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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폭동’을 바라고 있나? - ‘각론’으로 맞서고, ‘지역’에서 시작하자(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27
조회
141
- ‘각론’으로 맞서고, ‘지역’에서 시작하자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혹시, ‘폭동’을 바라고 있나?

이 질문은 이명박 정권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고 이에 맞서려는 시민사회운동을 포함한 이른바 ‘진보진영’에게 던지는 것이다.

‘폭동’에 대한 언급은 경제학자 우석훈 씨가 최근 꺼내든 것이다. 이른바 ‘빈곤형 경제빅뱅’을 예견하면서 내놓은 위기감의 표현이다. 그런데 그가 쓴 글은 단지 위기감을 부풀려 표현한 ‘선동’이 아니었다. 그의 진단은 결론적으로 한국경제가 “좋든 싫든 중남미형 경제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중남미에서 언제 폭동이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내년 연초 경제팀은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처방도 잊지 않고 내놓고 있지만, 한국의 경제빅뱅이 “여의도 증권가와 관청 사무직들의 서류위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라는 경고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지난 15일, 경향신문이 연말을 맞이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응답이 60%를 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한 경제학자의 폭동 예견론과 한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서 어떤 것부터 생각하게 될까? 당연한 결과? 그러면 그렇지? 대선 이전부터 회자되던 자조적 이야기들, 즉 한나라당 집권 하에서 한 번 제대로 당해봐야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알게 될 거라는 식의... 그래서 이것이 암울한 경제상황과 맞물려 ‘폭동’으로 나가길 바래야 하나?

‘폭동’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난 ‘촛불’에서 광범위한 사람들의 운집과 저항을 경험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학자들 대부분은 ‘주권혁명’, ‘직접민주주의의 시작’과 같은 거대담론 시각에서 다루었다. 물론,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촛불이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공포 같은 구체적인 먹거리의 문제에서 터져 나왔다는 걸 상기하면, 그 거대담론의 와중에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야기한 수입정책 하나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몇 개월 전 만난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촛불은 환상이다. 팩트는 사람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즉, 이명박 사람들은 그 ‘팩트’만을 대처하고자 했던 것이다. 분노를 달래거나 혹은 억누르거나. 그리고 우리가 촛불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사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외양만을 고친 채 이뤄졌고, 미국산 쇠고기는 몇 개월도 안 돼 대형마트 진열대에 올랐다. 만의 하나, 못살겠다고 정말로 ‘폭동’이 일어나도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나는 지난 촛불과정을 거치면서 오히려 시민사회운동이 스스로 무기력해진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우리나라 시민사회-진보운동을 대표하는 서울의 단체 활동가들을 마주하거나, 토론회장에 나가보면, 촛불의 의미를 끄집어내기에 바빴고, 그 결과의 하나인지 모르지만 촛불의 위력을 가능케 한 인터넷 등 미디어 배우기에 골몰한 모습에서 아연했었다. 운동의 자리를 대중이 대체하는 시대상황을 고무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체로 시민사회운동의 역할론에 대해 망연자실하거나 무기력감에 빠진 모습 이상이 아니었다. 그 나마의 주장은 촛불을 계승하는 국민적 기구를 만들자 정도였는데, 그 또한 앞이 뻔히 보이는 고루한 제안으로 비쳐졌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오마이뉴스에 실렸었던 한 영국 유학생의 흥미로운 제안이 떠올랐다. 그는 영국의 사회정의위원회 구성사례를 들며, 촛불을 이어갈 대안으로 ‘독립적·수평적 국민대안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다. 촛불로 응집된 국민저항과 여망을 모아, 미래를 설계하는 수평적 국민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영국 노동당의 사회정의위원회는 우리의 촛불정국과도 흡사했던 대처정권 말기의 상황에서 대안부재를 돌파할 역량으로, 대처리즘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의 노동당도 아닌 새로운 국가모델 설정과 이에 따른 구체적인 정책들을 2년의 연구기간을 거쳐 내놓았다. 물론, 이 과정은 어느 정치세력이나 학자들만의 그것이 아니었다. 소개되기로, 자문과 자료를 제공한 각종 인사와 단체의 명단은 수백에 이르러 최종 보고서 중 12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다고 하였고, 그 범위는 학자, 정치인, 사회단체, 이익단체, 연구기관, 기업, 해외 인사, 국제단체 까지 포괄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1997년 신노동당 정권의 전략으로 전폭 수용되었다고 소개하였다.

