 (맞아?) A교수가 우물쭈물 거리는 동안 젊은 C교수가 끼어들었다. 다른 견해와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끼리의 소통과 상호이해도 매우 중요하므로… 어쩌고저쩌고.

며칠 뒤 이웃 대학에 논문심사를 가서도 A교수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각각 다른 대학에 재직하는 4명의 역사 선생들 중에서 우연히 A교수만이 ‘서명교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으므로 대화는 ‘왜 나는 서명하지 않았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D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의 사망이후 전개되는 일종의 ‘애도(哀悼)정국’은 착한 이 나라 국민들이 펼치는 ‘3일간의 효자노릇’이 잉태한 현상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효자 아닌 효자들의 후회와 자기질타는 결국 일상생활의 분주함과 이기심에 파묻힐 것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E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직 대통령의 유서를 텍스트 삼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민족’이나 ‘국가’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이를 포스트 모던적 시각으로 해석하면… 저쩌고어쩌고. 두 사람은 지식인들이 ‘나를 따르라!’고 대중을 선동하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름답고 지당한 말씀과 논리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업계’(상아탑) 바깥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파악, 진단하고 있을까? 다른 의견의 샘플수집에 골몰하던 차에 마침 A교수 시골친구들의 번개모임이 있었다. 오십 넘어 미술대학원에 진학하고 개인화실을 오픈한 친구를 격려하자는 핑계였다. 중소기업 사장, 국영기업체 간부, 주요 신문사 전문기자 등의 명함을 가진 친구들이 화실 바닥에 앉아 나누는 잡담에도 ‘요즘 사태’는 등장했다. 우선 늙다리 예술가가 “새 정권 들어서 예술지원정책이 엉망이라서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하자, 국영기업체 간부는 “나라경제가 잘 되어야 네 작품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진다.”고 위로했다.

이에 맞장구치듯, 전문기자는 “서명교수들이 많은 대학(당국)은 여러 가지로 입장이 곤란할 것이므로 앞으로는 이름 빌려주지 마라”고 A교수에게 조언했다. 맞춤법 틀린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교수들에게 자식교육 맡기는 것이 걱정된다는 어느 신문의 허튼 논조가 퍼뜩 떠올랐다. 잘못된 이름(사진)과 통계, 확인되지 않은 풍문과 오보 등에 대한 사과·정정기사를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것을 빛나는 전통처럼 자랑하는 이 땅 (일부!) 주류언론사들의 천박한 발상과 뻔뻔스러운 여론몰이와 더 이상 시비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고 귀하지 않는가.

염려삼아 사족처럼 덧붙이자면, 위 글에 언급된 인물들과 그들의 언행은 3류 역사가 (맞아?) A교수가 주관적이며 선별적으로 (재)배치하고 (재)창조한 것임을 밝힌다. 객관적이며 진실된 공적 기억이라는 간판 아래 지금까지 서술된 거의 대부분 역사가 그랬듯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