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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당-끼어들기를 넘어 새판짜기로..(신하영옥)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2-12 13:33
조회
726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2005년 여성조직에서 활동하면서 맡은 분야는 ‘지역여성운동’ 분야였고 그 안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한 ‘여성정치세력화’ 방안도 함께 모색했다. 여성연합 차원에서 지역의 여성정치 주체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임파워먼트를 통해 당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선이 최종목표는 아니었다. 지역정치의 한 복판에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치세력화는 정체되었다. 현재 지역차원, 특히 기초단위 차원에서의 여성의원들의 높은 참여율과 비교할 때 한 참 뒤지는 수준이었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도 겨우 두 자리(17%)의 참여 비율을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한 자리 비율도 겨우 유지할 정도였다. 그 당시 ‘왜 여성들이 정당을 초월해서 뭉치고 여성정치인을 발굴, 당선시키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여성정치인들이 여성주의적 관점 없이 자신들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정치구조보다는 개인들의 행위만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 및 선거제도 등 한국의 정치제도는 주류 기득권정당을 위한 체계로써, 이로 인해 다양한 정당의 원내진입을 차단함으로써 여성을 비롯한 정치소외집단의 목소리도 함께 차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당체계뿐 아니라, 정당내부 구조도 수직적이고 권위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신입국회의원들이 당대표 및 다선의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치에 진입한 신입국회의원들은 자신이 대표성을 가진 집단보다는 당의 입장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 여성정치 활성화의 가장 큰 딜레마였던 것이다. 공천에서 진입까지 수 많은 절벽을 헤치고 나왔지만 그 과정이 반복될 것이란 압박은 여성정치인들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할당제는 강제력이 없었고, 17%로 전환점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좌절과 절망은 결국 여성유권자들의 ‘여성정당 창당’의 요구로 모아지게 하였다. 지난 2월 1일 ‘여성의당’ 창당을 위한 포럼이후 창당주비위원회 기획단을 구성하여 8일 워크숍을 열고 할당제 대신 여성대표성을 높일 방법으로서의 여성정당의 필요성 확인과 여성의제 발굴, 실무단 구성 등을 진행하였다. 오는 15일엔 중앙당 발기인 대회를 진행하고 3월 중 창당대회를 여는 등 차근차근 총선을 대비해나가고 있고 이 과정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회 기획단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워크숍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러한 여성정당의 결성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여성들의 삶, 생존, 생활에 대한 무력감과 무능한 정부 및 정치권에 대한 절망이 존재한다. 할당제로도 해결될 수 없는 여전한 여성 차별적이고 여성외면적인 정책과 정치문화, 여성 혐오적 사회풍토의 확산, 디지털여성범죄의 확산과 강화, 노동시장으로부터 파생된 생존에의 절망 등등. 어쩌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절박함과 분노가 여성정당으로 뭉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정당은 있어왔다. 한국은 1945년 ‘대한여자국민당’이 있었으나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7년엔 인도와 호주에서, 2015년 이후 노르웨이, 핀란드, 브라질, 영국 등에서 여성당을 만들었지만 원내진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다만 스웨덴에서는 2005년 FI(Feminist Initiotive)가 창당 된 후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0년 지방의회와 2014년 유럽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여성의 당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성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할당제를 확보하기까지 또한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상기해 봤을 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갈 길이 멀 수도, 험난할 수도 있지만 지난 2-3년간 한국의 여성운동 지형은 급진적으로 변화해왔다. 그 속에서 성장하고 단련된 젊은 여성들과, 기성 여성운동 선배들의 결집이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엔 서로의 용기와 지혜를 나누며 성공하리라 기대한다. 여성의당 창당 과정자체가 새로운 정치문화와 정당문화, 정당조직구조를 구성해내고 민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기회, 기성정치 문화와 구조를 전복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