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파면의 시대(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6:00
조회
169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현 정부 들어 정부정책에 비판하는 공직자나 과거정부의 공직자들에 대한 징계와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방송의 이사직을 수행했던 모 교수에 이어서 한국방송 사장이 해직되었고, 임기가 보장된 정부기관의 장까지 억지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압박과 뒷조사를 통해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추태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비교적 한적하리라고 예상되었던 문화예술계의 기관장들도 해직과 사직의 대열에 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총장을 사임한 시인 황지우는 교수직까지 박탈당할 위기에 놓였다.

어디 이뿐인가! 불온서적 지정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법무관을 파면하였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빌미가 된 세무조사를 비판한 공무원을 파면하고 심지어 국세청 공무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검찰에 고발하였다. 문화방송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하여 검찰은 마침내 거국적 소송을 시작하였다. 명예훼손소송은 본질적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자가 사실상 스스로 입증하는 사적 소송에 가까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검찰은 열심히 입증하려고 준비하였던 것 같다. 만약 소송에서 검찰이 패소한다면 정운천씨 개인이 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 전체가 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기소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 대변인의 입을 보니 이 소송이 거국적 프로젝트라고 인식되었다.

지난해에 검찰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교사의 관여를 문제 삼았던 희한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올해에는 교과부가 시국선언을 주도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을 공언하고 있다. 전부 위키피디아에 등록될만한 새로운 사건들이다. 심지어 희망제작소의 사업들에 대한 기업의 지원마저도 정부의 압박에 의해 중단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1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일그러진 남북관계는 계산서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물론 주변에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데도 시국선언을 하며 설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여부에 대하여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과는 점심 메뉴에 대한 의견 이외에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필자의 기준은 단순하다. 정치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7년 전의 이메일을 뒤져 혐의점을 찾거나 사적인 이메일마저도 정략적 소송을 위한 선전도구로 활용하는 검찰이 법을 말하는 한, 이 나라에는 법도 없으며, 민주주의도 없다는 점이다. 정치적 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파면을 일삼는 권력, 정치적 반대자를 숙청하기 위하여 해를 넘겨 죄목을 만들어내는 검찰이 있는 한, 민주주의의 죽음을 말해야 할 때이다.

090624web01.jpg
MBC 김은희 작가가 지난 6월19일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적 이메일을 공개했다”며
검찰 수사팀을 ‘비밀침해죄’와 ‘직무유기죄’로 고소했다. 19일 오후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들이 검찰청 앞에서는 고소장 접수에 앞서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스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은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 실시하였던 공무원 숙청과 같다. 유대인, 사회민주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은 공직에서 해직되었다. 진중권씨가 현 정부 들어 발호하는 문화 권력의 지휘자를 나치시대의 선전상 괴벨스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나치시대에 비유하는 것이 꼭 적절한 것은 아니다. 일단 국민이 권력의 놀라운 능력을 대략 믿어야 나치적 구축이 가능한데, 집권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국민이 그들의 영혼에 깃든 달랑 삽 한 자루를 투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언론을 장악해서 선동과 압박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지지를 여전히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확산되고 만연한 빈곤이다. 독재와 파시즘은 중산층의 기회주의와 빈곤층의 증오감에 의존하여 왔다. 사회 민주주의적 정책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며 서민층을 대변하는 민주정당이 탄탄하게 뿌리박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 계층과 예비역 노병들은 극우세력의 폭민이 되었다는 독일의 역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객관적 상황은 거기에서 멀지 않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와 더불어 사악한 동원체제가 확립될 수도 있다.

좋은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나쁜 입장도 존중받는다. 좋은 시대란 좋은 인간들이 집권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쁜 시대에는 정치적으로 좋은 입장도 박해를 받는다. 왜냐하면 나쁜 자들이 집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각하게 나쁜 시대에 있다. 우선은 힘껏 평화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현해보자. 그리고 기억하기로 하자. 반대의 힘으로 다음 3년을 기다리자. 그리고 이번에는 용서와 화해 대신에, 바른 말을 하는 자를 무단히 파면하고 박해한 자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세밀하게 설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