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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은 내 문제다(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5:23
조회
191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정책팀장

서울살이는 지금이 두 번째이다. 작은 읍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어찌어찌 서울이란 곳으로 대학을 오고 금쪽같던 젊은 시절 5년을 서울서 보냈다. 그리고 3년여 전부터 다시 서울살이를 하고 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서울은 별로 정이 안 간다. 서울살이를 삭막하게 만드는 이유야 여러 가지이나 그 중 하나는 폭력과 관련한 것들이다.

그 당시 대학은 남성중심문화가 팽배해 있었고, 특히 학보사라는 곳은 야구방망이얼차려는 기본이었다. 그거야 뭐 집단의 역사니, 문화니 하여 참을 만했다 해도, 술자리에서 선배의 성추행에 항의하다 두사부일체를 외치는 추종자에 의해 끌려가 눈에 불똥이 튀도록 맞은 것은 미해결된 분노다. 그리고 3년 전 서울로 이사 온 지 삼일 째 되던 날 이웃과 주차문제로 다툼이 있었고 끝내는 다치게 되고 말았다. 벽 하나를 사이 두고 살아야 하는 관계에서의 그런 상황은 마주칠까 불안하고 두렵기조차 했다. 딸아이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는 했었다.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고 이사를 가 일단락되면서 다행히 잊어가고 있다.

타인에 의한 일회적 폭력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가족에 의한 폭력은 일상 속에 폭력이 들어와 있다는 점에서 경험의 강도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하리라 예상된다. 죽음보다 두려운 경험이 아닐까? 폭력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보다도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로 살아야 하는 그 과정에서 이미 한 인격에 대한 사망선고가 내려진 것이다.

사람이 인격을 팽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때, 물건으로 취급받을 때, 고통의 공포가 전신을 지배할 때... 이미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그 상황이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가 성별권력관계로 둔갑한 모습일 때 침해는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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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에 열린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0주년 기념포럼
사진 출처 - 필자


‘가정폭력방지법’(‘가정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통상 ‘가정폭력방지법’이라 한다)이 시행된 지 10년이 흘렀다. 법제정 활동을 하던 당시만 해도 가정폭력은 ‘사생활’ 이었고, 법제정은 ‘사생활 침해’였다.-10년이 흐른 지금 ‘가족관계등록법’ 이나 ‘정보통신법’을 통해 ‘사생활 침해’를 넘어 ‘통제’ 하기까지 이르고 있다. 이런 것이 격세지감인가?-아내구타로 인해 여성들이 사망하고, 가해남편에 대한 우발적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그 때서야 법을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언젠가 말했듯 여성의 인권은 죽어야 관심을 받는다.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이다. 이 주간도 도미니카의 세자매가 죽음으로 독재에 항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게 ‘가정폭력방지법’은 수많은 구타여성들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져 10년이 지나고 있다.

법 시행 10주년을 맞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가정폭력-정확히 아내구타-의 현실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본회에서 10주년 기념 토론회를 개최하여 법 시행이후 달라진 점과 향후 가정폭력추방운동 및 법 개정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방송과 토론회를 통해서 나타난 가정폭력의 현상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가정폭력 소송 통계로 나타난 것도 감소율이 별반 차이가 없다. 방송프로에서 보여준 폭력의 강도는 변화 없이 잔인함이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가해자들의 의식 또한 여전히 ‘맞을 짓을 해서 맞는..’ ‘여자는 때려도 되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다. 가해자치유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회의가 드는 순간이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한다. 그 무엇도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가정폭력으로 명칭 되는 아내구타/ 아내폭력은 두 가지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물리적 폭력이 허용되는 폭력적 사회문화,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관계, 위계의 질서에 놓여있는 성차별문화이다.

아내에 대한 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폭력에 관대한 문화를 성찰하고 폭력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에 대해 밝혀내고,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 내의 폭력이 사회적 범죄로 처벌됨을 명확히 배우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부터 폭력근절을 위한 교육이 정기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폭력을 포함한 인권교육이 정규과목이 되거나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법의 개정이다. 폭력의 종식이 아니라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우선하는 가정폭력방지법의 목적이 바뀌고,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치유를 위한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고 있는 가해자 처벌은 가해자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반복의 위험성 등을 고려한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검사에게 집중되어 있는 피해자보호청구권을 경찰이나 피해자가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피해자 보호에 집중하여야 한다. 또한 피해자보호에서 우선 급한 것은 폭력피해여성들의 자활과 자립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노숙인들 중에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는 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로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일상 속에서 폭력문화를 종식시키고 추방하기 위한 생활운동이 확산되어야 한다. 현재 각 지역에 여성폭력관련 협의체들이 있는데, 지역민-관련단체 및 기관-지자체가 연계되어 피해자를 보호하고 폭력예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를 살려 지역별 협의체를 강화하여 폭력예방에 적극 나서고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가정폭력은 경제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IMF시기 가정폭력이 급증한 경험이 그것이다. 고환율에 고물가에 과연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현재의 경제 불안은 분명 어디선가 소리 없는 가정폭력을 양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극한은 극한을 부추긴다. 물질만능의 경쟁지상주의 속에서 도태되고 발붙일 곳 없는 이들의 기형적 탈출구로 가정폭력이 존재하게 되는 이상 어떤 법과 제도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될 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폭력에 대한 성찰의 첫걸음이다. 남을 돌아볼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탕이 될 때 가정폭력추방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사회는 누가 만들 것인가? 아무래도 정부에 대해서는 희망이 없다. 나부터,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그런 사례들을 만들고 확산하고 그래서 모델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오늘부터 나부터 모든 형태의 폭력사용을 금지하기로 마음먹고 실행해보자. 그것만이 대안이다. 가정폭력을 내문제로 인식하는 것.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