우리가 촛불국면에서 이를 모색했으면 어땠을까? 비단 어떤 기구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촛불로 촉발된 생활적 문제의식들을 매개로 미리 예견되고 있었던 MB의 정책과 대조되는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면 말이다. 최근의 ‘민생민주주의 국민회의’라는 것이 뜨긴 했지만, 이 조차도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의 대책기구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다. 촛불이 생활을 영위하는 개인들의 집합된 저항이었다면, 적어도 국민이 아닌, 우리시대의 ‘개인’을 대변하고, 또한 참여하는 형태의 수평적이면서, 훨씬 전략적인 모색이 있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의 운신형태는 훨씬 구체적이고 각론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자 한성조는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가 펴낸 책에서 평소 자신의 신조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구체적 성공 경험의 축적을 통해 결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진보를 이룩한다”

나는 10여년 시민운동을 하면서, 구호와 주장이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정책결정과정에 유효하지 못했던 오류들을 많이 접해 왔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거리에서 외치는 동안 관련 법안,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돼 버리고, 환경이슈로 비상시국을 선포하고 광화문 거리에서 단식하는 동안 기업도시법과 같은 법들이 국회에서 통과돼 버리는 식이었다.

지난 주 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예산 삭감을 위해 3일 동안 국회에 상주했다. 제주가 무슨 무슨 특별법하면서 십 수 년 흘러온 지역이라, 이는 나에게 매년 이때 즈음의 연례적인 일이 된다. 올해도 벌써 여섯 번째 이른바 ‘국회로비활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국회 풍경 안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싫든 좋든 입법과 예산결정권을 가진 그들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압박하고, 때로 타협하는 식의 구체적 정책 활동이 아쉽게 느껴졌다. 제도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집요한 각론적 대응이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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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규제완화철회와 분권, 균형발전 실현 전국연석회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수도권규제완화 철회와 하천정비사업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
참여해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이번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은 지역발전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법적 제도적 균형발전을 배제하려는 의도와 지속적으로 수도권규제완화를 추진하려는 의도
부터 철회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국회예산이 처리 직후, 민주당 안에서도 지도부 무능론 등 후폭풍이 불고, 언론이나 시민사회도 대운하 예산이니 선심성 예산이니 불을 놓는 형국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차피 기댈 수 없는 민주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지금, 이른바 ‘MB 법안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추락하는 지지도에 기대를 거는 사이, ‘폭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한 경제학자의 우려 깊은 진단을 매개로 MB정권이 무너지거나 정신 차리길 어쩌면 은근히 기대는 사이, 쟁점법안들은 불과 몇 시간 사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변화를 동반하며 결국 통과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변화 중심에 진보운동의 절박하고도 구체적인 운신이 서 있게 되길 바란다.

한편, 국회 예산처리가 끝나자마자, 이명박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2단계 지역발전 정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계획과 관련,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고 했듯, 국토유린이라 할 만한 토건프로젝트를 경기부양책을 빌미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둘러싼 형국은 ‘자치단체 환영 - 시민단체 반대’이다. 그런데,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지역의 진보운동은?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의 언론들은 아예 이번 계획에서 제주가 제외되었다며, ‘홀대론’을 펴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도 이 계획에서 진보운동의 편이 아니다. 'MB 법안'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다. 이미 민주당은 이 계획을 환영하는 지역의 토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소속 국회의원들도 자치단체들이 환영하는 이 계획에 대해서 예산따오기 첨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제가 ‘삽질경제’니 하는 담론차원 만이 아니라,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접근법이나 ‘사실은 대운하 1단계 사업’이라는 쟁점식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계획이 향후 5년, 그러니까 이명박 정권 만료시점을 목표연도로 하고 있지만, 다행히 그 사이 지방선거가 있다. 때문에 바로 지방선거를 목표로 이 계획의 허구와 문제를 밝히는 ‘지역’차원의 집요한 ‘각론 대응’이 형성되어야 한다. 아니면 전혀 다른 프레임을 갖는 지역의 각광받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중앙의 노예로 전락한 지방의 현실에서 필경 이 문제들은 지역의 발전담론과 관련해 지방선거의 쟁점이 될 텐데, 더구나 ‘지역’이 실종된 MB 정책은 바로 지역에서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지방선거는 그 매개가 되어야 한다. 외자유치와 규제완화를 둘러싼 지자체 경쟁, 토건경제를 주도하는 토호권력이 바로 국가노선과 맞물려 돌아가는 MB체제하에서 이의 균열을 촉진하는 것은 지역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론적 대응으로 구체적인 성공을 축적하고,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